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연구소 주최, 4.3 증언 본풀이마당 '항쟁의 역사, 고난의 기억'
"4.3 당시 몰아친 광풍, 불법 군사재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형무소로 끌려가 끝내 죽음으로 끝났다"
'항쟁의 역사, 고난의 기억'을 풀어내는 '4.3증언 본풀이마당'이 개최됐다.
이날 증언에 나선 증언자는 모둔 4명. 1부에는 4.3 당시 남편과 시모.시조부를 잃은 후 경찰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양중윤 할머니(79.제주시 화북동), 1949년 동부 8리 대토벌 당시 총상을 입은 고윤섭 할아버지(79.제주시 봉개동)가 증언을 펼쳤다.
이어 2부에서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고 3살박이 아기와 함께 제주경찰서에서 7개월간 수감당한 오갑추 할머니(81.제주시 노형동), 잃어버린 마을인 '원동' 출신의 유일한 생존자 고남보 할아버지(75.북군 애월읍 소길리)가 억울하고 원통한 한을 풀어냈다.
양중윤 할머니는 증언에서 "남편(22)은 친척집 제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경찰에 잡혀갔다"며 "밥 한번 가지가서 면회 한번 한 게 끝이며, 그후로 죽은 날을 몰라 생일날 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는 화해라는 말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죽였으면 어떻게 죽였는지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나서 화해를 해야지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죽여놓고 나서 화해하자니"라며 분노했다.
고윤섭 할아버지는 "48년 10월20일 봉개리가 소개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불타버린 집에 움막을 짓고 하루하루를 살았다"며 "이때부터 토벌대가 마을로 들이닥쳤고, 도망다니다 동생이 토벌대의 총에 죽었다"고 말했다.
고 할아버지는 "49년 1월 이른바 '동부 8리 작전'이 있던 날 형님이 칠오름에서 죽었고, 마을사람 100여명 중 7~80여명이 도망치다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일제 사격에 의해 사살됐다"고 증언했다.
오갑추 할머니는 "노형이 초토화작전으로 소개된 후 이호동으로 피난갔고, 이 피난살이 중에 시아버지와 남편 등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는 "경찰서에 끌려 7개월 동안 수감됐었다"며 "천장에 매달려 고문도 당하고, 3살박이 딸아이도 천연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마지막 증언자인 고남보 할아버지는 "1948년 10월13일(음력) 새벽 군인들이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비들이 사는 곳을 가르치라고 다그쳤다"며 "그러던 도중 나는 극적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고 할아버지는 "그날 원동에서 죽은 사람 숫자만 수십명이 넘는다"며 "그후 나는 친척들이 있는 하귀리로 내려와 숨어지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