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조작으로 해결 안돼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주관한 세계 식량정상회의가 지난 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다. 뾰족한 국제공조 해법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했다.

영양부족 인구가 금년 처음으로 10억이라는 숫자를 넘어섰다. 전세계 인구 7명 중에 한명 꼴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2050년까지 인구는 약35% 늘어나는데 농산물 수요는 그 두배인 70%가 증가한다.

농산물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전반적인 소득수준 향상 및 육류 섭취량의 증가에 있다. 같은 칼로리를 육류를 통해 섭취하려면 돼지나 소 에게 4~7배의 곡물을 먹여야 한다. 거기에다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한 수요까지 겹치게 된다.

작년에 경험했던 곡물가격 폭등은 식량위기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국제 밀 가격이 작년 3월 톤당 439달러를 기록하여 1년 전의 200달러 대비 무려 120%나 상승했고 쌀은 2007년 대략 톤당 300달러 대였던 것이 작년 4~5월에는 1000달러를 웃돌았다. 세계 14개 나라에서 폭동 사태가 벌어졌고 그 중 두 나라는 정권이 교체되었다.

유전자조작으로 해결 안돼

그 후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국제 곡물 가격이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그 때의 제반 조건들은 변한 게 없다. 거기에 더해 과도하게 늘어난 국제유동성은 일반 물가의 인플레이션과 아울러 ‘애그플레이션’(애그리컬쳐+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증산 가능성은 어떤가? 지난 1960년대부터 약 20년 간의 소위 녹색혁명기에는 세계의 주요 곡물이 연 3%씩 증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는 여러 나라들이 일제히 농업 투자를 등한히 함으로써 겨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작년의 농산물 가격 파동이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다행이지만 1차 산업의 증산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땅 면적이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몬산토(Monsanto)사의 ‘라운드업 레디’라는 이름의 콩은 ‘라운드업’이라는 초강력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 제초제를 마구 뿌리면 잡초들은 다 죽어도 이 콩만은 살아남아 열매를 맺는다.

어떤 동물의 유전자를 식물에 주입하면 해충이 그 잎을 먹지 못하는 농산품이 개발된다. 이는 육종(育種) 기술과는 다른 것이다. 유럽에서는 아직 이 기술의 사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유전자조작에 의한 곡물증산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인간의 자만이다.

국제곡물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각국의 식량안보(food security) 가 은연중에 식량자급화(food self-sufficiency)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데 있다. 생산국은 자국의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농산물 수출을 막으려 하고 부족국은 어떻게든 비축을 늘리려고 한다. 결국 가격이 오르고, 이를 목도하는 여러 나라들은 생산원가를 무시하고 식량자급을 정책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농수산식품부는 금년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을 26.2%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28%보다 낮고 OECD국가 중 최하위다. 유독 쌀만 자급률이 94.4%다. ‘의무수입량’을 고려하면 100% 자급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점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고 있다.

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밀의 경우는 자급률이 0.4%에 불과하다. 국제가격과 국내 생산비의 격차는 쌀보다 밀이 더 크다. 그러나 우리와 조건이 비슷한 일본만해도 밀 자급률이 14%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밀 소비량은 작년에 이미 쌀의 절반에 육박했는데 쌀 시장 보호만을 앞세우다 보니 밀 증산은 소홀했던 감이 있다. 옥수수와 콩도 거의 전량을 국제시장에서 들여 오고 있다.

곡물자급률 OECD 최하위

우리나라 정부의 곡물 자급률 목표는 2015년에 25%로 현재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다. WTO 협약에 따라 2014년에는 쌀 시장을 완전 개방해야 하므로 이를 참작하여 세운 목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쌀의 자급률이 떨어지는 만큼 다른 곡물의 자급률을 중점적으로 높여야 한다. 오래 전부터 추진해오던 러시아 몽골 캄보디아 등지의 해외식량기지 개발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품 잘 만들어 그 돈으로 싼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는 논리는 효율적 시장가설 위에서만 성립한다. 잘못 대처하면 국가적으로도 피해가 크지만 서민들에게 오는 고통이 더 클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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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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