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강정마을의 미래 찾기

  2000년이 시작되면서 21세기는 새로운 시대인 줄 알았다. 적어도 그 해 6월 15일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걸 보면서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이 새로운 시대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경제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이지 군비경쟁을 하는 시대는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총력안보 속에서 군비경쟁에 쓰여 왔던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이제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쓸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러나 아직은 새 시대가 아닌가 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고, 남한도 ‘세계평화의 섬’이라고 지정한 제주도에 최첨단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니 그렇다.

  OECD가 발간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가운데 노동시간은 2,316 시간으로 가장 높고 여가활동비 지출은 GNP 대비 4,6%로 터키와 일본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국가이다. 새 시대란 단순하게 경제성장률이 예를 들면 7%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불이며 그래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7위의 경제대국으로 나아가는 이른바 747 공약 실현에만 있지 않을 게다. 오히려 새 시대란 노동과 여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포함하여 안보의 문제도 국가가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주류적 가치로 널리 이해되는 그런 흐름을 의미할 것이다.       

  새 시대라는 것이 달력을 바꾼다고 오는 게 아님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새 시대라는 게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오는 게 아님을 새 시대란 세상이 바꾼 이후에 그것을 보면서 지칭하는 것이지, 먼저 새 시대가 왔으니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선언적으로 주창하거나 바라는 것 또한 세상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남북한 정상회담 한번으로 혹은 정부가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고 하여 새 시대가 되지 않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 사안이 바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이었다.

  제주도 해군기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작은 이중적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안보지상주의는 1950년에 일어났던 한국전쟁의 기억으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생존 지침'이다. 그래서 단 1%의 안보위협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디에든 군사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데에 기꺼이 동의한다. 물론 가능하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군사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또 하나의 무임승차의 심보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그렇다.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방지라는 일반적 안보 논리와는 별도로 제주도 해군기지 필요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과는 무관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정부가 해군기지 필요성을 언명하면서 북한을 암시한 적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주도 해군기지의 필요는 제주도 남방 해상과 동지나해와 인도양 등 원양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전진기지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발표이다. 모르겠다. 차마 공개적으로 북한 위협 또는 중국이나 일본 위협을 운위할 수는 없는 국제정치적 도의나 군사전략적 측면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

  어떻든 새천년이 들어선 지도 이제 몇 달만 지나면 10년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해군기지는 여전히 안보지상주의와 경제성장제일주의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재확인해 줌으로써 여전히 새 시대의 도래는 시기상조임을 보여주었다. 2002년 화순항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촉발된 해군기지 논쟁은 2005년 본격적으로 재논의 되면서 결국 2007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유치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해군기지는 제주도민, 특히 강정마을 주밍들에게는 어느 날 홍두깨 식으로 다가와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해군기지는 2009년 9월 현재까지도 제주도민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해 온 대표적 사안으로 현재진행형이지만, 점점 더 사태는 현실적으로 착착 진행되어 나가고 있는 해군기지를 응분의 보상을 통해 교환하는, 이른바 반대급부 찾기로 나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도의회에서는 환경영향평가 의회동의권을 통해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제주도의 실익 찾기에 나서고 있다. 제주경실련도 최근에는 해군기지 건설의 반대급부로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상 지위 보장 △국세운영 자율권 부여 △제주 신공항 건설의 조속한 추진 △강정주민이 참여하는 강정발전계획 수립 시행 등 ‘대정부 4대 요구사항’을 요구하는 데로 전환했다. 이에 발맞춰 제주지방변호사회도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옴으로써 훼손될 제주의 생태와 평화라는 가치,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주민들의 삶에 대해선 정부가 응당 그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해군기지 해결을 위한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9년 9월 시점에서 대세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 들어서는 해군기지를 통해 제주도가 어떤 이득을 챙길 것인가의 반대급부 찾기 전략으로 모아지고 있다. 2009년 12월에 기지건설을 착공한다는 일정에 맞춰서 얼마 남지 않은 이 가을에 어떤 수확을 올려야 할 것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애쓴 수확이 최종 어떤 결실로 나타날 지, 다시 한 번 제주도정의 협상능력과 제주도의회의 조정능력이 도마 위에 올라가 있다.

  새 천년 새 시대의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서 무언가 냉전 상태의 20세기와는 다른 세상을 여는 데 기여하길 바랐던 필자의 소박한 소망도 이젠 접어야 할 듯싶다. 이러한 소망이 소박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야 실현될 수 있을 만큼 어렵고 큰 것임을 깨달으면서 그 꿈을 접어야 하겠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이 이제 새 시대를 꿈꾸면 반대하기에는 너무나 진행되어 나가버렸다는 데에서 또 한 번의 현실순응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군사기지 없는 제주도의 미래를 꿈꾸고 싶다. 마치 청계천 육교를 철거하여 새로이 청계천을 단장하듯 미래의 어느 날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도 철거되고 강정천이 새로이 단장되는 날이 올 것임을 기대하는 꿈은 버리고 싶지 않다. 협애한 일국중심적 국가안보를 위해 무모하게 군비경쟁을 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안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려고 경쟁적으로 국가들간의 협력을 추구해 나가는 세상을 바라고 싶다. 이러한 세상이 결코 쉽지 않다고 하여 체념하기에는 소망의 의의가 너무 절실하다.

  시작은 작지만 결과는 큰 강정마을의 미래를 찾아 솔선수범하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민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단순히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데만 있지 않음을 안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제주도민 한 사람 한사람이 우선은 현재 추진진행 중인 해군기지가 단순한 군사기지가 아니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자리 잡도록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좀 더 긴 시각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 천년 새 시대를 찾아나서는 조그만 시작으로서 친환경과 생태의 가치를 일상생활에서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들 자신의 변화를 도모해 나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 양길현 교수
  오랜 시간 동안 해군기지를 반대해 왔던 강정마을 주민들의 수고와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제주의 변화가 진행되어 나가게 되리라 기대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누구는 이 말만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게 한중일 동아시아가 변화하고 남북한이 변하는 만큼이나 제주도 변하고 제주도민도 변화해 나갈 것이다. 그 변화가 우리 시대가 아니라고 조급하지는 말기로 하자. 우리 아들 세대나 손자 세대에라도 새 시대가 온다면, 바로 그러한 시대가 오도록 밀알이 되고 앞장선 선구자로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노고가 기억된다면, 그것도 아쉬운 대로 보람이지 않을까.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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