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 맛] 제주의 순대 - 수애

순대의 기원은 몽골 징기스칸의 전투식량

  순대의 사전적 의미는 “소나 돼지 등의 창자에 여러 재료를 넣고 봉하여 삶거나 쪄서 익힌 음식”이라 한다. 이러한 순대의 사전적 의미만을 놓고 보면 서양의 소시지와 다를 바 없다. 동양과 서양의 음식가운데 흡사한 느낌의 음식들이 많은데 그런 경우 대부분 그 음식의 기원이 동일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순대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이 대륙 정복 시 전투식량으로서 짐승의 창자에 쌀과 야채를 혼합해서 집어넣고 말린 후 전투식량으로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경 중국의 “제민요술”이라는 책에 양의 창자를 이용한 순대와 유사한 음식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훨씬 오래된 음식으로 추정된다. 즉, 순대의 기원은 중국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 역시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미 순대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북쪽의 추운지방에서 지방을 섭취하고 추위에 견디는 음식으로 많이 먹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순대의 기록은 매우 다양해지는데 “규곤시의방”의 “음식디미방(안동장씨)”에는 개를 이용한 순대가 기록되어있고 “규합총서”와 “증보산림경제”에는 쇠고기 창자를 이용해서 꿩고기, 닭고기, 쇠고기를 이용한 순대 제조법이 기록 되어있는가 하면 “시의전서”에는 민어의 부레를 이용한 어순대와 오늘날과 같은 돼지순대 제조법이 전해 내려온다.

  또한 순대는 각 지방별로 독특하고 유명한 것들이 있는데 이북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음식을 그리며 만든 아바이 순대, 서울의 순대골목으로 유명한 신림동의 당면순대가 유명하고, 인천시 계산동의 옛 지명을 딴 백암 순대와 용인시 백암 지역의 백암 순대가 모두 유명하고 충청권에서는 애국열사 유관순의 고향인 아우내 장터의 병천 순대 등이 유명하다.

▲ 제주 전통 순대. 제주에서는 이를 '수애'라 부른다. 수애는 채소를 거의 쓰지 않고 고명도 단순한 소박한 음식이다. ⓒ제주의소리

미모의 영화배우 수애도 제주에선 ‘순대’!

  제주에도 제주 고유의 순대가 있다. 2년 전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보성시장의 K식당의 순대가 등장하여 제주도 순대도 순식간에 유명순대의 반열에 오른듯한데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제주의 전통순대와는 거리가 먼 순대를 마치 전통 음식인 것 마냥 소개를 해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분명 제주의 전통순대에 대하여 지문으로 설명해 놓았는데 독자들은 만화의 특성상 그림으로 그려진 현재의 순대를 제주의 전통 순대인 것처럼 인지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요즘의 제주 순대는 다양한 채소와 찹쌀, 선지 등 화려한 고명을 기본으로 수십 년 양념을 버무려온 쥔장의 손맛과 내공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정말 맛있는 순대로 재탄생하여 이제 유명세까지 치르게 되었는데 사실 제주의 전통순대는 채소를 거의 쓰지 않고 고명도 단순한 소박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쌀이 귀했던 만큼 찹쌀 대신 재배기간이 짧은 메밀이나 주곡이었던 보리만을 가루로 내어 선지와 섞어 순대를 만들었다. 제주방언으로 ‘수애’라 불렀던 제주의 전통 순대는 채소도 소량의 쪽파를 송송 썰어 가볍게 섞고 양념으로 마늘을 조금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채소를 사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순대 특유의 물성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메밀가루반죽으로 만든 떡처럼 퍽퍽한 느낌이 바로 제주의 전통 순대였던 것인데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단순한 순대가 아닐까 싶다.

▲ 다른 지방 또는 현대적 순대는 채소, 찹쌀, 당면, 선지 등 고명이 다양하고 화려하게 들어가 있다. 제주 순대는 이와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주의소리

무미건조한 맛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쉬워

그렇다면 좀 더 다양한 고명을 넣어서 더 맛있게 만들어도 될 것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제주의 순대는 일반적인 음식이 아니고 관혼상제를 치루기 위한 목적 때문에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제주사람들의 잔치는 3일간 이루어지며 특히 상례는 보통 5일장에서 7일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며 손님을 치러내야 했고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도 그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양한 채소와 기름진 재료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40대 이상의 제주사람들이라면 초상집에서 마른 두부와 함께 초간장에 찍어먹었던 그 무미건조한 맛의 제주 순대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음식으로서 맛을 평가하자면 사실 별다른 맛이 없는 무미건조한 맛에 가깝다.

그러나 빙떡이 그러하듯이 서너 번만 먹어보면 그 특유의 없는 듯 있는 맛의 매력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단언한다. 먹어볼 기회조차 없어져 버려서 안타깝지만 간혹 지금도 시골 상갓집이나 잔칫집에서 아주 드물게 맛볼 수 있는 정도다.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순대에 이용된 메밀은 피를 맑게 하여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는 약리작용이 뛰어나다. 또 철분이 많은 선지와 어우러져 혈관질환으로 고생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오히려 건강식으로 대접받을 만 한텐데 그 맛이 너무 무미건조하여 근래에는 기름진 순대에 밀려 사라져 버렸음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이런 단순한 순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의 전통 음식에 순대국밥이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는데 순대국이 없는 대신 간혹 제주 전통 탕국인 ‘몸국’에 넣어 국물이 더 풀풀해지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제주 순대는 초간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

  재미있는 것은 지방별로 순대에 곁들여 찍어먹는 것이 달라서 이 또한 지방별 특색이라 하겠는데 이북지방은 새우젓이나 소금에 찍어먹고 중부권에서는 소금에 후추나 깨소금, 고춧가루 등을 섞어 찍어먹으며 호남지방은 새우젓, 영남지방에서는 막장이나 토장을 찍어먹는데 반해 제주도에서는 초간장을 찍어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냥 간장도 아니고 초간장에 찍어먹는 이유는 오랜 시간 실온에서 보관했던 순대가 혹시 약간 상하더라도 식초의 살균효과로 배탈이 날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하는 제주사람의 지혜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주의 순대는 사실 향신채를 많이 쓰지 않아서 약간 돼지 냄새가 난다. 그래서 외지인들 중 일부는 맛이 없다고 단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문화의 차이인데 제주 사람들은 돼지의 부산물에서 돼지의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진데 반해 수도권 등 대도시 사람들은 음식에서는 맛있는 냄새 만 나야한다는 고정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도시와 지방의 문화의 차이는 그 문화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만 있으면 초월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점이야 말로 진정한 식도락가의 자세일 것이다. 

+ Tip
  제주에서 순대로 유명한 집은 KBS 뒤편에 일미순대가 꼽힌다. 아바이순대와 병천순대의 중간정도라고 생각하면 알맞을듯하다. 벌써 30여년은 된 듯  한데 쥔 할줌마의(!?) 변함없는 손맛으로 꾸준히 문전성시를 이룬다. 구 신중 입구의 평안도 순대도 일미순대만큼 메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집이다. 식객에 등장했던 보성시장의 감초식당을 비롯한 순대골목은 말할 필요도 없고 동문시장의 순대골목도 나름 유명한 골목인데 제주의 미식가들은 이곳의 광명순대를 제주 최고로 손꼽는 사람이 많다. 서문시장의 할머니 순대집도 재래시장 특유의 인심으로 단골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소문....

제주의 전통순대는 마치 퍽퍽해진 시루떡을 먹는 것처럼 매우 건조하다. 여기에 밥을 넣어서 만들고 채소를 넣어서 만들면서 요즘과 같은 순대로 발전해온 것이다. 겉보기에도 매우 마른 듯 보이는데 실제로도 많이 건조한 식감을 보인다. 만드는 사람들 마다 메밀가루와 선지의 비율을 조금씩 달리 했다고 전하며 주로 대창을 많이 이용했으며 소창과 다른 부산물들은 몸국에 직접 썰어 넣어 먹었다고 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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