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도민 또는 도지사를 위한 특별자치

 
I. 특례자치로 변질한 특별자치

  자치란 자기결정을 뜻한다. 지방자치란 지방 단위에서 주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마다 자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주권재민의 민주적 원리를 구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도가 많을수록 참여자의 헌신과 기여가 높아질 것이라는 실용적 기대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자치를 하자는 데 대해 사적인 이해득실 계산 때문에 내심으로는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렵다.

  제주의 경우 풀뿌리 민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고맙게도 ‘특별한 자치’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자치보다는 특별에 더 치중됨으로써 그 본래의 의도는 크게 퇴색된 채, 특별자치라는 것이 중앙정부에의 특별한 의존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이다. 다른 지역에서의 ‘보통자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특별한 자치가 아니라 다른 지방에는 주어지지 않는 무언가의 특혜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되면서 특례를 추구하는 자치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특별자치의 2단계 제도개선이니 3단계 제도개선이니 하면서 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 위임에만 힘을 쏟다보니, 제주도민의 자율적 역량 강화는 소홀히 되고 급기야는 주민은 자치행정의 공동 주체가 아니라 관치행정의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4년의 제주특별자치 성과를 되돌아보니, 제주에 타 지역과는 다른 특별자치를 주겠다고 한 말에 그냥 넘어간 우리 제주도민만 우습게 되었다. 인구 55만의 제주가 무어 그리 이쁘다고 특별자치를 주겠는가하는 의심 없이 이를 덥석 받아들인 도민들만 바보스럽게 되었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선의를 엉터리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나 특별자치가 대통령의 선의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다수 도민의 기대-환호-순응 속에 묻혀버렸던 5년 전 제주의 상황에 대해 다시 이를 뒤돌아보면서 반성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는 있다고 본다. 2009년 11월의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이미 저질러진 것이기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늦었다 할 때가 빠른 때’라는 심정으로 특별한 자치를 새로이 시작해 나가려는 제주도민의 주체적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5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면 특별자치는 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제주도민들이 특별자치에 대해 그 비전과 가능성 및 방책을 제기하고 논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를 얘기하면서 자기결정에의 도민 참여라는 의미에서 제주도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특별자치에서 자치는 애초에 부차적으로만 존재했다. 이렇게 자치를 소홀히 하면서 특별자치를 논의하는 기현상은 자치보다 ‘특별’에 방점이 모아졌고, 그 결과 특별자치는 이를 발의한 중앙정부로부터 제주로의 특례 내지는 특혜의 제공이라는, 이른바 ‘지대추구’(rent-seeking)에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별한 자치를 통해서 제주도민의 자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길 바라는 쪽으로 가기보다는 대통령의 언명에 따라 중앙정부로부터 주어지는 무언가의 특혜를 가만히 앉아서 따먹으려는 무위도식 의식이 대세를 이루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특별자치란 것이 제주도민이 스스로의 필요와 논의를 담아 아래로부터 제출된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에 의해 위로부터 기획된 것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처음부터 그 한계는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볼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부든 그냥 알아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나누어주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야 개인적 소신으로 특별자치를 운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중앙정부의 관료 입장에서는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못해 그것도 일종의 교환으로나 줄 수 있는 게 지방분권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지방의 보통자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제주도에 보다 수준 높은 지방자치를 시범적으로 보여주자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초기 의도와는 달리, 결국 특별자치는 중앙정부로부터 행-재정적 특혜를 받아오기 위한 교환 과정에서 비용을 치러야 했다. 제주지방행정구조 개편을 통해 시와 군을 폐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교환 과정에서 특별자치의 이름과는 달리 자치를 줄이고 제주도정에 특례를 준다는 맞교환을 제주도정은 앞장서서 홍보하고 추진해 나갔다. 이렇게 제주도정의 이익은 특별자치의 출범에서부터 주민자치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중앙정부와 제주지방정부의 행정관료들이 서로 주고받는 교환 게임을 거치는 과정에서, 특별자치는 결국 시군을 없애고 특별자치의 행정을 도지사 한 사람만이 장악하는 ‘특별도지사의 자치행정’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래서 애초에 특별한 자치를 꿈꾸었던 선의와는 거리가 멀게 행정구조 개편을 거치면서 출현한 ‘제왕적 도지사’는 적어도 제주에서는 무소불위의 ‘제주대통령’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대기업의 영향력이 약한 제주에서 제주도정으로 집중된 행-재정적 권한은 제주도 내의 중소기업과 언론, 대학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시민사회단체까지도 길들여나갈 수 있는 막강한 자원을 소유한 이른바 ‘리바이어던’을 연상케 할 정도의 행정독점체제를 이루었다. 이렇게 효율성의 이름으로 도지사 한 군데로 권한을 집중시켜 나간 결과는 도지사로 하여금 중앙정부로부터 가능한 한 예산을 많이 따와서 나름의 ‘소신과 논리’로 주어진 행정 일처리를 잘 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그리고 도민은 제주도정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를 향유하기만 하면 되는 고객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는 게 2009년 11월 현재 제주특별자치의 현실이다. 

II. 원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특별자치

  돌이켜 보면 5천년 한민족의 역사상 현금의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도지사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군주가 있었을까. 왕조시대의 제왕은 제도적으로 종신이라는 점에서 현금의 제왕적 대통령/도지사보다 강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통촉하소서”라고 외쳐대면 한 발 물러나는 게 제왕의 처세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도지사는 비록 5년/4년의 임기에 한정되어 있다는 시한부이기는 하지만, 그 임기 동안에는 국민/도민들이 아무리 ‘통촉해 달라’고 외쳐도 마이동풍으로 제 갈 길을 가는 ‘위임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4년 단임과 그로 인해 임기 말 레임덕을 피할 수 없는 대통령에 비해, 현직의 이점을 활용하면 재선이 훨씬 쉽다는 선거과정의 흐름에 기댈 수 있는 제왕적 도지사는 법에 의해 두 차례 연임으로 도합 12년에 걸쳐 도지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레임덕도 없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제왕적 제주도지사에게 한 가지 유감이라면 그 통솔 범위가 제주도라는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특별자치의 외양은, 제주에서는 그 누구로부터도 견제와 권한분할이 작동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도지사의 자치행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실에 있어서 도의회가 행정에 대해 마냥 각을 세우기가 어려운 형편을 감안할 때 그리고 특별한 도지사는 도의회로부터의 견제를 우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특별한 위상과 제도적 장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도지사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애초에 의도했던 특별한 자치는 요원할 뿐이다.

  결국 원칙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자치란 효율이 아니라 자기결정이다.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참여이다.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다. 단기적으로는 간혹 집중이 효율적일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지속가능한 효율은 분권과 분산을 통해 참여를 증진시키고 이를 통해 각계각층의 활력을 모아나가고 또 각자의 책무를 다 해 나가도록 할 때 비로소 장기적으로 주어질 것으로 보는 게 더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주창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자치란 특별한 도지사가 되도록 그 권한을 강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주민의 자치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두는 데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II. 읍·면·동장을 선거로 뽑자

  특별한 자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자기결정에 대한 참여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 요구된다면, 원 위치로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른 지역의 ‘보통자치’처럼 시장과 군수를 선거로 뽑도록 하는 제도를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특별한 자치가 도민들의 자기결정에의 참여 증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난 5년의 특별자치는 보통자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도민참여의 축소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주민투표를 통해 제주도민의 다수가 시-군 폐지를 찬성했는데, 얼마 시행도 해 보지 않고 바꾸자고 하는 것은 행정의 낭비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주민투표의 결과를 무시하고 시-군을 다시 복원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주민투표 과정에서 보여준 제주도정의 비민주적 편파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주민투표의 민주적 결정을 운위하는 데 대해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어찌 하겠나. 그래서 이미 폐지된 시-군을 다시 복구하자고 하는 것이 괜스레 다수 도민의 의사를 거슬리는 것으로 비추어질 것 같기에, 다른 방식으로 주민의 자기결정 참여를 증진시켜 나갈 방도를 찾으면 되리라는 생각이다. 읍장과 면장 그리고 구 제주시/서귀포시의 동장을 선거로 뽑아서 이를 통해 ‘동네민주주의’를 실현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애초에 특별한 자치를 의도했던 내용과도 맞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아마도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새로운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옛날에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면장을 해야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유선방송이 넘치고 국민 대부분이 고교를 졸업하는 한국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먹고 살기가 바빠서 아는 데 시간을 들이지 못한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조금 시간만 주어지면 신문과 TV, 인터넷을 통해 금방 최신의 정보를 알아낼 만큼의 기본적 실력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게 문제라고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아는 사람이 혹은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면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많으면 이제 면장인 자신들에게 ‘이제 그만 하시라. 왜냐하면 내가 면장을 하고 싶으니까’하고 말 할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기에, 면장에게는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게 결코 기꺼운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행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주민들이 잘 몰라야 대강 넘어가기가 쉽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싫겠지만, 이 또한 어찌 하나. 아는 사람이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해야지. 특별한 자치는 바로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이 많은 21세기 제주에서 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제주의 미래를 이끌어 가도록 주민자치를 활성화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는 사람이 많은 21세기 제주에서 기초적인 읍면동장은 누가 맡아 할 것인가? 아는 사람이 많다면 그 동네 사람 가운데 돌아가면서 대강 한 번씩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만 읍면동장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여럿일 것 같기에 할 수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선출을 할 수밖에 없다.

  제주특별자치에서는 특별한 자치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도지사가 이들 읍면동장을 임명하는 관치행정의 기존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읍면동에서의 풀뿌리 주민자치가 도지사로부터 임명된 읍면동장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데에도 특별한 자치를 운위하는 건 무언가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 경우도 읍면동장을 선거하면 이들이 지사 말을 안 듣고 제 멋대로 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도지사와 시장-군수를 선거로 선출하면 지방행정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중앙행정의 우려와 꼭 같은 것으로 다 자기들 나름의 기득권 지키기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치적 개입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후보자에 대한 정당 공천을 배제한 가운데 2년 임기의 읍면동장을 선거로 뽑는다면, 그 민선 읍면동장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특별한 자치를 실험해 보는 것은 어떤지 하는 제안도 일견 일리가 있는 게 아닐까.

▲ 양길현 제주대 교수
  2010년 지방선거에 읍면동장 선거를 도입하기에는 이에 대한 공론화가 부족하고 또 제도적 준비도 덜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2010년 선거 때 제주특별자치의 제도적 보완과 관련하여 읍면동장 선거를 하나의 방안으로 논의되고 검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가 선거 쟁점이 되리라 보지만, 그 가운데 읍면동장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통해 그리고 제왕적 도지사의 권한을 분산하고 분권화하는 특별한 자치를 통해 제주국제자유도시의 미래를 둘러싼 자기결정에 제주도민이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자주 참여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고 노무현대통령이 의도했던 바의 특별자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는 사람이 많은 21세기 제주사회가 요구하는 제주의 특별한 풀뿌리 주민자치란, 바로 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그리고 가능한 한 자주’ 공적 역할을 맡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다는 생각을 이번 2010년 선거 동안 자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양길현 교수(제주대 국림윤리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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