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 (3) 소설가 조정래

    <제주의소리>가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벌이는 ‘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정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제주 올레 길을 직접 몇 차례 걸었던 조정래 작가는 말년을 제주에서 보낼 생각을 갖고 있다는 뜻을 피력할 정도로 제주에 많은 애정을 보여 왔습니다.  그는 지인을 통해 비양도에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치 반대에 대한 글을 직접 <제주의소리>에 보내 오셨습니다. '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에 뜻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라 한다. 그리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자연유산의 섬’이다.
제주도의 빼어난 풍광과 함께 얼마나 잘 어울리는 별호(別號)들인가.

 평화--우리 인류 모두가 얼마나 갈구하는 것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그 포근하고 따스하고 아늑한 감각의 언어를 별칭으로 가진 제주도에 전쟁의 실체인 군부대(해군기지)가 들어선다니 말이나 되는가. 거기에 저항하고 나선 제주도민들은 참으로 훌륭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이 제주도의 참주인임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을 바로 ‘궤변’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섬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말이 안되는 억지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는 지자체 실시 이후 최초로 주민소환 투표를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또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림과 비양도 사이에 아시아 최대의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이건 미친 짓이다!
 
 배로 15분이면 운치있게 건너갈 수 있는 뱃길이 엄연히 있는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망치면서 ‘아시아 최대의 케이블카’를 놓겠다니. 사업자는 ‘아시아 최대’라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한몫 보려 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다른 말이 아니라 ‘아시아 최대로 자연을 파괴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무대가 넓은 긴 소설들의 취재를 위해 세계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 경험을 통해 자신있게 말하건대, 제주도의 풍광이야말로 그 아름답기가 세계 으뜸급에 속한다. 그 입증이 바로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인정 아닌가.

 그 명예로움을 지키기 위해 제일 노력해야 할 데가 어디인가. 두말 할 것 없이 제주도청 아닌가. 그런데 제주도청에서는 그 반대로 자연을 파괴하려는 행위를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아시아 최대의 케이블카’가 놓인다면 유네스코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취소할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그보다 더 큰 세계적인 국가 망신은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주시에 50층짜리, 서귀포에 60층짜리 건물들이 들어설 거라는 소식도 있다. 이것 또한 극심한 자연 파괴다.

  제주의 생명은 한라산이고, 한라산은 제주의 최고 상징이다. 우리가 제주도에 이끌리는 것은 그 해맑고 푸르른 바다의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신비 가득한 장엄하고 준엄하고 넉넉하고 푸근하고 자애로운 산, 한라산의 품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그 어느 곳에서나 눈을 들면 한라산의 의연한 모습이 보인다. 그 거룩한 모습이 그 어떤 인간의 조형물로도 가려져선 안된다. 조망권은 공공의 자산이기 때문이며, 흉악한 시멘트 덩어리인 고층건물들이 한라산을 반토막내고 있다면 누가 제주도에 가려 하겠는가.

  한라산은 단순히 제주도의 상징만이 아니다. 백두산과 함께 우리 한반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북쪽 끝의 백두산과 남쪽 끝의 한라산은 어찌 하늘 가득 머리에 물을 이고 있는가. 그 희귀한 신비로움 앞에서 우리는 보존의 의미를 더 크게 느낀다.

▲ 일본 후지산. 조정래 작가는 일본 정신인 후지산 주변에 고층건물을 세우려는 욕심있는 사업자도 없거니와 또 국민들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의 상징은 무엇인가. 후지산이다. 그 주변에다 50층, 60층 건물을 세운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일본의 사업가들이라고 그런 욕심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시도를 아예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사업가들도 그 정도의 식견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제주도를 100번 넘게 여행했다. 그리고 소설에도 썼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도를 예찬하며 여행을 권하기도 했다. 임명받지 않은 홍보대사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보이도록 집을 짓고 말년을 보내다가 뼈를 제주도에 묻을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생기고, 고층건물이 들어선다면 나는 영원히 제주도에 발길을 끊을 것이다. 그런 제주도는 더 이상 제주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한림의 현지 주민들이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점이다.

  지금 세계는 자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관광 수익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바다를 막는 간척 사업을 안한 지는 오래 되었고, 간척지를 허물어 갯벌을 복원시키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습지 보존 운동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제주도청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주민소환 투표가 또 일어나는 불행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정래 작가

▲ 조정래 작가 ⓒ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조정래(66) 작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그가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1989년에 10권을 완간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지난 3월 1권 기준으로 200쇄 출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열권을 모두 합치면 1376쇄를 찍어 700만부 이상이 팔렸을 정도다. 여기에다 ‘아리랑’과 ‘한강’을 합치면 1000만부를 훌쩍 넘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대문호다.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동리상, 만해대상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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