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선배라는 지위 이용해 후배 등치는 '의제?'

지역 학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곳 제주도 중학교에서 의제(義弟)맺기가 유행처럼 행해진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아빠, ○○이 언니가 의제를 맺자고 하는데 싫다고 했어”한다.

“의제?”
“그런데 계속 맺자고 하면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왜, 좋은 거 아니야?”
“좋긴, 의제 맺으면 가끔 좋은 선배들도 있어서 챙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꼬봉이지 뭐.”
“꼬봉?”
“화이트데이 때 사탕 사줘야지, 모의고사 같은 시험보기 전날 시험 잘 보라고 초콜릿 사줘야지, 하루에 한 번씩 500원씩 용돈 보태 쓰라고 주는 경우도 있어. 생일도 챙겨야 하고, 난리가 아니야. 그리고 만나면 깍듯이 인사해야지, 아예 1학년 애들은 고개도 못 들고 다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건 말이 의제지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후배들 등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떤 선배는 의제를 몇 명씩 맺어서 때만 되면 선물도 많이 챙겨.”
“그러면 후배들은?”
“어떤 애들은 선배를 몇 명씩 챙기니까 큰 문제지.”
“후배들한테도 선배들이 그렇게 챙겨주니?”
“그러면 문제가 안 되게?”
“너는 의제 맺은 선배 없지?”
“응, 하자고 하는데 다 거절했지. 그런데 거절도 한두 번이지 잘못 찍히면 선배들한테 왕따 당하니까 언제까지 버틸지 걱정이야.”
“네가 왕따 시키면 되지?”
“아빤, 그게 쉬워, 선배들이 쫙 째려보면 얼마나 주눅이 드는데.”
“허긴….”

의제가 무엇인지 조금 이해가 갔다.

“그럼, 전부 그렇게 선배한테 바치는 것만 있냐?”
“아니, 좋은 선배들은 잘해주기도 하지만 거의 드물지.”
“넌, 절대로 의제 같은 것 맺지 마라. 만약에 계속 의제 맺자고 하면 아빠한테 허락받고 한다고 그래라. 그래도 계속 그러면 아빠나 엄마 보는 앞에서 맺어야 한다고 해라.”

어쩌면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의제맺기’가 유행처럼 번진다는 이야기는 다소 의외였다. 생소하기도 하지만, 선배들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의제를 맺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무슨 조직의 계보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80년대 초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시절이 많이 변하기도 했겠지만 분명 그때에도 잘 아는 선후배나 친구들끼리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걸 빌미로 물건이 오간다거나 돈이 오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들보다 좀 각별하게 친한 경우에는 친형제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선배라는 것을 내세워 갈취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갈취행위였기 때문에 처벌을 받았고, 그래서 음성적으로 행해졌으니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의제를 맺었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유행한다는 ‘의제맺기’는 조금 빗나간 것 같다. 이 학교만의 유행인지, 아니면 전반적인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좋아 의제지 후배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희도 의제맺냐?”
“맺는 애들도 있긴 한데, 중학교 언니들처럼 뭐 사주고 그런 건 안 해.”

나는 당연히 “의제가 뭐야?”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니, '의제맺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나보다. 이런 유행은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유행보다 더 찜찜한 유행인 것 같다. 하교하는 중학생에 물었다.

“얘, 너 의제 맺었니?”
“의제요? 말이 좋아 의제지, 무서워요.”

‘의제맺기’, 학부모로서 이걸 어찌 바라봐야 할지 난감하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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