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2) 케이블카가 체류형 관광이라고?

한반도 막둥이 섬 비양도에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림읍 협재 해안에서 비양도를 잇는 1952m로 국내 최초, 아시아 최대의 해상케이블카라고 합니다. 사업자는 비양도케이블카가 건설되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양도 아름다운 경관이 케이블카로 훼손당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사는 될지모르지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비양도가 우리 세대에서 끝날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비양도를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주의소리>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을 시작합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비양도에 케이블카를 놓으려는 건설업체에서는 케이블카가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라온레저개발은 케이블카를 비롯한 5대핵심 사업을 완성하고 연계해 한림지구를 동북아의 대표적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케이블카가 체류형 관광의 불가결한 요소라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케이블카는 ‘빠른 관광’의 대표주자다. 케이블카를 타면 케이블카로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왕복형 교통수단의 전형이 바로 케이블카다. 케이블카를 타고 비양도에 들어간 관광객이 비양도를 느릿느릿 서너 시간 즐기거나, 섬에서 하룻밤 머물 거라고?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다. 렌터카 관광 이후 제주 여행 기간이 더 짧아졌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빠른 관광과 체류는 모순명제다.

배를 이용한 비양도 관광이 반나절 관광이었다면(현재 한림-비양도간에는 오전, 오후 두 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으므로), 케이블카 시대에는 1-2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다. 맞은 편 한림지구에서도 케이블카의 존재는 체류형 관광에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외려 독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제주섬에서 느긋한 휴식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설령 호기심에 잠깐 케이블카를 탈지라도, 거대한 철탑과 케이블이 가로지르는 바닷가에 오래 머물고 싶겠는가. 한국 토목기술이 이뤄낸 걸작품(!)을 굳이 감상하려는 엽기적 취미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섬에서는 일부러 관광객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케이블카 관광이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찾기 힘들지만, 반대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진입 속도가 느릴수록, 접근이 힘들수록, 문명과 거리를 둘수록,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수록, 체류형 관광지로 더 각광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 아리골리즈 반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섬, 이드라(Hydra)다. 이 섬은 케이블카는 물론이려니와, 자동차와 자전거마저도 철저히 막고 있다. 이 섬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사람의 다리와 노새뿐. 전세계에서 몰려든 부유층 관광객들은 해변에서 늘어지게 일광욕을 즐기거나, 느릿느릿 걸어 다니거나, 노새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본다. 호텔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노새의 몫. 자동차 문화에 익숙한 관광객들에게는 그마저도 이색적인 볼거리여서 저마다 호텔 창문에 매달려서 사진을 찍어댄다. 섬의 남단에는 작가와 화가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데, 대도시의 화상과 출판사들이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서 이 섬으로 몰려든다. 체류형 관광은 그런 것이다!

이드라는 도시 문명의 편리함과 빠른 속도를 포기하게 하는 대신, 도시에서 못 누리는 여유와 자연과 느림을 선물한다. 도시인들은 ‘다름’에 매료된 나머지, 해마다 이 섬을 찾아 장기간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모처럼의 휴식을 즐길 뿐 아니라,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는 이 섬의 ‘치명적인 매력’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한다. 자발적인 홍보대사가 되는 것이다.

# 이제 한국의 관광객들도 달라지고 있다#

비양도의 자연 생태적인 아름다움, 비양도 해녀와 어부들의 독특한 문화도 이드라의 매력 못지않다. 다만 제주도가 비양도를 ‘멋지게’ ‘우아하고’ ‘특별하게’ 여행자들에게 홍보하지 못했고, 한국의 관광문화 역시 눈에 번쩍 뜨이는 볼거리만 찾는 ‘주마간산식 관광’ 패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국내 관광객의 여행 경험이 풍성해졌고,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별 특별한 볼거리도, 눈이 번쩍 뜨이는 시설물도 없는’ 제주올레길에 최근 2년간 쏟아진 관심에서도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눈요깃거리와 즐길거리만 찾던 ‘빠른 관광’에서 느끼는 관광, 체험하는 관광, 머무는 관광의 ‘느린 관광’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올레길이 ‘한국의 산티아고길’로 떠오르고 있듯이, 비양도가 ‘한국의 이드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신속하게 건너가서 섬 입구를 한 바퀴 휙 돌아보게 한다면 체류는커녕 쓰레기만 버리고 떠나오게 될 것이다. 관광객들도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한번쯤 이용하겠지만, 유리창을 통해 내다본 풍경에서 깊은 감동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바람을 느끼면서, 뱃전에 부서지는 포말을 보면서, 바다내음을 맡으면서 비양도를 오간다면 훨씬 ‘오감’을 만족하게 될 것이다.

그뿐인가. 비양도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서 이곳에서 최소한 하루, 많게는 사나흘 머물게 한다면, 비양도의 주민들은 제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도 숙박과 체험 프로그램, 음식 판매 등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될 것이다. 라온레저개발측은 비양도 주민 16명을 케이블카 운용요원으로 고용하겠다고 생색을 냈지만, 섬 주민 전체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느린 관광’인 것이다.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제주의소리
제주올레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도시인들이 그동안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날리듯이, 이곳 비양도에서는 느긋하게 머물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 한때 제주 사람들은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낙원 ‘이어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차 없는 비양도야말로 자동차에 치여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21세기의 이어도’가 아니고 무엇이랴. 기계로부터의 해방, 도시로부터의 탈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은 여행자들 대다수의 로망이다.

비양도는 그런 도시인의 로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최상의 섬이다. 경관과 환경을 파괴하는 케이블카대신, 경관과 환경을 보존하면서 멋지게 팔 수 있다면, 굳이 대한민국 막둥이섬앞에 볼썽사나운 철탑을 세울 일이 있단 말인가. 이 사업을 심의하는 도의회 의원들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서 명숙(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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