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살리기 릴레이칼럼](1)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한반도 막둥이 섬 비양도에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림읍 협재 해안에서 비양도를 잇는 1952m로 국내 최초, 아시아 최대의 해상케이블카라고 합니다. 사업자는 비양도케이블카가 건설되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양도 아름다운 경관이 케이블카로 훼손당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사는 될지모르지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비양도가 우리 세대에서 끝날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비양도를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주의소리>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을 시작합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비양도. 이제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더 이상 못 볼지도 모른다.
비,양,도! 한글자씩 마음을 담아서 쳐본다. 그 섬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섬의 물빛을 그려보는 것만으로, 비양봉 오르는 길에 핀 보랏빛 갯무우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친구 허영선(시인)에게 이끌려 비양도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날, 나는 이 섬과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 내 고향 제주에 이렇듯 신비로운 섬이 있었구나!  ‘보석 중의 보석’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그 섬의 정상부인 비양봉에서 남색 비단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듯한 바다를 굽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접할 여유도 없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바둥거리면서 살아온 내가 너무도 불쌍하고 가여웠다.

다시는 옛날로 되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곤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 이후 스페인 산티아고길 800킬로미터의 도보여행을 떠났고, 여행을 끝낸 뒤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서 올레길을 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비양도는 제주올레의 씨앗을 틔우게 한 곳이었다.

#수채화 같은 바다에 흉측한 철탑을 세우다니!!!#

▲ 비양도에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막둥이 섬에 쇠기둥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올레 코스를 내고 가꾸고 지키는 일에 파묻혀 사느라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던 중, 얼마전 인터넷신문에서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한림과 비양도 사이에 아시아 최대의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뉴스였다. 화들짝 놀라서 관련 뉴스를 검색했더니, 상세한 용역 결과와 조감도까지 떡하니 나와 있었다.

상세 계획과 조감도를 들여다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한림항과 비양도, 양쪽에 높이 57미터에 이르는 철탑을 세운 뒤, 총연장 1952미터의 케이블카선을 구축할 계획이란다. 

57미터나 되는, 그것도 나무도 돌도 시멘트도 아닌 철 구조물이 그림 같은 바닷가에 들어선다는 이야기 아닌가! 제주시의 50층 고층빌딩, 서귀포 예래동 휴양단지의 66층 복합휴양 건물이 들어선다는 뉴스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일순 조정래 선생님(<태백산맥>의 저자)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평소 제주에 애정이 많았던 조선생님은 올레길을 몇 번 걷고 난 뒤 아예 말년을 제주에서 보낼까 생각중이었다. 그러나 올레 개장 행사 직후 식사 자리에서 제주에 고층빌딩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벌컥 화를 내셨다. “그런 일 벌어지면 제주도 안 내려올 거야! 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들을 하는 거야! 제주는 한라산이 최고의 상징물인인데, 섬 어디에서도 한라산이 가려지면 안되잖아! 그건 제주가 아니라구!”

아, 그런 조선생이 제주에서 가장 물빛이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천여년 전에 화산폭발이 일어난 ‘한반도의 막둥이섬’ 비양도 사이에 57미터짜리 철 구조물이 세워진다는 걸 아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디 조선생님뿐이랴. 나를 처음 비양도로 이끌었던 섬세한 감수성의 ‘제주 시인’ 영선이는 또 얼마나 가슴아파할 것인가. 비양도에 하룻밤 머물던 날, 우리는 바다 건너 한라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던 노을에 넋을 놓지 않았던가. 케이블카가 계획대로 실현된다면, 이젠 한라산 대신 케이블카를 배경으로 노을이 질 터인데.

#깃발은 그린 투어리즘, 현실은 건설 투어리즘#

▲ 케이블카 조감도
솔직히 이 뉴스를 믿을 수가,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자연유산의 섬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세계자연보전총회를 유치하려고 백만인 서명을 받은 제주특별자치도 아닌가. 절대보존지구에서는 자기 땅이라도 집도 마음대로 못 짓고 절대보전연안에는 자그마한 시설물 하나도 엄격히 규제되는 제주특별자치도 아닌가. 게다가 탄소 제로, 녹색 관광, 생태관광에 역점을 두겠다던 제주특별자치도 아니던가.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수십 미터의 쇠기둥이라니! 케이블카라니!

두 다리나 웬만한 교통수단으로는 범접이 어려운 산악지대나 절벽에 케이블카를 놓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선진국에서는 최근 들어 그마저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자연 보존과 관광 수익을 동시에 도모하는 ‘그린 투어리즘’이 전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가 이 지훈씨(제주의 소리 편집위원)에 따르면 미국의 국립공원에서는 케이블카를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림-비양도 구간은 케이블카로 연결해야만 하는 지형도 아니다.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뱃길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큰 배를 취항시키고 배편을 늘리면 될 일이다.

그린투어리즘을 깃발로 내걸고서도 정작 현장에서는 ‘건설투어리즘’이 횡행하는 것이 제주의 슬픈 자화상이다. 비양도 케이블카 계획은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용암동굴계와 어장은 과연 무사할 것인가#

케이블카가 망가뜨리는 것은 수려한 풍광만이 아니다. 높이 57미터의 철탑이 제주의 바람과 태풍에서도 끄떡없이 견디려면, 최신공법을 동원하더라도 최소한 높이의 3분의 1인 땅속 19미터를 파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엄청난 굉음을 동반하는 대규모 굴착 공사가 진행될 경우, 공사 현장 바로 50미터 지점에 있는 천연동굴 재암천굴과 비양도 어장에 어찌 영향이 없을 것인가. 기사에 따르면 관련부처인 환경부가 사업타당성 검토 과정에서 이미 부정적 검토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계자연유산의 섬에서 이런 무모한 계획이 절차를 착착 밟아가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미스테리’가 아닌가.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제주의소리
한반도에서 맨나중에 화산 폭발이 이뤄진 막둥이섬, 이 여리디 여린 섬에 거대한 철탑과 쇳덩어리인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건 현재적인 관점에서도 끔찍한 재앙이요, 미래적인 관점에서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우리 시대에 자연보존과 관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보존해 후손에게 넘겨줄 일이다. 그들이 훨씬 지혜롭게, 잘 활용하게 될 것이므로.

당장의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천혜의 자연에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가하는 것은 후손에게 남겨질 유산마저도 앞세대가 미리 끌어쓰는 약탈적인 행위다. 누구에게도 제주 공동체 전체의 자산,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을 망가뜨리고 탕진할 권리는 없다. 사기업의 개별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아니될 일이다. /서 명숙(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전 언론인)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