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5코스④, 제주오름기행 59]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고내봉

▲ 고내봉 하르방당 ⓒ 김강임

제주시 중심지로부터 서쪽으로 19km지점에 있는 고내 마을. 이 마을은 해안도로가 예쁜 마을이기도 하다. 이 마을의 주봉은 고내봉. 이 고내봉 중턱에는 절집과 당이 자리잡고 있다. 고내봉은 제주 올레 15코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 고내봉 입구 소나무 길 ⓒ 김강임
  
▲ 고내봉 안내도 ⓒ 김강임

 소나무 오르막길... 감정지수 '상쾌'

'올레꾼 여러분 힘내세요. 종점 고내포구까지는 3.5km 남았어요'

소나무 숲에 걸어놓은 현수막 앞에서 올레꾼들은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리 가파르진 않지만 비스듬한 오르막길이 16km 이상을 걸어 온 사람들에게는 힘이 부쳤다. 쭉쭉 뻗은 소나무는 내 키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소나무 숲은 언제 걸어도 기분이 상쾌하다.

오름 중턱에는 절집(보광사)이 하나 있었다. 오름 중턱에 자리잡은 절집은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여유를 준다. 절집 앞마당과 화장실에서 잠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몸과 마음을 비울수 있음이 더욱 홀가분했다.

▲ 올레길 절집 ⓒ 김강임

고내봉, 유일하게 한라산에 보이지 않는 오름

절집 옆으로 올라가는 올레길은 구부러져 더욱 정감이 있는 길이다. 그 길 옆에는 고사리와 양치식물들과 억새가 틈새를 메웠다. 고내봉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봉수대의 흔적이 있는 고내봉 정상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오름이다

▲ 봉수대 흔적 ⓒ 김강임

고내봉 봉우리는 조선시대 북동으로 수산봉수와 남서로 도내봉수와 교신을 했다고 한다. 그리 높진 않지만 봉수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 하르방당 ⓒ 김강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 몸과 마음 움츠려 들어

주봉을 내려와 마주친 '하르방당', 하르방 당을 지나칠때 온몸이 섬뜩했다.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더욱이 이곳은 제주도말로 오시록한 곳에 자리잡아 더욱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제주를 일컬어 '절 오백 당 오백이다'라고 한다, 그만큼 제주에는 '절'과 '당'이 많다는 말이다. 제주에서 길을 걷다보면 오름과 바다, 들녘에서 자주 만나는 것이 바로 절집과 당이다.더욱이 옛부터 신성시되는 곳이 바로 당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당 앞을 지나갈 때나 절집 사천왕 문 앞을 들어가노라면 왜 그렇게 몸과 마음이 움츠려 드는 것일까.

제주에서 당은 고목이나 궤, 큰 바위를 주체로 성스러운 장소다. 고내봉 하르방당은 큰 나무와 큰 바위가 공존하고 있었다. 돌이나 나무 자체를 신앙시하는 풍속은 아마 내 모태신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어머니께서도 길을 걷다 돌무덤을 만나면 돌탑에 돌을 쌓으면 소원을 빌지 않았던가? 나무와 돌에 생명이 있다고 믿어 왔는지도 모른다.

▲ 고내봉 정상에서 본 풍경 ⓒ 김강임

인간의 마음처럼 연악한 억새만 흔들거려

섬칫한 마음을 추스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내봉 중턱에 자리잡은 묘소들이 눈에 띄었다. 묘지와 산담 주변에는 내 마음보다도 더 연약한 억새가 모가지를 흔들어 댔다. 그러고 보니 고내봉 중턱에 자리잡은 하르방당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이 길을 지나가는 길손, 올레꾼들에게도 무사 안녕을 기원해 주는 성스런 곳인지도 모르겠다.

▲ 하가리 마을 자원봉사자님들이 커피를 제공했다. ⓒ 김강임

고내리와 하가리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봉고차 앞에서 커피를 끓이는 남자를 발견했다. 올레꾼들을 위해 커피를 끓이는 남자, 남자가 끓이는 커피맛은 어떨까? 빵모자에 군복을 입고 커피를 끓여주는 그 남자에게 나는 끊질기게 질문을 퍼부었다.

"아저씨, 어디서 오셨어요?"

하지만 그 남자의 답변은 침묵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애월읍 하가리 이장님이라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오는 손님을 위해 뜨거운 마음을 전달했던 그 남자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속이 좁은 사람인가?

▲ 짚을 쌓아 올린 '눌' ⓒ 김강임

고내봉 둘레길, 가장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

제주올레 15코스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내 존재를 더욱 작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제주올레 15코스에서 과오름 둘레길만큼이나 아름다운 길이 바로 고내봉 둘레길이다. 겨우 한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고내봉 둘레길은 제주도 말로 검질(잡초)이 무성한 길이다. 오솔길이 연상되는 길, 그 길은 바로 고내봉 아래를 걸을수 있는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아스팔트 길이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고내봉을 옆에 끼고 걸을 수 있다. 간간히 차소리가 들렸다. 소나무 사이로 드러내는 고내리 마을과 해안의 모습이 나타났다.

▲ 하가리와 고내봉 갈리길 ⓒ 김강임

하르방당에서 움츠렸던 긴장을 바닷바람이 녹여 주었다. 비록 고내봉 둘레길은 짧은 길이었다. 하지만 제주 올레 15코스중 가장 좁고 가장 울퉁불뚱한 고향같은 산길이었다. 그 길은 올레꾼들의 마음을 긴장시켰고 올레꾼들의 발바닥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고내봉 
 

▲ 소나무로 둘러쌓인 고내봉 ⓒ 김강임

 고내봉은 2종류의 구성물질로 이루어진 매우 드문 형태의 오름으로도 유명하다. 오름 북사면(바다쪽)과 그 골짜기에는 수중화산 쇄설성퇴적층의 노두 단면이 잘 발달되어 있다. 주봉꼭대기에는 조선시대 때 봉수대를 설치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 봉수는 북동으로 수산봉수, 남서로 도내봉수(어도오름)와 교신했었다고 한다.

이 오름은 전사면에 해송이 주종을 이루는 숲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봉까지는 현재 산책로가 가꾸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왕벚나무가 식재되어 있고, 오름 북서측 사면 중턱에 '말물'이라는 샘이 있다. 
  

▲ 제주올레 15코스 제주올레 15코스 고내봉 
ⓒ 김강임  제주올레15 
 
덧붙이는 글 | 제주올레 5코스 개장 기사는 갈매기 떼 넘나드는 평수포구와 푸른 들길 대림,귀덕농로, 푹신숙신한 납읍 숲길과 금산공원, 과오름 둘레길과 도새기가 다니는 숲길, 해송과 억새 만발한 고내봉, 그리고 눈물나는 아름다운 배염골 올레와 고내포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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