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강요배가 그린 감동과 상상의 습작展

6일 오후 제주교육박물관 2층 전시실은 도내 내로라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들 앞에 선 강요배 화백은 "한 코흘리개 소년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같은 이름을 쓰는 그 소년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며 "나이 먹은 술푸대 그림쟁이가 그 소년을 어떻게 대표해야 할지, 미안하다"고도 고백했다.

한국의 중견화가가 감사와 미안함을 동시에 전하는 꼬마의 이름은 ‘강요배’다. 지금은 한국 화단에서 묵직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지는 그지만, 꼬마 강요배는 오로지 스케치북 모퉁이까지 꼼꼼히 색칠하는 그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 강요배, <조카와 나>, 1964. ⓒ제주의소리

제주교육박물관은 오는 11월 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강요배의 습작시절 展’을 준비했다. 1961년부터 1977년 즉, 강 화백의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그렸던 습작들을 모아 놓은 전시는 제주교육박물관 장일홍 관장의 말처럼 “형편없는 태작일 수 있지만 그 습작들이 오늘의 강요배를 낳은 모태,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전시다.

추억의 초.중등학교 물품이 전시돼 있는 교육박물관에서 화가의 성장과정이 어땠는가를 파노라마로 지켜보는 것은 묘한 일이다. 이번 전시는 강 화백이 직접 제안해 이뤄졌다.

그에게는 300여점의 습작시절 작품들이 있다. 어린 시절 작품을 이같이 보관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습작들만을 가지고 전시를 하는 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관련계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강 화백의 이번 전시는 대부분 그의 어머니에게 빚 져 있다. 뭐든 쉬이 버리지 않는 모친은 강 화백의 그림 솜씨를 눈에 아껴서 궤짝에다 보관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초등학교 시절(1961)부터 고등학교(1970)까지의 그림들은 그래서 빛을 보게 됐다. 즉, 그의 어머니가 48년 전부터 마련한 전시인 것이다. 

▲ 새와 고양이와 강아지, 1964 ⓒ제주의소리

강 화백 자신은 “지금으로 볼 때는 썩 좋지는 않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전시작을 관람한 많은 이들은 혀를 내두르며 “역시 다르다”고 감탄한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린 ‘축구생각’과 ‘함박눈 오는 날’은 이미 기존의 표현방식은 지루하다는 듯 자유롭고 독특하게 그려져 있어 유독 눈길을 끈다. ‘축구생각’은 샤갈의 방식을 빌어 머리에 축구공을 배치하고 하늘과 운동장을 배경에 그렸다. 강 화백은 당시 “친구들은 의아해했고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고 전한다.

▲ 강요배, <축구생각>(1963, 왼쪽), <함박눈 오는 날>(1963, 오른쪽) ⓒ제주의소리

종이의 흰 공간이 거의 남김 없이 꼼꼼하게 색칠 돼 있어 꼬마 강요배가 그림 그리기에 들인 정성은 감동을 전한다. 강 화백도 "정성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림 그리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림을 억지로 그린 적은 없다. 즐기면서 그렸다. 볼거리가 없던 시절에 색으로 색칠해서 만드는 것이 자기가 보기에도 그럴 듯 했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 입시미술에 얽메여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화가가 목적이다 보니 그리는 즐거움, 재미있게 그리는 걸 잊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덧붙이기도 했다. 

▲ 강요배, 알베르 카뮈,1975 ⓒ제주의소리

즐거워서 그리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다.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인 70년도 그림과 71년도의 작품은 확연히 색감과 질감에서 많이 달라져 있다. 71년도 작인 ‘늑대와 부엉이와 소년’, ‘아기안은 소녀’ 75년도 작인 ‘알베르 까뮈’, ‘카프카와 그의 연인’에서는 인물의 까만 테두리가 명확해지고 색 톤도 좀 더 어두워진다. “대학에 낙방했을 때다. 막연하고 안되겠다 하는 처지가 보인다. 결의를 다지기도 하고. 미래에 어찌될지 모르는. 성장과정이 그런 것 아니겠나.” 강 화백이 회고했다.

이날 오프닝에는 강화백이 활동했던 동인문학회, ‘골빈당’(70년대 중반 문무병, 문무병, 고희범, 강창일, 고충석, 나기철 등이 결성했던 현 제주 문화계 인사들의 청년 시절 사모임), ‘낭만파’, 강 화백 친구들의 모임 ‘조베기’, 탐라미술인협회 등이 총출동했다. 문무병 제주교육박물관 기획위원은 “이 자리가 우리 제주 미술의 낭만주의 시대를 얘기하는 자리도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 화백은 꼬마 강요배의 작품에 대해 평가할 만한 적절한 위치를 잃은 것 같다면서 나름의 인격체라고 존중을 표했다. 오프닝에 모인 이들 역시 꼬마 강요배의 정성어린 그림들에 감동과 감사를 전했다.

전시문의=753-9105.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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