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동생은 이제 대학 2학년으로 학과는 다르지만 제 후배이기도 합니다.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터라 어떤 때는 꼭 제가 아빠 같은 심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아직도 서귀포에 계십니다. 서귀포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채 안되는 거리지만 이곳 제주는 한 시간이면 아주 먼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는 셋째누나 집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여동생이 제 집에서 대학을 다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여동생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많이 늦습니다. 용돈은 자기가 번다고 아르바이트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가 용돈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제가 담당하는 것 또한 부담이 되어서 기특하다고 하던 차였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끝내고 저녁 여섯 시부터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갈빗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끝나는 시간은 저녁 열한 시고요.

처음엔 끝나는 시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꼭 자식이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말이죠.

여동생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잠을 자고 열두 시 가까이 되어서도 들어오지 않으면 꼭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보기도 하니까, 과년한 딸을 둔 아버지의 일상을 미리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는 오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 주 토요일은 여동생이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시간까지 잠을 안자고 있다가 안방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벌떡 일어나 큰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꾸욱 눌러 참았습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동생은 자기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라면을 하나 끓여서 후루룩 먹습니다. 다 먹고 일어서는 동생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너 오빠랑 얘기 좀 하자.”

동생은 자기 방으로 가다 말고 제 옆에 앉았습니다.

“왜?”

순간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지만 차근차근 얘기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너 어제 뭐하느라 늦었니? 누구랑 있었고?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할 생각은 못 하니?”

딴에는 차분하게 얘기하느라 했지만 무척 흥분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너 요즘 남자 만나니?”

그랬더니 제 말에 동생이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긴 이제 대학 2학년이면 남자친구 있는 게 이상할 게 없는데도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럼 어제도 남자친구랑 있던 거였니? 그 시간까지? 어디서?”

그런데 동생은 흥분한 제 태도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그 오빠랑 찜질방에 같이 갔었어….”

순간 저는 김혜원 기자님이 쓴 찜질방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집, 내 동생의 이야기구나 싶으니까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마음속으로 계속 다짐을 하고 남자친구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동생보다 다섯 살이 많은 직업군인이랍니다. 그 얘기만 듣고 여동생에게 남자친구 한번 집에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가능한 빨리. 실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어제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초대에 응했다는 표현을 써야 할까요. 퇴근 무렵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쉰다고, 그리고 남자친구를 데려가겠다고 전화했습니다. 저녁 여덟 시에 도착한다고 하니 그래도 저녁은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무실 근처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고 집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대파를 다듬고 두부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아내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여동생 남자친구가 온다고 했더니 아내가 한참이나 앞서가며 한마디 합니다.

“장인 같은 오빠에게 인사 오는데 긴장하고 오겠네….”

그 말에 저도 같이 웃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아들을 씻기고,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저녁을 짓고 있는데 드디어 여동생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많이 쑥스러웠겠지요. 저는 반갑게 웃어주며 거실에 편하게 앉아 있으라고 하고 하던 음식 만들기를 계속 했습니다. 압력밥솥에서 밥을 뜨고 된장찌개를 올리고 고등어자반을 굽고 수저를 한 벌 더 놓고….

사실 저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많이 난감했습니다. 거실에서 빤히 요리하는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여동생 남자친구를 의식하느라 뒤통수가 상당히 간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이 아내는 아들을 씻기고 나왔고 여동생이 욕실에 들어갔습니다. 여동생의 남자친구는 잔뜩 긴장을 하고 아내에게도 인사했습니다. 아들은 금세 친해져서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고모부예요?”

계란찜을 상 위에 올리는 것으로 음식준비는 끝이 났고 우리는 저녁밥상에 마주 앉았습니다. 수저 한 벌씩을 들고요.

아내는 뭐가 우스운지 자꾸 웃음을 참았습니다. 저도 많이 쑥스러웠습니다. 많이 먹으라고 얘기를 했고 다들 평소보다 조용히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낯선 손님이 반가운 아들 녀석만 재잘대고 있었고요.

저녁식사가 끝나고 저는 여동생에게 설거지를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 남자친구에게도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짐짓 신경 안 쓰는 척 거실에 놓인 지난 신문을 뒤적거리며 둘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슬쩍슬쩍 엿보았습니다. 아직도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저와 아내, 여동생과 남자친구 그리고 우리 아들. 이렇게 다섯이서 음식을 치운 상에 그대로 캔 맥주 하나씩을 놓고 다시 앉았습니다. 아들은 컵에 보리차를 따르고요. 비로소 건배하며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캔 맥주마저도 얼굴을 돌리며 마시는 것을 보니 참던 웃음이 터졌습니다.

“많이 긴장되지?”
“네.”

제 물음에 여동생 남자친구는 군인 특유의 절도 있는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사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왜 늦게까지 같이 있느냐? 아빠 같은 오빠로서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아느냐? 고향은 어디며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동생을 알게 됐느냐? 사관학교냐 학군단 출신이냐? 술은 잘 먹느냐?”

정말 묻고 싶은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꾸욱 참았습니다. 미처 여동생 남자친구의 참모습은 보지 못하고 그 대답에 섣부른 판단을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괜히 집으로 오라고 해서 긴장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 난 단지 오빠로서 누구를 만나는지 궁금했고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을 때는 너에게 먼저 전화를 하겠다는 얘기를 하려고 오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니? 그리고 토요일 동생 아르바이트 끝나는 늦은 시간에는 밤늦게도 좋으니까 우리 집에 와라. 같이 술 마시게. 괜찮겠니?”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더는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우리 동생 대학 2학년 그리고 그 남자친구는 스물여섯…. 나이가 어리다는 것으로 그 둘의 만남을 어린애들 만남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앞으로 잘 사귀어서 결혼하라는 식의 말도 더더욱 하기 싫었습니다.

어떤 만남을 하든 오빠인 내게 여동생은 떳떳하게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줄 알고 그 남자친구도 역시 그 인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습니다. 오빠인 제가 저녁상을 차리고 여동생은 그 시간에 샤워를 하고, 식사가 끝나고 난 뒤 여동생이 설거지를 하는 일상적인 우리 집의 모습을 그냥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아파트 입구까지 바래다주고 여동생 남자친구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우리 친해지자….”

그렇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치사하게 조목조목 물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괜히 과년한 딸을 둔 아버지 같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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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 www.jeju1004.com에도 올린 글입니다. 제가 올린 글이 어려운 시대에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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