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 미국에 코 꿰어 유사시 전쟁터로 변할 제주도

이 글은 이도영 박사가 지난 2002년 화순항 반대운동당시 월간 말지에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해군이 다시 화순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이 박사의 글이 시사하는 바가 많아 다시 한 번 게재합니다. [편집자]

2000년 6·15 선언 이후 한동안 잘 나가던 ‘햇볕정책’이 절룩거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제주도민이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29일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한 해군 간의 교전이 있은 직후 해군본부에서 느닷없이 화순항에다 해군 전략기지를 건설한다는 발표를 하면서부터였다.

미국 원조를 받기 위해 자행된 4·3 학살

그렇다면 왜 동해도 서해도 남해도 아닌 제주도 최남단에 해군 전략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인가. 너무도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현대사의 ‘한미관계’ 기록을 통해 그 원인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동안 해방 이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의문점들에 직면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승만 정권이 제주도에서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한 동기’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그들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에 발생한 4·3 항쟁에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1949년 1월 21일 오후에 열린 제12회 국무회의 기록을 보면 이승만은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등 모두 15명의 최고위급 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유시를 내렸다.

“미국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본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토색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야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대전 정부기록보존소 소장)”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바로 반도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야 하는 이유다. 이승만은 그 이유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바로 ‘미국의 원조를 적극적으로 받아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주도민 3만여 명과 그 가족들을 희생 제물로 바친 셈이다.

▲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보낸 4.3관련 편지. 서울 전쟁기념관 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이 훈시는 곧바로 법무부를 통해 대검찰청으로 하달되었고 또 각 지방 검찰청으로 동일 내용이 시달된다. 그 증거는 대전 정부기록보존소에 소장되어 있는 법검총 제439호(1949. 1. 26)와 대검 서무예규 제23호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4·3 항쟁과 이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니, 바라보기만 했을까. 필자가 최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이승만의 ‘추파’에 대단한 기쁨을 표시했다.

다음은 당시 서울의 주한 미 대사관이 1949년 10월 미 국무성에 보낸 ‘공산 게릴라들의 활동’ 제하의 서한 중 일부다.

“그동안 본 대사는 남한 국경 내에서 벌어지는 공산 게릴라들의 활동에 대해 국무성에 보고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상반기 한국군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과 제주도에서 성공적인 토벌작전을 수행했다는 것도 보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본 대사는 제주도 토벌작전이 놀라우리 만큼 성공적(devastatingly successful)으로 진행되었으며, 전략상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제주도에 공산 게릴라들이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올 수 없게 되었음을 보고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사안은 바로 제주도가 미군에게 ‘전략상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섬’이란 것이다.

미 대사, ‘제주작전’의 놀라운 ‘성공’을 자축
 

이승만 박사가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

Republic of Korea
Seoul

Office of the President May 22, 1949


Dear General MacArthur:

 I am writing to you this personal letter about the military and the security problems confronting us, for I knew that you are in the best possible position to evaluate and adjudge their seriousness.

 Although we do not wish to show publicly any sign of worry over the whole situation, we cannot help feeling very nervous.  The communists are spreading their propaganda all through south Korea that the Americans are being forced to withdraw by pressure from Moscow, and that soon the north Korean Communists will sweep down to occupy our south, just as the Chinese communists are now doing in China.  They broadcast over the Pyongyang Radio, and circulate in leaflets the terms of agreements signed between the north Korean Communist puppets and Moscow for mutual military defense.  It is reported that over one hundred Japanese plane manufactures and aviators have been brought to North Korea, and that a large contingent of the Japanese soldiers held in Manchuria are to be sent to north Korea by the Soviets.

 These and many other stories are circulating among our people.  One may dismiss them as Communist propaganda lies, but no one can deny or conceal the fact that the northern Communists are constantly coming over the 38th parallel to burn and destroy and kill wherever they can.  Their mortar shells are frequently falling into the city of Kaesang and in country villages all along the line, which results in death, destruction, and the nerve-wrecking uneasiness among our people.  The United States authorities advise us not to worry, saying we shall have all the military aid we need when the situation requires it.  In the meantime, my Defense Minister assures me we have munitions enough only to last for three days.

 We have done everything we could to clean up completely the island of Cheju and other affected areas.  But this cleaning up does not amount to much, for we have no way of preventing the constant infiltration of more Communists along the seacoasts.  We need fast-running patrol boats, planes, and some heavier ships to guard our coast lines.  Without them it is impossible to keep the Communists out, and to top the smuggling of rice and other commodities.  We need planes for reconnaissance as well as for support of our troops in repelling attacks.

 These are our most urgent needs, and we do not seem to be able to secure them.  The urgency of the problem that confronts us does not seem to be fully understood, despite what is happening right now in China.  There still seems to be some lingering feeling in some American official circles that it is not the Communists who are aggressors, but that it may be the democratic forces that somehow are guilty of inviting attacks. I think, General MacArthur, that you are close enough to our situation to understand the real danger that confronts us, and the pressing need of securing additional armaments while yet there is time.  If the United States does not feel that it can grant us the needed weapons as part of the world-wide democratic alliance against further Communist aggression, we should like to purchase them with our money.  But whatever the means to be used, there should be no disastrous delay.  We are fighting for our lives, as well as to hold back the Communist advance upon our friends in the rest of the free world, and we need the necessary weapons to give us a fighting chance for success and to keep up the morale of the democratic camp.

 We will try to invite Admiral Kaufman to visit our naval base in Chinhae Bay and an outstanding official of the US Air Corps now retired to come and help build up our air defense.  It will also be highly important for us to have an army officer who has deep interest in strengthening our national military force.  Please advise and help us in this confidentially.  We deem it very urgent.

With every assurance of my continued highest and warmest esteem,

Sincerely yours,
[signed]
Syngman Rhee

물론 제주도에 약 3만 명의 인명 피해와 계상 불가능한 정신적, 물질적 손실을 입힌 것은 한국군이다. 그러나 바로 그 배후의 조종은 미군 고문관들이었다. 한국군의 토벌작전에 대해 인적, 물적 자원의 수송 및 보급을 미군이 담당했던 것이다.

미 대사관은 이른바 ‘제주작전’이 얼마나 성공적이었기에 “게릴라가 어떤 식으로든 한 명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을까? 다시 말해서 ‘게릴라의 씨를 말려 놓았다’는 뜻이다.

지난 1999년 9월 추미애(당시 국민회의, 현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부산)에서 발굴, 발표한 ‘수형인 명부’(제주지방 검찰청)엔 4·3 항쟁 말기 자수 및 체포로 인해 육지 형무소로 보내지거나 제주 현지에서 처형, 암매장된 제주도민의 수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제주작전’이 얼마나 비인도적이며 ‘가혹’(이승만의 바람대로)했던가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수형인 명부’에 수록된 2천5백31명 중 형량과 그 해당 인원을 살펴보면, 사형(3백84명), 무기(3백5명), 20년(97명), 15년(5백71명), 7년(7백6명), 5년(2백35명), 3년(29명), 1년(2백2명)이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전쟁에서도 ‘자수’하거나 ‘포로된 자’들을 이처럼 ‘가혹’하게 처형해버리거나 형무소로 보낸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이 수형인들은 1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거의 모두 처형되어 암매장 당했다. 그 현장에서도 미군들이 참관하고 지시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를 입증하는 비밀문서와 현장 기록사진들을 미국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발굴, 세상에 알린 적이 있다.

그런데 화순항 건설계획에서 알 수 있듯이, 새삼 왜 미군들은 한국 해군을 앞장세워서 제주도로 지금 돌아오려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50년 전에 보아 두었듯이 제주도가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적 중요도는 이미 일본군에 의해서도 인식된 바 있었으며, 대동아전쟁(2차세계대전) 당시 제주도에는 약 7만 명의 일본 정규군이 주둔하여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순항 인근의 모슬포 비행장과 오무라(大村) 기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병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한편 미군의 작전은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그 다음 순서로 제주도를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당시의 ‘제주작전’은 취소되었다. 그 전쟁이 한 달만 더 지속됐다면 제주도는 미군의 가공할 전쟁무기에 의해서 초토화될 뻔했다.

미국에 코 꿰인 한국 정부의 군비증강
 
그때(1945년) 초토화될 뻔했던 제주도는 1948년 11월부터 1949년 4월 사이에 비운을 맞았다. 그 이유도 역시 제주도가 미군들이 보기에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섬”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소위 ‘좌익 공산 게릴라’들이 준동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작전상의 이유로 인해 그들은 그곳에서 ‘대청소 작업’을 단행했던 것이다.

‘제주항쟁’의 여파로 엄청난 인명 손실과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당한 제주도 주민의 현재 소망은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즉, 비무장 비핵화의 ‘평화의 섬’이다.

미국은 이지스 체계를 갖춘 구축함을 한국 해군에 팔 것이다. 다탄두 요격미사일을 수십 대 적재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다. 그 구축함을 정박할 최적지가 바로 그들이 50여 년 전에 눈여겨 두었던 ‘화순항’이다. 이지스 체계에서는 구축함 한 대가 뜨면 초계정(정보·감시선), 잠수함(물밑 방어), 항공모함(공중방어) 등이 줄줄이 따라다녀야 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구축함에 이어 구입해야 할 제품 명부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을 한국 정부가 살 형편이 안 된다면, 그 유지비용을 분담하라고 압박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 정부는 미국의 손아귀에 코가 꿰이고 말 것이다.

더구나 유사시에는 제주도가 전쟁터로 변한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제주도가 다시 초토화의 위험 속에 놓여야 한단 말인가. 왜 하필이면 ‘햇볕정책’을 부르짖고 실천하고 있는 마당에 그 고가의 ‘전쟁놀이’ 장난감이 필요한가?

한국 정부는 왜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면서 가공할 만한 전쟁놀이 장난감들을 사들이는 것일까? 미국의 ‘꿍꿍이 주문’을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 한국 정부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부시는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모두 깡패들이야!”라고 선언했다. 알아서 ‘줄서기’를 해야 하고 자진 납부를 해야 한다. 즉, 장난감을 사서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

또 그 장난감을 사주면 ‘떡고물’이 심심찮게 떨어진다. 각종 군산업체들과 로비꾼들과 정치꾼들의 국민사기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정권 말기에 이런 엄청난 장난감들을 사들여 왔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상당한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화순항 건설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청 앞에서는 1인 평화시위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도민이 죽기를 각오하고 반대한다고 해서 ‘화순항 해군전략기지 건설’이 무효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미군이 50여 년 전에 점지한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배후 조종하여 제주항쟁 당시 제주도를 초토화했는지에 대한 답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 ‘전략적 섬’에서 ‘평화의 섬’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바란다면, 그리고 이런 가공할 전쟁놀이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하루속히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즉 불가침조약을 맺고 군비축소를 단시일 내에 실행하는 길밖에 없다. 러시아(구소련)나 중국이 더 이상 대한민국의 ‘주적’이 아니라면 같은 동포인 북한을 왜 ‘주적’으로 남겨둬야 하는가? 불가침 평화조약만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며 우리 민족을 불구덩이에서 구원하는 참된 길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북한에 대해 그 값비싼 ‘채찍’(가공할 만한 무기)도 ‘당근’(퍼주기)도 필요 없게 된다. ‘화순항 해군 전략기지 건설’ 같은 군비확장은 대안이 아니라 민족공멸의 지름길이다. 이렇게 한국과 미국 정부가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를 계속 활용하고자 한다면 4·3의 비극이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 전체로 확장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제주도를 ‘전략적 섬’에서 ‘평화의 섬’으로 바꿔라. 이를 위해서는 남북불가침평화조약을 통해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섬’이었던 제주도에서 전략적 가치를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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