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내용 놓고 제주시장·국회의원 25분 간격 앞 다퉈 발표

제주시의 숙원사업인 항공고도제한이 완화돼 그동안 피해를 입어왔던 지역주민들이 일제히 환영하는 가운데 11일 이 같은 반가운 소식을 발표한 강창일(열린우리당, 제주시·북제주군 갑) 의원과 김영훈 제주시장의 기자회견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건설교통부를 상대로 강창일 의원과 김영훈 시장이 힘을 합쳐 ‘항공고도제한 완화’라는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어렵게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이란 ‘성과’를 거둬냈으나 강 의원은 제주도청에서, 김 시장은 제주시청에서 25분 간격으로 제 각각 발표해 담당공무원은 물론, 취재기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 소속정당이 다른 국회의원과 시장이 항공고도 완화란 ‘공적’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일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이랬다.

건설교통부로부터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사실을 통보받은 강창일 의원 측은 11일 오전10시30분에 기자회견을 갖겠다며 이날 오전 도청 기자실로 알려왔다. 그리고 이 같은 내용을 기자회견 35분전인 오전9시 55분에 제주시로 연락했다.

강 의원이 ‘항공고도제한 완화’ 기자회견을 도청에서 한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제주시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언제 발표해야 할지를 구상 중에 있던 김영훈 시장은 갑작스런 기자회견 소식을 듣자마자 강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항공고도 문제는 정치적인 것도 아닌데 왜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강창일 의원은 "보좌진의 실수로 도청에서 하게 됐다. 양해해 달라"고 김 시장에게 해명했다.

양 측간에 조율이 이뤄지지 않자 김영훈 시장은 강 의원과 통화 직후 실·국장과 과장 등 10여명과 함께 10시 5분에 시청 기자실을 찾아 항공고도제한이 완화됐음을 발표했다.

김 시장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항공고도 완화 문제는 특정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제주시 모든 사람들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김 시장이 기자회견을 한지 25분 후인 오전10시 30분 이번에는 강창일 의원이 도청 기자실을 찾아 항공고도제한이 완화됐음을 알렸다.

강 의원은 두 곳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게 된 사실이 부담스러운 듯 “항공고도제한 완화는 김태환 지사와 김영훈 제주시장이 함께 노력해 이룩한 성과”라며 김영훈 시장을 치켜세웠다.

강 의원은 또 “제주시청에서 함께 기자회견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 돼 송구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 의원과 김영훈 시장은 보도자료도 제 각각 만들어 언론에 배포했다.

항공고도 완화라는 제주시의 숙원사업이 해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제주시청 출입기자들은 순간적인 기쁨도 잠시, 기자회견이 두 곳에서 제각각 열렸다는 사실에 웃음을 잃었다. 항공고도제한 완화가 제주시의 숙원사업으로 시출입 취재기자들이 수년 동안 정부를 상대로 항공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 온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항공고도' 문제가 제주시 최대 현안 사업인데 도대체 도청에서 기자회견 하는 이유가 뭐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중앙기자단이 있는 도청에서 상대로 자신의 치적만 강조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좋은 일을 하고도 왜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김영훈 시장에게도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선수를 빼앗기자 따로 기자회견을 갖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모 기자는 "강창일 의원의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실국장 등을 대동해 부랴부랴 먼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도 좋지 않았다"며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기자회견하는 이런 해프닝이 어디 있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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