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1)] 조상의 지혜를 보여준 소금밭

제주에 나고 자라면서 참 많은걸 받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시간동안 그 풍족한 배려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숨은 사랑만을 당연한 것처럼 받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보이는 게 달라집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은 무의식으로 보이지 않더니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이 땅 제주는 긴장감이 들 만큼 실감나는 현실인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의 한곳 한곳이 궁금해졌고 그리고 푸른 자연 또한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우리 아이가 살아갈 땅이 병들어 가는 실상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푸른 제주 또한 사무치도록 사랑합니다. 그래서 좁고도 넓은 제주를 한곳씩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때로는 친구와…어떨 땐 사랑하는 사람과…또 가끔은 혼자,
그렇게 길목 길목을 물으며 찾아가는 곳들을 소중하게 여기에 써 보려 합니다.
어눌하지만 읽어 주시고. 만약 부족한 내용이 있다면 덧붙여 주시고 그래도 쓸 만한 구석이 있다면 누구든 나누려 합니다. 숲에서 만납시다. [필자]


한 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은
그 곳의 자연과 거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 또한 들여다보고, 잔잔한 동감을 얻어야 진정한 여행의 맛을 보았다 할 것이다.
겨울비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은 제주인들의 삶을 보러가자.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애월에 다다른다.

거기에서 한담동에서 바다쪽(토비스콘도쪽) 길로 들어서면 바다와 더불어 해안의 수려한 경관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LG주유소 옆에서 바다쪽으로 방향을 틀어 작은 길을 따라 걷자.

구멍숭숭 까만 돌담들이 구불구불 끊어졌다가 다시 맞닿아 이어지기를 몇 번,  끝이 없이 이어진다. 밭담이다.

▲ 밭
제주에는 땅에도 밭이 있고 바다에도 밭이 있다.

▲ 배무숭이 소금밭
애월읍 배무숭이 소금밭이 오늘 볼 바다밭이다.

바다밭에는 메역밭, 자리밭 등 많이 나는 것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 소금밭은 갯가에서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다.

제주에서는 육지에서처럼 염전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돌 위에서 바닷물을 이용해 만드는 소금빌레, 모래를 이용해 만드는 소금밭 또는 모살왓 으로 큰 두 가지 형태를 이룬다.

배무숭이 소금밭은 모래를 이용해 소금을 만들었던 곳이다.

나지막한 돌담으로 경계를 만들어 개인 소유를 구별했으며 상속까지 가능했다 한다. 현재도 그 모습이 뚜렸다.

▲ 구들돌처럼
배무숭이 소금밭은 돌들로 구들바닥처럼 평평하게 다져놓아 그 위에 모래를 뿌려 놓는다.

▲ 모래를 뿌려서
사리 때 물길을 따라 들어온 바닷물을 물통에 고이게 한 뒤 그 모래위에 바닷물을 부어 햇빛에 졸이면 모래가 소금기를 잔뜩 머금게 된다.

▲ 곤물통
이때 곤물통 돌 위에 새를 깔아 그 위에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를 얹어 놓고 바닷물을 살살 부으면 모래에서 소금기가 녹아 약20%의 농축된 짠 물이 흘러내리면 그걸 받아 가마솥에서 끓이면 소금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솖은 소금'이라한다. 참고로 소금빌레에서 햇볕으로만 만든 소금은 '돌소금'이라 한다.

이렇게 제주에서는 소금 필요량의 30%를 자급하고 나머지 70%는 육지에서 수입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부족한 소금 때문에 바다에 움푹한 곳에서 배추절임을 했던 '짐지통'이라는 곳도 있다.

이처럼 옛 제주사람들은 주위의 자연 소재를 이용하여, 자연현상에 거스르지 않고 지혜롭고 바지런한 생활을 하지 않았나싶다. 그런 생활에 어디 한번 방바닥에 등 붙이고 편히 누운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만은 그래도 그 소박한 삶이 많이 그립다.

이쯤에서 현대의 첨단화되고 풍부하고 간편한 삶과 비교해 봐도 좋음 직 하다.

씁쓸한 마음 어쩔 수 없지만 푸른 바다에 달래고 이제 제주의 집을 찾아가 보자.

그러면 이런 땅위의 밭과 바다밭을 일구며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보자.

▲ 그늘방앗간
하가리 잣동네. 자잘한 돌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잣동네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돌담들이 자잘한 돌로 이루어진 겹담이 마치 성처럼 쌓여진 곳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제주의 전통가옥 초가와 그곳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만난다.

마을에 들어서자자 정겨운 제주 올레가 보인다. 그리고 여름이면 그늘이 시원할 팽나무 그늘자리, 말방앗간도 볼거리다.

▲ 주경운기장
아~  그리고 저건… '개인 주경운기장?'  하하…재밌다.

이 마을에는 제주도 지정민속자료로 지정된 초가들이 몇 개 있다. 그 중에서 문시행님 가옥이 아직도 볼만하다. 여기서 잠시 주의할게 있다. 그 집에는 현재 할머니 한분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예의 바르게 인기척을 하며 들어가야 하고 정중히 관람 부탁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마음을 쓴다면 할머니 심심할 때 드실 ‘동그리 사탕’ 한 봉지 사들고 가면 어떨까? 우리도 동네 점방을 찾았다. 마침 하가리 마을 회관을 지나쳐 다음번 오른쪽으로 난 골목에 보면 할머니 할아버니가 아직 운영하고 있는 조그만 점방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초코파이 한 상자와 누룽지 맛 사탕 한 봉지를 샀다.

▲ 점방
사탕을 사들고 다시 돌아 나와서 마을회관 앞을 거쳐 작은 시멘트 길로 걸어 들어가면 감귤 과수원을 거쳐 여러 개의 올레를 지나 초가가 나온다.

▲ 초가집
"할머니 이수꽈?"

할머니는 비오는 날인데도 마당 모서리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계시다. 우리는 준비해온 선물을 마루 끝에 놓았다. 할머니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 툇마루의 과자
거릿 길에 인접하여 우영밭을 두고 북동향으로 안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안거리 맞은편에는 8m 떨어져서 밖 거리가 있으며 그 옆에 쇠막이 있다. 이 안거리와 밖거리의 거리가 참 의미롭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던 게 생각이 난다.

보통 안거리에는 부모가 살고 밖거리에는 아들내외가 사는데 문을 닫으면 서로의 생활이 독립되고, 문을 열어 이야기하면 대화가 가능한 거리란다. 즉, 서로의 사생활이 보장되고 때로는 같이, 또 때로는 따로따로의 적당한 거리유지가 가능한 거리란다. 대문이 없이 우영을 끼고 쇠막을 사이에 두고 밖거리 모서리쪽으로 S형의 올레가 마당까지 이어진다.

올레가 S형인 이유는 거리에서 불던 바람이 올레를 따라 S형으로 들어오면서 그 세력이 약화되어 사람이 사는 마당에는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배려한 형태이다. 마당 남쪽에는 눌이 있었던 곳에 눌굽만 보인다. 안거리 측벽 곁에 통시가 있는데, 지금도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통시옆에 감나무 역시 악귀를 쫓으며 잘 살아있다. 올레를 빼고 초가를 뺑둘러 도로와 경계를 이루는 접담이 1.3m 높이로 쌓아져 있으며 역시 잣동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자잘한 돌들로 성처럼 이루어져 있다. 그 담에는 아담한 계단이 나 있는데 이는 잣담위에 호박을 심어 놓으면 그 위에 호박이 열려 그 것을 따러 올라갈 때 사용한단다. 
 
▲ 잣동네돌담
얼마나 돌이 많았으면 저렇게 성처럼 겹담을 쌓고도 아직 밭에는 흙보다는 잔돌들이 많다. 그래도 그 잔돌들 사이에 파도심고, 무우도 심고, 배추도 심어져 있다. 아마도 손끝에 피가 맺히고 맺히다 굳은살이 험했던 세월을 이기고 있지 않을까? 그 거친 삶을 무엇으로 위안하며 살았을까?

빨래를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보는 것도 좋으리라.

"할머니, 집안에 무신일 이시문 어디가나수꽈?"

하가리에는 '오당빌레'라는 마을당이 있다. 옆 마을 상가리와 같이 모시는 당이다. 신목이 오랜 세월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쓸어줄듯 범상치 않게 서있다. 신목 주위로 작게 돌담으로 둘러쳐진 모습이 아담하고, 평안하다.

▲ 오당빌레
오늘은 여기 오당빌레에서 씁쓸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을 안정하고 이제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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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량님은 역사문화기행 전문여행사 '이야기 제주'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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