[이재홍이 만난사람]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도지사·시민단체,주민투표 계기로 자기 되돌아 볼 수 있어야"

“지금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지사가 약속한 정책공약을 스피드하게 추진하는 게 아니라, 파괴된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만큼 주요한 과제는 없다.”

제주에 대한 숱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온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이 26일 주민소환투표가 끝나자 마자 제주에 내 놓은 조언이다.

“김 지사가 승리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다수가 당신에 대한 소환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하거나, 당신의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판단해 계속 강공으로 가려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 지금은 도민들의 문제제기를 어떻게 겸허한 자세로 포용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김 지사에게 지금 당장 파괴된 공동체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는 노력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김 지사와 대립의 한 축이었던 소환본부에 대해선 “투표불참이 허용되는 주민투표법의 맹점, 공개투표에 가까울 정도로 진행된 투표 문제점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11%는 도민들에게 설득력있는 투표율은 아니다”라며 말했다.

그는 “지금은 주민투표법의 한계나, 불법선거 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주민투표를 통해 각 단위들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도지사를 비롯한 행정당국과 시민단체, 강정마을 주민,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도 자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명함이 보여주 듯 사회갈등에 대해 연구하고 치유하는 국내 몇 안되는 전문가다. 서울대에서 환경정책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후 행동학 박사를 따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행동학 연구원 활동을 했다. 그 후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또는 자치단체 정책으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현재도 국민권익위 자문위원이자 보건복지가족부 갈등조정위원이다.

그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으로 갈등을 겪어온 한탄강과 부안(방패장), 그리고 최근에는 평택(쌍용차)에서 갈등치유 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27일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는 <제주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지금 제주사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그 어떤 정책보다고 공동체회복을 위한 활동"이라고 조언했다. ⓒ제주의소리

 - 민주주의가 확대 될수록 갈등이란 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해관계도 그렇고 민의 목소리가 다양해 진 것도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는데 다른 지방과 제주의 갈등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육지부는 다양하다. 지자체와 주민간 갈등 많고, 지자체와 지자체간 갈등이 굉장하다. 4대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중앙정부의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는 갈등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갈등도 심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는 제주는 지방정부와 지자체 갈등도 있지만 지자체와 지역주민간 갈등이 심해 보인다. 등의 성격으로 보면, 이전엔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가치중심이 많았다. 시민사회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민사회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주민들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다. 그러나 제주는 약간 특색이 있다. 해군기지나 영리병원 사례를 보면 가치중심 갈등 속성이 아직도 강하다.”

- 해군기지나 영리병원이 지금 제주가 겪는 대표적 갈등인데, 이게 중앙정부와 지역주민, 그리고 자치단체와 지역주민 갈등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우는 타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갈등이다.

“제주도의 갈등 성격은 상당히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만큼 풀기가 어렵다. 제주도란 특성이 있는데. 전국 1% 인구....지리적측면에선 생태자연환경이 상당히 발달돼 있다. 4.3을 통해 전쟁보다는 평화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반면 자립적 생산기반이 부족해 경제개발로 표현되는 개발정책이 필요한 복합적 과제가 존재한다. 생태와 평화라는 아이덴티티와 개발이라는 욕구사이에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는 곳이다. 문제는 내부적인 논의를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기 이전에 중앙정부로부터 계속해서 대단히 실험적인 정책들이 내려 꽂히면서 중앙정부 정책에 의해 제주가 계속해서 건 건마다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박태순 소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적 지역적 갈등 치유에 앞장서 왔다. ⓒ제주의소리
- 중앙정부와 지역주민과의 갈등에서 중재자가 있어야 하는데 제주는 그게 없다. 일차적으로 제주도가 해야 하는데 지금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제주같은 상황에선 제주도지사가 중앙정부와 주민들 사이에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지사는 한 쪽편에 서 버렸다. 중앙정부의 개발정책에 동조하고, 더 많은 개발사업을 끌어들이려는 입장이다 보니 도지사가 중앙정부를 대변하는 대변자가 돼 버렸다. 중앙정부와 지역주민 갈등이 기본구도임에도, 이게 지사와 갈등으로 전환돼 버렸다.”

-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권한을 가진 자가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데, 중앙정부는 뒤로 빠지고 권한이 없는 도지사가 갈등 당사자로 나서다 보니 해결이 그만큼 어렵다. 김 지사 스스로도 “국책사업인 해군기지가 왜 소환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할 정도다.

“제주도지사가 굉장히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중앙정부 요청이 있어도 ‘도민사회에서 충분히 공유되거나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시간을 달라’는 완충작업과 함께 적극적인 도민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부족했다. 제주는 제주가 갖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이 있을 거다. 그것을 고려해서 중앙정부의 이런저런 정책을 필터링 해서 받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제대로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못했는지에 대해선, 도지사가 도민의 대표로서 해야 할 역할이란 게 도민의견을 수렴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역할과 또 다른 측면은 성과를 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후자에 무게가 실리면서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게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해군기지나 영리병원, 영리학교 등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주에 현안이 된 정책들을 보면 제주도도 그렇지만 우선 중앙정부가 하고 싶어 하는 정책들이다. 어디에서 할까, 어떻게 설득시켜 나갈까 하는 찰나에 제주가 먼저 ‘우리가 하겠다’고 나서면서 문제가 복잡하게 꼬인다. 물론 제주도는 타 시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하는 ‘선점효과’를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의견수렴이나 대화가 부족하고 이게 갈등으로 표면화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좋은 개발정책을 가져와도 도민이 동의하지 않고 내부에 갈등이 심화되면 꼬이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야 한다. 70~80년대 공직생활을 했던 공직자들은 주민 욕구나 발언력에 대해 피상적으로 파악할 가능성이 있다. 강정마을이나 부안에서 보는 것처럼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끝까지지 버틴다. 사업진행 자체가 안되거나 굉장히 지연된다. 목적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목적수행을 위해서도 주민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는 사고방식 전환이 필요하다.”

- 육지에서 보면 제주가 유난히 갈등이 많은 섬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실제로 많다. 왜 이렇다고 보는가. 육지 일부 시민들은 제주가 너무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란 지적을 한다. 하지만 제주입장에서 볼 때 쉽게 동의하기도 어렵다.

“제주와 마찬가지로 갈등빈도가 높은 곳이 전북인데 이 곳 역시 농촌공동체사회가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남아 있다. 중앙정부에서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새만금이나 무주 부안문제도 개발할 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개발사업을 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중앙에서 대형국책사업을 내리 꽂는데 지역에선 그런 경험도 없고, 아직도 공동체 중심문화가 남아 있어서 저항도 심하게 한다. 제주는 특히 각종 민감한 정책을 테스트하기 좋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동체란 게 원래 사회적 결속력이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제대로 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도 있고, 속도도 굉장히 빠를 것이다.”

- 지금 부안에서 갈등회복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제주역시 갈등회복과 도민사회 통합이 시급하다. 부안은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안은 방패장 문제를 놓고 이념적 갈등을 넘어 폭력적 상황까지 치달았다. 당시 군수가 전치 8주진 단이 나올 정도로 폭행도 당했고 2년 동안 300회 넘는 집회로 거의 부안군은 전쟁터로 변했다. 구속자만도 100명 이상이고 부상자도 500명 이상이었다. 부안 주민들은 지금도 15% 정도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를 않고 있다. 그곳은 종친회 어민회 농민회 동문회 공직사회까지 있는 조직, 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됐다. 극렬한 찬반대립 속에 스스로는 공동체회복을 위한 논의의 틀도 못만은 정도다. 그래서 부안군수와 논의해서 일단은 외부에서 조정단을 만들어 들어갔고, 지금은 ‘부안공동체회복을 위한 포럼’도 만들었다.”

   
-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사실에 대해 ‘집단의 기억’을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기억은 점점 흐려지는데 감정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 다니고 숨은 감정을 계속 끄집어낸다. 당시 벌어진 사실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 일들을 찬반 양측뿐만 아니라, 정부측 인사들도 계속 만나면서 공통분모만을 가지고 ‘백서’를 쓰고 있다. 백서가 나오면 적어도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공동체회복에 장애가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제주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어떻게 해야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지 조언해 달라.

“이미 제주는 감정이 다 표출된 상태다. 해군기지 영리병원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소환투표를 계기로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갔다. 사람에 대한 공격은 상처가 깊어지고 문제해결 방법은 점점 찾기 어려워진다. 결국은 김 지사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포용을 해야 한다. 포용하되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한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은 두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나는 강정마을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또 다른 하나는 제주공동체가 분열을 극복하고 실제 갖고 있던 통합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거다. 두 문제는 분리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강정마을 문제는 주민소환투표까지 온 문제의 근원이 어쨌든 김 지사가 상당한 원인자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도지사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든 해서 직접 나서야 한다. 강정마을을 설득할 사람은 도지사 밖에 없다.
공동체회복은 도지사 혼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주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처럼 강정마을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 도정운영에 대한 찬반틀로 논의구조를 짜면 생산적인 결론 도출이 어렵다. 일단은 외부에서 조정단을 꾸려 제주에 와서 논의의 틀을 만들어 한다. 논의 틀에 참여할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제주를 전체적으로 대표할 조직, 이해관계 집단을 15개 정도 먼저 선정하되 누가 대표할 것인지는 집단에 위임해야 한다. 그렇게 꾸려진 15인 내외로 제주공동체회복과미래를위한 포럼을 구성한다. 처음 의제선정과 진행은 상당한 정도의 스킬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정단에서 일정기간 논의를 이끌고 정착단계에 들어가면 스스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논의과정에서 나오는 아웃풋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도지사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논의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진행절차도 도민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 강정마을은 주민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강정마을 역시 부안에 비해 덜할지는 모르지만 상당할 정도의 어려움에 빠져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벌써 상당할 정도의 내상을 입었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내부적으로 너무 아파할 것이다. 그런 만큼 갈등전문가나 심리치료사, 의사들이 전문적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특히 그런 점에서 도지사는 발언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이를 계기로 여태까지 발언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도 많아 나왔으면 한다. 지금은 시민단체와 도지사가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건설적인 측면에서 발언하지 않은 도민들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많은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다.”

- 이제 주민소환투표는 끝났다. 11% 참여로 주민소환은 무산됐다. 투표 곳곳에서 관권이 개입논란도 있다. 이 때문에 소환본부측에선 지금은 아주 격한 상태이긴 하지만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갈등치유 전문가로 조언을 해 달라.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과 근원적으로 볼 때 다른 점은 있는데, 현상적으론 제도를 통해 김 지사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실패한 거다. 투표불참이 허용되는 제도적 한계, 그리고 거의 공개투표에 가까울 정도로 진행된 문제점이 결합되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11%는 도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투표율은 아니다. 그렇다고 김 지사 입장에서 본다면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11% 5만명이 좀 안되지만 소환서명에 응한 사람은 7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김 지사를 소환하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된다. 지금은 주민투표법의 한계나, 또는 불법선거 등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주민소환투표를 통해서 각 단위들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도지사를 비롯한 행정당국, 시민단체, 강정마을 주민,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도 자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 결국 이번 사태의 결자해지는 김태환 지사에게로 모아지는 것 같다. 김 지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투표 결과를 승리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다수가 당신에 대해 소환거부한 것으로 해석하고, 내가 추진한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판단해 계속 강공으로 가려는 함정에 빠져선 안된다. 오히려 도민 다수가 도정운영방식과 정책방향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문제제기한 것이고, 그 문제제기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란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지사가 약속한 정책공약을 스피드하게 추진하는데 있을게 아니라, 파괴된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 만큼 주요한 과제가 없다는 걸 인식해야한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부족하면 외부힘을 빌어서라도 구체적 처방을 만들어 내야 한다. 김 지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도정 시스템을 바꾸면 지자체 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조문단을 접견하고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을 국장을 치름으로써 지지도가 높아진 것처럼, 지금은 화합을 위한 정책을 내 놓는 게 김 지사에게 결코 손해가 안 될 것이다. 합의하는 게 오히려 개발의 속도도 높일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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