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빼때기, 감저범벅, 감저조밥으로 먹던 기억

  70년대 까지만 해도 제주의 시골에서는 가을볕에 말리고 있는 고구마를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절간고구마’라는 정식 이름보다는 ‘빼때기’ 또는 ‘빼따기’라는 이웃집 꼬마아이의 별명 같은 친숙한 이름으로 불리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지금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제주의 곳곳에는 전분공장들이 있었고 그 공장들은 각 마을의 벤치마크로 기억되곤 했는데 왜 그렇게 전분공장들이 많았는지를 그 전분공장들이 다 없어지고 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많은 빼때기들이 왜 전분공장으로 실려 들어갔는지를 전분공장이 다 없어진 후에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구마가 빼때기로, 빼때기가 전분으로, 그 전분이 다시 당면으로 바뀌어 한때 제주산 당면이 전국을 휘어잡았던 시기가 있었음을 그 시절이 다 지나 값싼 중국산 당면이 물밀듯 치고 들어온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80년대 후반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던 한 두곳의 전분공장과 당면 공장이 마침내 90년대 초반 모두 문을 닫으면서 그와 동시에 고구마 농사도 예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기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도 호남지역에서 전략적으로 신품종인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자색고구마 등 찰흙에서 재배하는 고구마를 대량 생산해 내면서 결국 가장 유명한 고구마 산지였던 제주의 명성은 수그러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감저범벅 물을 넉넉하게 부어 고구마를 삶다가 메밀가루를 버무리면 되는 간단 조리법이 돋보인다. 당도높은 제주고구마의 맛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음식이다. ⓒ양용진

  고구마의 원산지는 열대 남아메리카로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하여 전래되었는데 고구마라는 이름도 일본말 ‘고귀위마(古貴爲麻)’의 쓰시마식 발음인 ‘고코이모(孝子イモ)’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영조 39년 조엄이 일본 쓰시마에서 가져와 부산일대와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길렀다고 하는데 이를 감저(甘藷)라고 불렀고 조엄이 들여왔다 해서 조저(趙藷)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특히 따뜻한 남쪽에서 잘 자란다고 하여 남감저(南甘藷)라고도 불렀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지역에 가장 먼저 정착한 작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만큼 제주사람들과는 일찌감치 친숙해진 작물이어서 그 당시의 이름인 ‘감저’라는 이름을 지금도 사용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간혹 외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감자와 혼동하여 어이없어 하는데 오히려 전통적인 명칭을 고수하고 있음을 되 알려주는 것도 제주다운 또 하나의 재미로 기억되지 않겠는가? 조선 후기 이후 지금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가장 전통적인 가치를 아직도 지켜오고 있다는 자부심도 가져봄직 하겠다.

  제주의 고구마는 전통적으로 ‘물고구마’라고 불렸는데 이는 전국 어느 지역의 고구마보다 수분 함량이 높았기 때문에 붙여졌던 이름이다. 그로인하여 타 지역의 비교적 단단하고 찰진 밤고구마 보다 저장성이 떨어져서 상품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그 대책으로 빼때기를 만들어 저장성을 높여 한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수분이 많은 반면 상대적으로 당도는 최고였다고 기억한다. 간혹 요즘도 오일장 등 재래시장에서 제주산 고구마를 만날 수 있어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과거 80년대 서울 등 대도시에서 군고구마를 사 먹었던 사람들은 군고구마용으로는 오히려 수분이 많고 더 달았던 제주 고구마가 더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장시간 구이 통 안에서 구워지다 보면 오히려 찰진 고구마는 껍질부분이 두껍게 타버리는데 반해 제주산 고구마는 반으로 쪼개면 약간 물컹하면서 꿀물이 흐르듯 단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누구나 군침을 흐르게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간혹 일부러 제주고구마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마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상품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제주 사람들에게도 고구마는 추억이 많은 음식재료이다. 아마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고구마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차조고구마밥 주식인 보리가 모자라는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게 해준 고마운 밥인데 다른 구황식보다 고구마의 당분이 있어 오히려 별미로 권할만하다. ⓒ양용진

  밥을 지으며 함께 쪄낸 고구마위에 신 김치 한 조각을 척하니 올리고 크게 한입 베어 물고 목 메어하던 찐 고구마의 기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인데 어쩌다가 찰기가 유난히 좋은 ‘모인 감저’라도 고르게 되면 그날은 횡재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특히 지금 50대 이상의 어르신들께서는 추운겨울 매서운 바닷바람에 올레길에 나가 놀기도 어려울 때 어머니나 할머니를 졸라서 만들어 먹던 ‘감저 범벅’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간혹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밥을 대신해 주식이 되기도 했는데 고구마 특유의 단맛으로 오히려 다른 구황식품보다는 먹을 만 하였다고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때로는 고구마도 없어서 무나 쑥을 섞어서 범벅을 해먹기도 했는데 역시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은 감저 범벅이었다고 한다. 만들기도 너무나 쉬워서 고구마를 삶다가 메밀가루를 풀어 버무리면 그만인데 이 또한 제주 고구마가 물고구마였기 때문에 그만큼 만들기 쉬웠던 것이리라 추정 할 수 있다.

  그리고 주곡이었던 보리쌀을 아끼기 위해 좁쌀과 섞어먹었던 ‘감저 조밥’은 지금 만들어 먹어도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마치 알밥을 먹을 때 입안에서 알이 터지면서 돌아다니듯 입안에서 조가 돌아다니며 고구마의 단맛을 퍼트리는 그 입속의 질감은 독특한 식탁의 즐거움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침떡 침떡은 시루떡을 말한다. 쌀이 귀하여 조를 가루로내어 떡을 만드는데 한켜한켜 고구마와 팥이 깔린다. 제주의 대표시루떡이라 하겠다. ⓒ양용진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잔치가 있을 때나 한번 만들어 먹었던 ‘감저 조 침떡’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필자는 가장 제주다운 시루떡이라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제주다운 작물인 고구마가 경제 논리에 밀려 경작 면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얼마 전 구좌읍 등 동부 일부 지역에서 다시 고구마 농사의 활로를 찾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어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다양한 활용방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면서 현대적인 활용방법과 전통적이며 향토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활용방안이 동시에 전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래되지 않은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은 빼때기를 만들면서 손자손녀가 먹을 간식거리로 찐 고구마를 따로 말리곤 하셨다. 그 빼때기는 전분공장에 팔 것과 달리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보면 침에 불려서 질겅질겅 씹히다가 걸쭉해지면서 목을 타고 넘어가곤 했는데 지금의 아이스크림이나 쵸콜릿보다 달지도 않았고 피자나 치킨보다 금전적인 가치도 없지만 정말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간식이었다. 물질의 풍요를 느낄수록 예전의 힘들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 인간다운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갈증 때문일 것인데 고구마는 그 갈증을 푸는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먹을거리이다. <제주의소리>

<양용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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