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겉과 속(3)

필자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05년부터 「제주군사기지반대도민대책위」집행위원장을 맡아오고 있습니다.(2007년부터는「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공동집행위원장) 이제부터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을 글로 써서 도민들게 알리고자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의 중심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드러내려 합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했던 인물들에 대해 실명을 사용할 것이며, 가급적 사실중심으로 풀어내지만 그 관점과 견해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이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도 경청하겠습니다. 

  아울러, 필자는 이 글에서 저의 직책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제 글이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국책사업이 이렇게 허술하게 추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의문을 펴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이 글들이 이후 있을지도 모를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한 여러 후술에 참고할만한 근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 ▲ 갈등 ▲ 환경 ▲ 국책사업론 ▲ 평화를 주제로 각각 몇 편의 글을 사실중심으로 쓸 것입니다.

 

  주민소환 서명과정이 끝난 7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해군기지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도 김방훈 자치행정국장과 통화하게 되었다. 김방훈 국장은 소환서명요건은 될 거 같고, 결국 소환투표까지 가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얘기, “소환은 끝까지 가더라도, 해군기지는 해군기지대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럼 강정마을 갈등문제는 누가 책임지겠냐?”는 의사를 피력해 왔다.
  도지사 주민소환이 해군기지문제로 벌어졌지만, 그것의 성패와 상관없이 해군기지는 추진될텐데, 그럼 강정마을 갈등문제는 누가 책임질 수 있냐는 것이다. 이면에는 소환서명으로 이미 성공했으니 대승적으로 접어달라는 요구와 함께, 소환명분은 얻을지언정 해군기지 갈등문제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는 논리가 함께 작동되고 있음을 느꼈다. 실제로 이 시기에 필자는 소환운동 중단요구를 몇 군데서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사실. 소환투표가 끝난 지난 9월 7일,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갑작스레 김태환 지사가 필자가 속한 단체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예의 그 기습적(?)인 방문이었다. 방문한 자리에서 김지사는 필자에게 대천동발전계획 추진을 언급하면서, “고 처장도 협력할 의무가 있지 않냐”는 다소 공격적인 물음을 던졌다. 대천동발전계획이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보상차원이자, 행정입장에서 강정마을 갈등해결의 수단으로 추진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김 지사의 이 물음도 앞서 김방훈 국장의 말과 유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물론, 나는 강정마을 갈등문제나 해군기지 문제해결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해군기지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직을 벌써 5년째 맡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통감한다.
  동시에, 해군기지 문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김태환 지사의 실기(失機)가 결정적이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나아가, 몇 차례 해결기회들에도 불구하고 국가사업이므로 불가항력이었다는 김 지사나 도정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실은 그것보다는 스스로 그 기회를 ‘차 버린’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갈등해결의 기회로 제안되었던 ‘다자간협의체’

  김태환 지사가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 실기를 자초했다는 첫 번째 사실은 2007년 초에 있었던 이른바 ‘다자간 협의체’의 무산이다.
  해군은 2007년이 시작되자마자 신문광고 등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펴는가 하면, 찬성단체들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빨리 결정해야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였다. 이를 의식한 듯 제주도 당국은 찬반 토론회 및 여론조사 일정을 추진하려 하였다.
 이에 안덕면주민대책위와 위미2리대책위, 시민사회단체대책위는 그 해 1월 11일, 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찬반도민과 도당국, 의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였다.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수준의 합리적 절차와 객관적 내용을 가지고 이 문제가 결정돼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이를 위한 공동의 협의기구, 즉 찬반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자리에서 필자는 협의체가 구성된다면 그 결과에 승복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주사회는 공론은 활발하지만 단 한 번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현안을 매듭지어 본적이 없는 만큼, 어느 사안보다 첨예한 해군기지 문제가 찬반합의에 의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승복할 것”임을 밝혔다.
  이 제안은 바로 다음 날, 유덕상 환경부지사의 ‘수용’ 입장 발표로 받아들여졌고, 협의체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유덕상 환경부지사는 협의체 수용과 함께 1월 도민찬반토론회 강행 입장을 동시에 밝혀 처음부터 협의체 난항을 예고하기도 하였다. 

  대책위는 협의체에 참여하면서 해군기지 유치여부 결정을 위한 로드맵을 협의체 차원에서 공동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그 구체적인 안을 제안했다. 2007년 1월 22일 제2차 협의체회의를 통해 제안된 내용은 협의체 구성방안과 원칙, 그리고 해군기지 유치여부 결정을 위한 각각 5건의 조사와 검토사항, 3가지 용역발주 의제, 그리고 이것의 진전도에 따라 공개발표회 및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도 당국은 이 중 자신들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토론회 관련사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도의 입장에 따라 처음 제안했던 안을 대폭 축약하여 2월 6일 열린 3차 회의에 재차 제안을 했지만, 이마저 모두 거부당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렵게 찬반이 함께 모여 만들어진 협의체는 4월 10일 김태환 지사의 해군기지 로드맵 발표에 따라 6차례의 회의 끝에 무산되고 말았다.

   내부에선 이미 ‘유치’ 결정해놓고 치러졌던 여론조사

  협의체가 무산된 배경에는 도의 행정권위주의가 결정적으로 한몫 했다.
  2007년 3월 8일 열린 제4차 협의체 회의에서는 그날 모인 찬-반측이 공히 도가 추진하는 해군기지 로드맵을 회의에 공개할 것을 요청하였다. 협의체는 협의체대로 운영하면서, 한편에서는 도가 스스로의 계획만을 계속 고집했기 때문이다. 찬성과 반대를 떠나 어렵게 만들어진 협의체이니 만큼, 우리가 제안한 로드맵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도가 생각하는 로드맵을 놓고 한 번 얘기보자는 취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협의체 회의를 주관한 유덕상 환경부지사는 끝내 이를 거부하였고, 이는 찬성측의 반발마저 불러일으켰다.

  합당한 이유없이 공개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찬반 모두의 반발이 심해지자, 당시 유덕상 환경부지사는 회의과정을 취재 중인 기자들을 모두 퇴장시켜놓고,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해군기지와 관련해 당시로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른바 해군기지를 매개로 정부와 인센티브 협상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 해군기지 유치여부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결정을 위해 도민토론회를 개최하고 여론조사를 추진하겠다는 도 당국이 실은 내부적으론 이미 유치를 결정했음을 사실상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해군기지 유치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추진했던 2007년 두 차례의 도민대토론회와, 5월의 여론조사는 이미 도가 내부적으로 기지건설 유치를 결정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다. 여론조사 자체의 문제도 문제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결정해놓고 이런 절차들을 밟았다는 것은 행정이 얼마나 권위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유덕상 부지사는 협의체 과정에서 로드맵 공개 논란이 일자 “어떻게 행정이 민간의 말을 들어서 결정하느냐”며 행정의 권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협의체가 도 당국의 그런 태도로 인해 답답한 지경에 이르자, 우리는 도지사 면담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4월 5일에 도지사 간담회 명목으로 만들어진 자리. 우리는 또 한 번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간담회 자리라는 것이 찬반도민과 관계공무원을 불러놓고 만들어진 ‘술판’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시 탑동 근처의 어느 횟집을 잡아놓고 김태환 지사는 술잔을 돌리며 스스로 취기만을 한껏 드러내다 ‘면담’을 끝내버렸다.

 해군기지는 그렇게 여기까지 흘러왔다. 당시 찬반도민과 지역주민, 도당국이 한자리에 모여 앉은 협의체에서 합의에 의해 로드맵이 만들어지고, 해군기지 문제가 결정되었다면 지금의 갈등사태까지 왔을까하는 생각이 그 때부터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협의체를 무산시키고, 내부에서 먼저 결정해놓고 밖에서는 갈등해소 운운하며 여론조사 등에 나섰던 도의 지난 날 행보에 비추어 해군기지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굴절만을 반복하는 것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계속)<제주의소리>

<고유기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