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살리기 릴레이칼럼](4) 강제윤 시인
케이블카 대신 에코 아일랜드로

한반도 막둥이 섬 비양도에 케이블카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림읍 협재 해안에서 비양도를 잇는 1952m로 국내 최초, 아시아 최대의 해상케이블카라고 합니다. 사업자는 비양도케이블카가 건설되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양도 아름다운 경관이 케이블카로 훼손당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사는 될지모르지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비양도가 우리 세대에서 끝날 수 있다는 걱정입니다. 비양도를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주의소리>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비양도 살리기 릴레이 칼럼’을 시작합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비양도 앞 바다 ⓒ 제주의소리

태고의 힘, 제주

봄날이었다.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거대한 쇠창으로 등을 찔렀다. 왜지? 누구지? 나는 생의 침략자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통이 엄습했지만 숨이 턱 막혀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핏물이 대지를 적셨다. 산 아래 청보석의 바다가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갔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는데 공중에서는 사람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그치지 않았다.

꿈이었다. 비양도 케이블카 소식 때문이었을까. 악몽은. 협재와 비양도 사이에 케이블카가 생긴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그날 이후 하루도 편한 잠을 자지 못했다. 비양도는 가파도와 함께 난개발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천혜의 섬이다. 애기업개 돌을 비롯한 수많은 기암괴석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비양도를 환상의 섬이라 이름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섬에 케이블카라니.
 
내 몸과 정신의 촉수는 온통 비양도를 향해 뻗어갔다. 나는 비양도를 처음 다녀온 날 이후부터 내내 비양도를 품고 살았던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비양도는 물론 제주 본섬과 마라도, 우도, 가파도, 상추자, 하추자 등 제주를 걷고 또 걸었다. 비양도 뿐이겠는가, 그때 이후 제주 섬들 모두를 품고 살았다. 제주를 온몸과 온 호흡으로 온전히 걸어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제주를 품지 않을 수 있을까. 대체 제주 섬의 그런 마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파괴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 자연의 힘이 아닐까.

제주가 세계 자연유산이 된 것도 태고적 신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자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주의자들은 세계 자연유산 지정을 또 다른 개발의 기회로만 생각하는 듯하다. 개발이 가속화 되는 순간 제주는 세계 자연유산의 지위를 박탈당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르는 걸까. 모르는 것이 아니겠지. 개발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연유산이든 아니든 무관한 것이겠지. 그러니 그 아름다운 한림 바다와 비양도 사이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경관 보호를 위해 노출된 전신주를 없애고 전선마저 지하로 매설하는 판에 거대한 철탑과 대롱거리는 깡통들이라니!

▲ 비양도의 무덤과 산담 ⓒ 제주의소리
 
비양도 개발 이익은 비양도 주민들에게  

협재와 비양도간 케이블카 설치는 한림 바다를 놀이공원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그것이 경관을 해치리란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케이블카 정류장과 대량 유입되는 관광객들로 국내 유일의 비양나무 자생지인 비양봉의 생태계가 파괴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그럼에도 제주도나 개발업체가 케이블카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제논리. 하지만 주민 공청회에서 비양도와 한림지역 주민들은 케이블카 설치가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나 또한 주민들의 의견에 동감한다. 그래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말로 개발업체인 (주) 라온랜드의 주장처럼 "케이블카 설치로 제주 서부권 관광경쟁력 강화와 지역주민 고용효과"를 촉발 시킬 수 있을까?

업체가 밝힌 지역주민 고용효과는 고작 주민 16명을 청소부와 관리인 등으로 고용하겠다는 것이 전부니 더 이상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그럼 서부권 관광경쟁력 강화는? 개발업체의 주장처럼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수십 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들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관광객이 남기고 가는 이익은 도대체 누구에게 돌아갈까? 비양도 주민들일까. 당연히 개발업체다. 개발 업체가 이익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이 제주 서부권 관광경쟁력 강화와 무슨 상관인가.

누구도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개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다. 지금까지 제주의 개발은 철저하게 외부자본만 배불리는 개발이었다. 개발 업자를 위한 개발인가? 주민들을 위한 개발인가? 이제는 주민들을 위한 개발을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 통영 연대도 ⓒ 제주의소리

통영 연대도, 주민 주도의 지속가능한 개발

케이블카 말고는 비양도를 개발할 방법이 없을까? 경관을 해치지 않고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비양도 주민들이 이익도 얻는 개발은 과연 없는 것일까. 여러 날을 고민 속에 보내다 나는 문득 통영의 연대도를 떠올렸다. 통영의 달아에서 뱃길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연대도.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하는 연대도 일대 바다의 경관 또한 비양도의 풍경 못지않은 절경이다. 하지만 연대도는 비양도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인천에 있던 나는 문득 통영으로 향했다. 2009년 10월 13일, 마침 연대도 마을 회관에서는 화석에너지 제로를 목표로 한 태양광 발전 설비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섬 주민들과 통영의제 21 관계자, 통영시청 공무원, 태양광 설비업자들 간에 진지하고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주민들은 거침없이 의견을 개진했고 시청 공무원들의 자세는 겸손했다.

▲ 태양광 발전 설비를 위한 연대도 주민 공청회 ⓒ 제주의소리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연대도. 통영시는 2009년부터 시민단체 통영의제 21과 연대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84억원의 예산을 편성 연대도를 생태 섬, 무공해 섬, 화석에너지와 쓰레기 제로의 섬, 에코 아일랜드로 만드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외부 자본을 배제하고 섬 개발의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연대도 바다에는 전복, 소라, 해삼 등이 지천으로 깔렸었다. 해마다 30명이 넘는 제주도 해녀들이 들어와 물질을 하고 갔다. 그래서 한 때는 돈이 넘친다 해서 '돈섬'으로 까지 불렸었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턴가 해산물들은 종적을 감추고 섬은 노인들만 남아 늙어가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섬, 그 덕분에 섬은 개발의 광풍을 피할 수 있었다. 섬은 난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연대도는 여러모로 비양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연대도 에코 아일랜드 사업이 진행되면서 섬은 다시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벌써 출향자 중 젊은이들 몇은 귀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도 하다. 섬이 다시 젊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1단계로 연대도 주민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벼려둔 33층의 다랭이 밭을 야생화 밭으로 조성하고 폐교를 리모델링해 숙박을 겸한 에코체험 센터를 가동 중이다. 이들 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은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된다. 앞으로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를 도입하고 생태 탐방로 조성, 대안 에너지 체험 시설, 전통 어가 복원, 연대도 폐총 복원, 허브단지 조성, 대표 브랜드 농수산물 개발 등 다양하고 친환경적인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들 모두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사업들이다. 연대도 에코 아일랜드 사업은 벌써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2009년도 지속가능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 연대도 에코 아일랜드 마스터플랜 ⓒ 제주의소리

▲ 에코체험센터로 변신한 연대도 폐교 ⓒ 제주의소리
비양도를 에코 아일랜드로

연대도 에코 아일랜드 사업 현장을 둘러보면서 나는 문득 이 섬이 비양도의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관을 해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섬 주민들에게는 이익도 없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경관도, 생태계도, 주민도 모두 살릴 수 있는 개발. 개발업자가 아닌 주민 주도의 지속가능한 개발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체로 높은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은 물론 노약자나 장애인 등 소외계층까지 경관을 즐기게 해주겠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비양도는 케이블카가 아니라도 배를 타고 20분이면 노약자나 장애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10분이면 오를 수 있는 비양봉 정상에서는 답답한 케이블카보다 더 아름답고 탁 트인 경관을 맛볼 수 있다. 그럼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입장료 수입에 대한 욕심 말고 어떠한 명분도 없다. 단지 개발업체의 입장료 수입을 위해 한림 바다의 풍경이 사유화 되고 비양도의 생태계가 파괴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죄악이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는 순간 비양도는 더 이상 주민들이 아니라 개발 업자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섬의 주인은 비양도 주민들인데 어째서 섬의 입장료를 개발 업자가 챙겨 가야 하는가. 섬이 주는 혜택은 주인이 누려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제주도에 간곡히 제안 한다. 이제 그만 케이블카 설치 허가를 취소하고 통영시처럼 비양도를 에코 아일랜드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떠시겠는가. 주민 주도의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은 또 어떠시겠는가. 남해 바닷가의 작은 도시 통영시도 하는 일을 어찌 제주특별자치도가 능히 할 수 없겠는가.  / 강제윤 시인

▲ 강제윤 시인
   강제윤 시인은 여행자들에겐 필독서나 다름없는 ‘섬을 걷다’란 여행지침서를 쓴 프리랜서 작가이자, 일정한 거처 없이 살아가는 떠돌이 시인이다. 남해 보길도 돈방골에서 태어난 그는 인권활동가로 살다가 고향인 보길도로 귀향해 8년동안 ‘보길도 시인’으로 살았다. 보길도 차연하천을 시멘트 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막아 내는 등 고향의 자연을 지키는 일에 힘썼으며, 33일간 단식으로 보길도의 문화유산 파괴를 막아내기도 했다. 2005년 가을 보길도를 떠나 ‘청도 한옥 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거처 없는 유랑자로 살고 있다. 2006년 완도군 덕우도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사람 사는 한국의 모든섬(500여개)을 순례 중이다. 3년간 100여개의 섬을 걸은 후 내 놓은 작품이 ‘섬을 걷다’이다. 자동차와 핸드폰을 갖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 ‘3무’의 삶을 살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 사는 즐거운》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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