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30] 미국에서 찾아온 교수들

주민소환투표가 열리기 이틀 전인 지난 24일 오전, 강정마을 의례회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마을 주민인 이춘생 할머니가 숙환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장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강정마을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을 때면 대부분 의례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눈다.

▲ 멀리서 온 손님들 지난 24일, 마크 셀던(Mark Selden) 교수(맨 오른쪽)가 자신의 동료 제임스 로웬(James Loewen) 교수와 함께 강정마을을 찾았다.
ⓒ 장태욱

주민들이 모여 일을 준비하는 와중에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다. 미국에서 마크 셀던(Mark Selden), 제임스 로웬(James Loewen) 두 교수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손수 마을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동아시아 전문 선임연구원인 마크 셀던 교수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NGO활동가다. 특히,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오랫동안 함께하여 익히 그 명성이 높다.

한국과는 80년대 초에는 '내란음모' 혐의로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 구명활동을 펼쳤던 것으로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주석 간의 6·15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측면에서 지원을 하기도 했다.

 ▲ 마크 셀던(Mark Selden)교수 필자와도 대화를 나눴다.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평화문제에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장태욱

새롭게 전개되는 남북관계에 대한 셀던 교수의 입장이다.

"미국, 일본, 남한 등이 북한에 대해 긴장을 조성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대화를 중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으로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다시 북한을 방문해서 서로 대화를 재개한 것이 새로운 변화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하고,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했다. 김 전 대통령이 남북 정부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이 두 교수가 한국을 찾은 것은 지난 20~23일에 서울 인사동에서 북아역사재단과 세계NGO역사포럼이 주최한 '제3회 역사NGO세계대회'를 참여하기 위해서다. 마크 셀던 교수는 대회의 공동대회장이기도 했다.

▲ 현황 설명 윤상효 전 서귀포시 의원이 강정마을의 자연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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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할 무렵, 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고소식을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마크 셀던 교수가 고인의 영정 앞에 큰절을 올려 언론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주민소환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데다, 마을에 장례까지 겹쳐서 강동균 마을회장과 양홍찬 위원장을 비롯한 마을 대표자들은 전에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외국인 방문객을 맞은 것은 서귀포시의원을 지낸 윤상효씨다.

이들은 마을을 둘러보며 강정마을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체험했고, 해군기지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을 들었다.

윤 전 의원이 제주도의 대부분 기반암이 다공질 현무암인데 반해 강정마을은 독특하게 조립질 암석이어서 제주에서는 매우 드물게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인 점, 해안에는 연산호 군락이 왕성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는 점, 그런 이유로 인해 이 일대가 절대보존지역과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점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 중덕해안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로, 이 일대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마크 셀던 교수는 "한국 정부가 왜 지금, 그리고 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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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 문섬 등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한 셀던 교수는 오키나와 본도의 나고시 헤노코 마을에서 겪은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셀던 교수는 "오키나와 연안에 멸종위기에 놓여 국제보전생물로 지정된 해우(dugong)라는 포유류가 있는데, 군사기지로 인해 멸종될 위험에 놓인 적이 있다"고 했다.

"군사기지를 건설할 때 주변 환경이나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여론이다. 일본정부도 당시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가 여론의 비판이 높아지자 주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셀던 교수는 국제여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오키나와 군사기지는 미국 정부의 책임 하에 건설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 주민들은 샌프란시스코 법정에서 해우(dugong)을 원고로 미국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그래서 국제 여론의 지원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제주도가 유네스코지정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유네스코 사무국에 자꾸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면서 이 문제를 국제문제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셀던 교수는 평화를 위해 강한 국방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라도 군사기지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가가 군사기지를 짓고 국가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군가기지를 건설할 때, 국가는 주민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인지, 꼭 그 위치여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민들을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은 제대로 된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헤노크 마을의 경우, 주민들은 일본 방위성 직원들이 미군기지 건설 예정지 해안을 조사하려는 시도를 보트를 타고 다니며 가로막아 왔다. 주민들의 그같은 치열한 투쟁에 밀려, 일본 정부는 10년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셀던 교수의 주장처럼 오키나와 주민들의 처절한 투쟁 경험이 강정마을에도 교훈이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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