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이데올로기와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얼마전 모처럼 시간이 나서 제민, 제주, 한라일보의 칼럼을 들여다보았다. 제주의 소리에 칼럼을 쓰게 되면서 다른 신문의 칼럼에는 어떤 주제가 어떤 논지로 글이 올라와 있는지를 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분의 글 내용과 유사하게 칼럼으로 글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끔씩 다른 칼럼을 일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필자가 혹 간과하고나 소홀히 하고 있는 제주사회의 다른 현안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에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의 눈에 번쩍 띤 칼럼은 바로 제주사회의 최대 논쟁점이자 어쩌면 최장기 쟁점이고 또 특히 최근 제주지방변호사회의 문제제기 이후 더욱 뜨거워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고계추 제주도개발공사 사장이 쓴 글이었다. 평소 제주 공기업의 유능한 CEO로 존경을 하는 분인지라, 해군기지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찬찬히 읽어 보았다. 마침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최근의 해법 가운데 하나로 합당한 보상 접근법이 떠오르고 있어서, 마지못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현실순응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해군기지, 이기주의로 풀어야 하나”라는 제목이 그렇게 섹시하게 다가올 수 없었다.

  그러나 글을 다 읽고 난 소감은 ‘2%’ 부족이었다. CEO로서는 유능한지 모르지만, 제주도를 이끌어 가는 어른인데도 도민보다는 관에 기울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글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고계추 사장의 글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우선 이 부분부터 시작해야 할 듯싶다. “정부가 안전한 평화, 건강한 평화를 지향하는 제주 평화의 섬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는 고 사장의 주문은 지당한 말씀이다. 제주해군기지의 해법은 바로 정부의 성의 내지는 지원보장에 있다. 제주지방변호사회가 호소하고 있는 바가 바로 정부의 지원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이 아닌가. 고 사장의 글을 이렇게 맨 뒤쪽 부분만 읽는다면, 제주해군기지는 이기주의로 푸는 게 아니고 정부의 확고한 지원보장책 마련으로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해결을 보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최근 제주도민사회의 공감대를 재확인해 줄 것이었다.

  이렇게 덕담만 하고 끝내기에는 제주 사회에서 고계추 사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이나 무언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굳이 이렇게 칼럼을 통해서 해군기지 논쟁을 바라보는 고 사장의 케케묵은 시각이랄까 혹은 상당하게는 무언가 잘 모르면서 얘기를 꺼내는 무지의 소치를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냥 고 사장 개인의 글이라 읽고 넘겨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개인의 글을 놓고 한마디 하는 이유는, 지난 30년간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필자로서는 고 사장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또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고계추 사장은 해군기지를 이데올로기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이데올로기 문제일까 궁금해서 더 읽어 보았더니, 그 근거는 “천주교정의사제구현단이 제주해군기지 반대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재야단체가 함께 동참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해군기지 추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른바 ‘좌빨’이라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심에 있는 단체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두환정부 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밝혀냄으로써 한국의 민주화에 일익을 담당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모욕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뭐 하는 지를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괜스레 색칠하지 마시라. 해군기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 재야단체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경사되고 있기에 해군기지 문제를 이데올로기 문제라고 쉽게 재단하고 있는지 그 무지에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는 근 10년간 대학에서 이데올로기를 강의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데올로기란 말을 쉽게 쓰지 못한다. 그만큼 이데올로기는 어렵고 복잡다단한 개념이다. 잘 모르면 안 쓰는 게 상책이다. 더욱이 해군기지 문제도 얽히고설켜 있어서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데 여기에 이데올로기 문제라고 쉽게 덧씌움으로써, 아주 쉽게 해군기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경직되고 편협된 세계관의 소유자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해군기지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고사장의 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행여 고계추 사장이 진정으로 해군기지를 이데올로기 문제라고 규정하고 싶다면, 반대 측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찬성 측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거론하면서 비판을 한다면, 그런대로 유능한 CEO로서 균형된 시각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최소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욕보이려고 하지 말고 또 권위주위정부 시대에서나 쓰던 재야단체라는 용어를 버리고 시민사회단체라고 제대로 호명하는 자세가 갖추어진 연후에 비로소 해군기지는 이데올로기 문제라고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고계추 사장은 해군기지 문제를 집단이기주의 문제로 규정을 하고 있다. 이 역시 해군기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만 화살을 겨냥하고 있다.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사람은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과연 그런가? 고 사장이 해군기지 찬성도 집단이기주의의 소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필자가 이를 잘 못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군기지가 관련자 모두의 집단이기주의의 문제일까? 어떤 집단이기주의일까? 제주지역이기주의, 강정마을이기주의, 해군이기주의, 김태환 지사 및 그 측근들의 집단이기주의, 제주상공인들의 집단이기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집단이기주의 등등 우리는 관계 당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떠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해군기지 문제에서 중심에 있다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떤 집단이기주의를 갖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잘 생각이 안 난다. 

 해군기지 문제를 쉽게 집단이기주의로 몰고 가는 이면에는 이른바 국가의 중립성 명제가 깔려 있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가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실제에 있어서 국가 혹은 그 집행자로서 정부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정부마저도, 제주해군기지의 경우에서 해군은 집단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니 너무 제주지역이기주의니 강정마을이기주의니 하면서 몰아붙이지 마시라. 왜냐고요? 고 사장도 제주도개발공사의 문제에서는 집단이기주의를 고수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그렇다고 필자가 집단이기주의는 불가피하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냥 놔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집단이기주의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타협을 통한 적절한 보상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고계추 사장의 지적에 일면 동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방안일 뿐이다. 사회갈등과 분열을 조정ㆍ관리하기 위해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집단, 계층, 지역에게 보상을 마련해 주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즉, 해군기지와 같은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집단, 계층, 지역이 있다면, 이들의 대표를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법이 그것이다.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보상은 종국에는 손실을 겪는 강정마을의 대표가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그 성격과 수준이 좌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제주해군기지 추진에는 이와 같은 정책결정 과정에의 주민참여가 빠져있다. 이른바 소통이 빠져있다. 이렇게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고 집단이기주의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소통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양길현 제주대 국민윤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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