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6)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살아가면서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려오는 슬픔을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지만 너무 큰 아픔은 그 상처가 너무 오래도록 가슴 속에 비수가 되어 남는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나의 마음도 그랬다.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었다.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잠시 나마 지금의 현실을 잊고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스페인에 있는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 내 얘기를 하고 어디로든지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친구는 까미노 산티아고를 추천해줬고 거기에 가면 ’너의 아픈 영혼의 상처를 조금은 치료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 후 인터넷을 통해 까미노 산티아고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솔직히 인터넷을 뒤지기 전까지는 이 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약 800km의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많은 사람들이 1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걸어서 가는 ’순례길‘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1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걷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라 2주 동안 달려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별다른 정보도 없이 친구의 소개로 무작정 나섰던 길이 ’까미노 산티아고’이다.

▲ 스페인의 마드리드 ⓒ안병식

▲ 스페인 친구의 집 ⓒ안병식

▲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친구의 집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 사진을 보면 운동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안병식

까미노 산티아고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까미노 산티아고를 알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스페인을 알아가는 시간들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자신을 뒤 돌아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 되었으며 내 ‘마음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했지만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웃음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고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위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스페인어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곱의 무덤이 발견되어 거기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지어지고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면서 순례의 길이 되었고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세계 3대 성지 중의 한 곳이다. 1993년에 세계 자연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이 찾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미 유명한 장소가 되어 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길로 나뉘어져 있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프랑스 길과 포르투갈 ,스페인 내부 길 등 다양하다.

 한 여름 7월의 마지막 날 뜨거운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고 마드리드 친구의 집이 있는 빌바오 역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친구의 집에서 나를 반갑게 반겨준 건 내 친구가 아닌 오레스타 할머니였다. 내 친구 까를로스는 중국 고비사막에 갔을 때 처음 만났고 그 후로 그의 여자 친구인 이탈리아의 라우라와 여러 대회에서 만나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라우라와 결혼을 해 이탈리아의 밀란에 살고 있으며 마드리드에 있는 집은 오레스타 할머니가 관리하고 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자유롭게 머물 수 있게 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 론세스바예스에서 생쟝피드포르로 가는 아침 비가 내리는 아침이라 사람들이 비옷을 입고 있다. ⓒ안병식

▲ 프랑스의 생쟝피드포르 시내 ⓒ안병식

8/1 스페인

늦은 아침 잠에서 깼다. 처음 방문한 집이었지만 낯설지도 않았고 모든 게 익숙하게 느껴졌던 건 벽에 걸려있는 친구의 사진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민해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에서 깨는 데 오랜 비행시간의 피곤함과 아무도 없는 친구 집의 고요함 덕분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아토차역으로 이동한 후 오후 3시가 되어서야 팜플로나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낯설면서도 어디서 본 듯한 창밖의 풍경들을 보며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달리는 상상을 해보았다.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지, 달리다 물을 구하지 못해 목마름에 지쳐 있지는 않을지, 이제 다 아물어 가는 발목의 상처가 더 커지는 건 아닌지, 그러면서도 간절히 소망했던 건 다쳤던 발목의 상처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랬고 또 다른 부상 없이 일정대로 산티아고 에 도착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팜플로나에 도착했고 토요일 오후 너무 늦은 시간이라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월요일 오전이 돼야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말에 팜플로나에서 하루를 머무를까 고민하다 일정이 늦어질 것 같아 택시를 타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생쟝피에드포르 까지는 110유로(약20만원)였기 때문에 택시비 부담이 너무 커서 그 절반을 주고 론세스바예스에서 내리니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알베르게에는 방이 없어 마을에 있는 허름한 체육관 시멘트 바닥에서 얇은 침낭 하나에 의지해 잠을 잤는데 산기슭이라 추워서 여러 번 잠에서 깼다.

▲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 ⓒ안병식

▲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 사람들 ⓒ안병식

▲ 오리슨 알베르게 ⓒ안병식

8/2  27km  론세스바예스(Roncevaux)-->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

아직 동이트기 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보니 비도 내리고 있었는데 ‘태양의 나라’ 로만 생각해 스페인에서 비가 내릴 거라고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고 비록 크게 내리는 비는 아니었지만 첫 날부터 안개비를 맞으며 피레네 산맥으로 향했다. 얼마를 가지 않아 하얀 백발의 할아버지가 피레네 산맥을 오르고 있었다. 가방에 조가비가 달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순례자인 듯 한 데 나와 같은 방향인 생쟝피드포르로 향하고 있었다.

첫 날이라 길도 모르고 아직은 모든 게 낯선 상황이라 일부러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왜 프랑스로 가는냐고 물었다. 불어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 가 없었다. 나중에 몸짓 발짓 다해가면서 알아낸 것은 그는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론세스바예스로 넘어왔고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해서 오는 부인과 친구들을 마중 나가고 있었다. 왜 차를 타고 넘어 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첫 순례 동기는 이렇게 만났고 덕분에 익숙지 않은 피레네 산맥을 함께 오를 수가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면서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많이 끼어 있어 멀리 있는 풍경들을 볼 수 가 없어서 아쉬웠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같이 동행하던 할아버지의 부인과 친구들을 만났고 서로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었다. 정상에 오르고 보니 안개도 조금씩 거치기 시작했고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연인처럼 부부처럼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들, 홀로 또는 단체로 걷고 있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 내일이면 저 사람들과 같이 산티아고를 향할 수 있다는 상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어 생쟝피드포르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몇몇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한글 설명서까지 보여줄 만큼 한국 사람들도 많이 이곳을 찾는 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순례자 여권(Credencial)과 방을 배정받고 조금 휴식을 취하고 시내 구경을 하다 보니 하루가 저물어 갔다.

▲ 생쟝피드포르 순례자 사무실 ⓒ안병식

▲ 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와 조개껍질 ⓒ안병식

▲ 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와 조개껍질 ⓒ안병식

8/3  48.4km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쥬비리(Zubiri)

알람을 맞춰 둔 것도 아닌데 눈을 떠보니 6시가 되어 있었다. 가져온 음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난 후 7시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첫 발을 내딛었다. 피레네 산맥으로 향하는 길은 바로 몇 미터 앞만 볼 수 있을 만큼 어제보다 더 많은 안개가 끼어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한 시간 쯤 달려 피레네 산맥으로 오르는 마지막 휴게소인 오리슨 알베르게(Orissin Albergue)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서 음료와 빵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물도 충분해서 휴게소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언덕길을 달리다 걷고를 반복하며 피레네 산맥 정상으로 향했다. 라면과 햇반, 참치 등 한국음식을 많이 넣은 배낭은 8-9kg 정도 됐고 얼마 가지도 못해 배낭 무게가 짓누르는 어깨에는 이미 통증이 찾아왔다.

내 키만큼 한 고사리 밭을 지나 정상에 가까워 가면서 안개도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더니 어느새 햇빛이 비치고 어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피레네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들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했다. 남들은 힘들어서 피레네 산맥을 오르지 않고 론세스바예스에서도 출발한다는 산을 두 번이나 오른 게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산 정상에서는 안개에 덮여있는 프랑스 지역과 푸른 하늘이 보일만큼 화창한 스페인의 날씨가 대조를 이루었다.

산 위에 펼쳐진 푸른 초원에서는 양 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순례 길에는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이탈리아의 파브리치오는 피레네 산맥을 오르며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반복하며 정상에는 내가 조금 먼저 올랐다. 오르막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오르다보니 달려서 가는 나보다는 조금 뒤쳐질 수밖에 없다.

▲ 알베르게 숙소에들어가기 위해 줄을서서 기다리는 순례자들 ⓒ안병식

▲ 이탈리아의 파브리치오 ⓒ안병식

▲ 스페인의 몬세랏 가족들 ⓒ안병식

산 정상을 조금 지나 샘물이 흘러내리는 곳에서 물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 사이 파브리치오도 도착했다. 달려서 가고 있는 이유가 좀 궁금했는지 왜 달리느냐는 질문에 산티아고에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더니 그는 그냥 웃는다. 왜 여기에 왔느냐는 질문에 파브리치오도 그냥 여행 중이고 자전거를 타고 산티아고 까지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건네준 빵 한 조각과 샘물로 배를 채우고 론세스바예스로 향했다. 울창한 나무숲이 있는 언덕길을 내려와 4시간 여 만에 론세스바예스에 내가 먼저 도착해서 다시 파브리치오를 만났지만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생쟝피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론세스바예스에서 하루를 묵는다. 때문에 순례자들은 이른 아침에 모두 론세스바예스를 떠나 버려서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조금 더 가기로 하고 한 참을 가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달리기는 이어졌다.

첫 날은 어디까지 정확히 목적지를 정하지는 않았다. 내가 달릴 수 있을 만큼만 가야겠다는 생각 외에는...짓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체력을 많이 소비시켰지만 아직까지는 견딜 만 했다. 이미 정오가 지난 이후 숲길과 작은 오솔길들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7시간을 넘게 달려 쥬비리(Zubiri)에 도착했다. 아직 3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라 알베르게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4시가 되어야 숙소를 오픈 한다는 말에 가방을 내려놓고 그늘로 가서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가방무게와 피레네 산맥의 오르막을 오른 날이라서 많이 힘들고 피곤한 하루였다. 아마도 사막에서 달렸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매고 여기까지 오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첫 날이지만 아직 걱정했던 발목의 상처도 견딜 만 한 하루였다. 4유로를 주고 숙소를 배정 받고 난 후 빨래와 목욕을 끝내고 배가 고파서 슈퍼를 찾으려고 기웃 거리는 데 몬세랏 남매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슈퍼가 있는 곳을 설명해 주었다.

몬세랏은 아직 17살이었지만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똑똑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의 가족은 카탈루냐에 살고 있는 데 엄마와 아빠 동생 네 식구가 함께 까미노 산티아고를 걷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여행이면서 운동이라고 했다. 농구와 테니스 등 운동을 좋아한다는 말에 나도 운동을 좋아하고 오늘은 48km를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자랑(!)을 했더니 정말이냐고 물으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며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저녁을 그의 가족들과 함께하며 많이 피곤했던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어 나섰던 여행길이었지만 여기에 와서 이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제주의소리>

<안병식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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