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2] "절울이오름" "동알" "섯알"

절울이, 풍수지리적으로는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 두 신선이 밝은 달을 바라보는 형국) 또는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 신선이 책을 보고 있는 형국)이라 불리는데 한라산에서 달려온 맥이 산방산을 거쳐 바굼지오름과 금산을 거쳐 절울이에서 우뚝 솟아서 힘을 모으고 다시 남쪽으로 가파도와 마라도로 지세가 흘러 내린다.

송악산으로 더 알려져 있는 절울이오름, 해발 104m, 비고 99m이며 복합형 화산체를 이루고 있다. 절울이라는 뜻은 바다의 물결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쳐 우뢰같이 울린다는 뜻이라 한다.  제주의 오름의 대가 고(故) 김종철님은 "물결이 왜 우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제주의 오름도  제주에서 옛부터 불리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

제주의 남쪽끝에 있는 절울이오름은 복합형화산체다. 제주도의 지질학연구에 소중한 절울이오름은 이중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오름이다.  먼저 해저에서 수중폭발에 이어 2차폭발로 지금의 주봉이 만들어지고 깊은 굼부리가 생겼다.  깊이만해도 약 69m정도이며 경사각이 심하다.  마치 가마솥같다고하여 "가매창"이라고 불리운다. 북쪽을 제외한 동,서,남쪽은 파도의 침식으로 인해 무너져 단애가 되었다.  지금도 침식중이라 유구한 세월이 흐른다면 주봉만 남고 모두 사라지리라.
    

▲ 절울이오름 ⓒ 제주의소리
▲ 절울이 바닷가 단애 ⓒ 제주의소리

날씨가 흐리다.  멀리 한라산은 물론 가까이에 있는 산방산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의 전경사진을 찍으려 하다 포기한다.  하지만 오름자락의 억새는 하늘거리고  쑥부쟁이는 청초한 색의 꽃잎을 활짝 폈다.  노란색의 갯고들빼기는 억새와 쑥부쟁이와 어울려 노랗게 피어 있다.  싱그러운 바다가 있고 가을의 대명사인 억새가 있고 꽃이 있고 오름이 있고  그 오름을 감돌아 가는 바람에 실리는 맛과 멋의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제주의 아름다움이다.
    

▲ 바닷가 억새 ⓒ 제주의소리
▲ 갯고들빼기와 쑥부쟁이 ⓒ 제주의소리

정상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붉은 송이의 암석들과 화구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공포감에 순간 몸이 절로 굳어진다.  그 먼 옛날 순간의 고요함을 깨고 시뻘건 용암이 대지를 뚫고 분출하는 모습은 장관이었으리라.  절제된 자연의 힘이 제주의 일부분을 만드는 순간이다.  남쪽으로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북쪽으로 동알, 섯알오름, 바굼지오름과 금산, 모슬개오름과 그옆에 고개를 살짝 내민 가시오름이 있고 동쪽으로는 다정한 형제섬과 산방산, 용머리, 다래오름, 군산이 있으며 저멀리 한라산이 있다.

▲ 절울이 봉우리 ⓒ 제주의소리
▲ 절울이 굼부리 ⓒ 제주의소리

바람이 분다.  제주는 오름과 바람의 섬이다.  바람은 절울이를 숨가쁘게 올라와 굼부리안에 머물다 다시 솟는다.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하지만 절울이는 울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에 의한 훼손은 정도가 지나쳐 이제는 복구조차 힘들것 같다.  정상의 송덕비와 삼각점이 있는 곳은 이미 파헤쳐져 밑둥이 완전히 드러나 있다.  이곳은 붉은 송이로 이루어져 있어 약한 지반이 드러나면 파괴는 급속도로 이루어 진다.  굼부리를 빙도는 등산로 또한 마찬가지다.  정상을 오르는 수많은 등반로가 이제는 풀한포기 없는 자갈길이 되고 말았다.  붉은 송이는 이제 먼지로 뒤덮혀 회색빛이 된지 오래되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절벽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들은 절울이를 아프게 한다.  조금 돌아서 보고 조금 아꼇다보면 될 것을 걷는 것에 급급하여 길만 보고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보존대책도 없는 절울이에서 살점이 도려나가는 고통을 느낀다.
    

▲ 훼손된 절울이 정상 ⓒ 제주의소리
▲ 훼손된 절울이 정상 ⓒ 제주의소리

이래저래 절울이는 사람의 발에 치어 울고 있다.  제주의 아픈 역사에 목이 메어 있는 절울이, 일제시대 알뜨르비행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울고 섯알오름의 집단 학살에 울고 지금은 관광이라는 이름에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절울이여 울어라. 그래서 속이 시원해진다면  얼마든지 울어라. 죽을때까지 말이다.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절울이오름 북쪽에 있는 동알오름으로 오른다. 해발 45m, 비고 30m이다.  오르다 보면 특이하게 망자의 울타리가 바다에 있는 돌로 둘러져 있다. 보기 드문 경우다. 절울이때문에  지나치기가 쉬운 오름이다.  대부분이 띠로 덮혀 있으며 여기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절울이와는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다.  서쪽으로는 조그마한 알오름이 있으며 섯알오름과 이어져 있다.
    

▲ 절울이에서 바라본 동알오름 ⓒ 제주의소리
▲ 동알오름 묘 ⓒ 제주의소리

섯알오름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가슴이 시린 오름이다.  해발 40.7m, 비고 21m이다.  이 주위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 놓은 격납고가 20여개가 남아 있고 동알과 섯알오름은 알뜨르비행장을 경비하기 위하여 파놓은 고사포진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가 제주땅을 강탈하여 제주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었다.  지금 해군기지문제로 알뜨르비행장을 돌려받느니마느니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이전에는 제주사람들의 땅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모슬개오름과 격납고 ⓒ 제주의소리
▲ 섯알오름 고사포 진지 ⓒ 제주의소리

지금은 알뜨르비행장주변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섯알오름 기슭에는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가 있다.  제주의 비극 4.3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 무렵 6.25전쟁이 나자 당시 내무부치안국에서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을 압살하던 예비검속법을 악용, 경찰에 의하여 강제검속을 당한 제주사람 344명을 관리하다 1950년 7월 16일에 그중에 1차 20명, 8월 20일에 2차 60명, 3차 130여명을 한밤중과 새벽에 학살한 후 돌무더기와 함께 암매장 한다.  하지만 곧 유족에 의해 발각되자 이곳을 수년동안 출입금지구역으로 만들어 놓는다.  한동안 주민들의 입을 봉해버린 역사는 더 잔혹해졌지만 후손들은  알아볼 수 없는 유해를 발굴하여 안장하고 이곳을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 부르며 오늘에 이른다.  오늘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가는 길에 철잊은 벚꽃이 하나 피어 있다.
    

▲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 제주의소리
▲ 섯알오름과 추모비 가는 길 ⓒ 제주의소리

제주가 토해내는 아픈 역사와 자연이 파괴되는 괴로움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제주사람들이 할 일인 것이다.   제주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면 산천초목이 쓰러지며 몸부림칠 것이다.  절울이에서 울리는 울음이 기뻐서 우는 소리가 되어 맴도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제주의소리>

<김홍구 객원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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