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를 읽고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이 11%의 저조한 참여율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주민소환운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하면서 목도한 제주도 정가의 실상은 실로 절망할 만한 수준이었다.

5천 명에 가까운 공무원들은 '공무(公務)'를 내팽개친 채 그들의 주군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사무(私務)'에만 올인했고, 이들의 부정을 감시해야 할 선관위와 언론사들은 모든 사안에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은 전국 시도지사를 초청한 만찬 행사장에서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김태환 지사를 두둔하며 '주민소환운동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표한 적이 있다. 선관위의 직무 유기는 어쩌면 이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주민소환정국 때 제주도에 '언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민소환투표운동이 시작되어도 투표운동이 진행되는 각 현장에 기자는 보이지 않았다. 김태환 지사가 '민생탐방'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낸 연출사진과 보도자료를 재료로 '홍보'기사를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론은 없고 '홍보기관'만 넘쳐났다.

시민기자 신분으로 <오마이뉴스>와 주민들 응원을 등에 업고 저들의 '민관언' 복합 카르텔과 정면으로 부딪쳐 봤다. 그런데 저들의 벽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해서 좀체 균열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저들의 신종 카르텔이 내 이웃들과도 학연·지연·혈연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현실은 더욱 암담하기만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니, '민주주의 학교'니 하는 찬사를 받으며 10여 년 전 우리 곁으로 부활한 주민자치는 이제 지역 부패동맹의 자양분으로 전락했음을 확인했다. 주변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절망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강준만 교수의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를 꺼내 들었다. 지방정부-지역토호-언론이 지역을 지배하는 부패동맹 체제에  균열을 낼만한 민주적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다. 

▲ 책표지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의 표지
ⓒ 개마고원

평소 자기 스타일대로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며 지방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서술하지만, 필자의 눈은 지방자치와 지역 언론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갈수록 타락해가는 지방자치에 대해 저자가 내린 평가를 찾았다.

"지방정치는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1당 독재' 체제로 전락했고,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할 언론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엔 사실상 사망상태다.…대중의 일상적 삶의 영역은 방치돼 있다. 빈껍데기뿐인데다 썩기까지 한 지방자치가 생산해낼 대중의 냉소와 그에 따른 보수성을 생각하노라면, 전국 차원의 거대담론이야말로 그 내용을 불문하고 수구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지방자치의 위기에 대해 탄식만 하거나 그 원인을 개개인의 도덕적 해이에서 찾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중앙과 지방의 비대칭적 관계가 지방의 경제, 정치, 문화, 교육 등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키워드로 <내부식민지론>을 들고 나온다.

"'내부식민지'라는 말이 있다. 1970년대 남미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이론이다. 식민지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극심한 지역 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 지방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노력을 병행하는 걸 전제로 해서, 과도기적 용법으로 내부식민지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게 어떨까 싶다. 사실 서울-지방간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의 동경-경성 간 관계와 너무도 비슷해 깜짝 놀랄 정도다."

지방정치인이 국회의원에게 종속되고, 중앙언론의 지배력에 의해 지방지 구독률이 바닥을 면치 못하는 '내부식민지 체제'가 지방의 발전과 풀뿌리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결정적 이유라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와 풀뿌리정치는 지방의 작은 지역에서부터 꽃을 피우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풀뿌리정치는 '빨대정치'로 전락했다. 중앙정당들이 지방을 식민지화한 가운데 빨대를 꽂고 단물만 빨아먹고 있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몸종'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거림이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방민들은 각종 연고에 얽혀 그런 식민지체제에 갇혀 있다."

저자가 언론학 교수인 만큼 지방대학들이 안고 있는 지리적 불리함과 지방신문이 처한 문제점들을 열거하고 그 대안제시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그중 언론에 관한 부분만 짚어보면, 저자는 지방민들 관심은 지역보다는 서울에 가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지 구독자가 전체 가구의 5%를 넘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신문사들은 주로 정(政)·관(官)에 의탁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지방지는 갈수록 독자가 늘지 않는 구조적인 '악순환의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내리는 처방도 다양하다.

정부에 대해서는 지방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들에 대해 차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구체적으로는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재벌 신문과 지방 신문사의 관계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로 규정하고, '중소기업신문광고지원금'등을 동원하는 산업적인 방식으로 풀어보자고 제안한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광고비를 지원해주고 이 광고비가 조중동 등 재벌 언론사가 독식하지 못하게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지방신문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튀는 방식을 취하고, 가볍고 부드럽고 재미있고 인간적인 기사 스타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눈높이 저널리즘'을 확산시키라고 주문한다. 또, <오마이뉴스>나 <블로거뉴스>등의 국내 사례들을 소개함과 더불어 지역민 70% 이상이 지역신문을 구독하고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오스트리아 슈바르자흐 시를 모델로 제시하기도 한다.

지식인들과 지역 시민단체들에게는 지역 신문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문한다. 아마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한다.

"비교적 싹수가 보이는 신문을 구독해 힘을 실어주면 용기백배해 잘해보려고 애쓸 것이거니와 엉뚱한 짓 함부로 못한다. … 그런 식으로 두세 개 신문이 제자리를 잡아가야만 신문 난립 문제가 해결되지, 지금처럼 싸잡아 백날 비판해봐야 백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저자는 지방자치와 지역신문 외에도 지역방송, 지역축제, 대중문화와 지역문화의 융합, 연고와 인맥 등 지방을 소재로 많은 얘기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들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무분별한 비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사회공익성을 증대시키자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버산업', '동아리 천국', '문화 거버넌스', '지역학의 대중화' 등 그 대안도 다양하다.

마지막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제는 지방이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한다"이다.

"비수도권에선 수도권의 입장까지 헤아리는 제 3의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 지방이 대한민국 전체를 책임지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꼭 지방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 그런 의미에서 지방의 문제를 지방이 먼저 지적하고 해결하자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솔직히, 책을  읽고 나니 책이 저자의 명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자가 지방의 많은 문제점들을 수도권에 대한 종속의 문제로 너무 쉽게 환원시켜버렸다는 판단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호화청사를 짓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해당 지자체에게 그 넓은 공간을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주라고 점잖게 훈수하는 대목이 있다. 강교수가 지자체가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와중에는 막대한 규모의 뇌물이 오간다는 점을 짐작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지방의 구조화된 부패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수도권규제완화'와 같은 문제에 비분강개하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후 얻어진 소득 또한 적지 않았다. 그것은 지방 신문사들을 너무 무책임하게 싸잡아 비난했다는 데 대한 반성이다. 싹수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신문사 혹은 기자들과 연대를 모색할 방안을 찾는 일이 필자에게는 과제로 남았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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