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4.3 57주년] 4.3 연작시 - 김선태

                                   濟州 悲歌

                                                                                                       김선태

▲ 10사단이 파견되자 미군 함정이 해안을 봉쇄한 가운데 군이 본격 투입되어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시작된다. 소년들은 마을의 동산 위에서 깃대를 세우고 망을 보았다. 멀리 토벌대가 출현하면 깃대를 눕혀 마을에 알리고 군인이면 [노랑개 온다] 경찰이면 [검은개 온다]고 하였다. ⓒ 강요배 화백. 동백꽃 지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다.
----R.M. 릴케 『말테의 수기』 중에서


1. 제주 새벽거리
 
그때를 기억하지
漢拏山 중턱 어디메쯤 죽어버린 그대를 묻고
돌아서 내려오던 그때, 아무도 없는
제주의 새벽거리를 내가 형형히 기억하지
그것은 차라리 죽음의 거리였다
어둠이 잠복해 있는 시가지를 지나 항구로 가는 길
아직 잠들어 있는 먼 거리와 방파제 너머 바다와 달빛
그리고 달빛 아래 희미한 수평선
참으로 그때 내 몸은 희미한 수평선
참으로 그때 내 몸은 완전히 가벼워져
바람에 날리는 종이조각 같았다
그대의 魂을 이승의 끝까지 전송하고 오던
그때 제주의 새벽거리, 죽음의 거리,

▲ 한 유격대원의 죽음 ⓒ 강요배 화백. 동백꽃 지다.
2. 제주바다

참혹하구나, 제주바다여
내 어찌 이 멀고 먼 處刑의 땅에 와서
어둡게 어둡게 너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끊임없이 끊임없이 절망하고
시퍼렇게 나를 밀어내는 제주바다여
그 배신의 무수한 손바닥이여
그대 가고, 그대 간 길을 내가 좇아가야 하는데
아, 그러나 제주바다여
아직은 순순히 네 품에 안길 순 없구나
배 위에 올라 망연히 흰 손수건을 던지고
그대 추억을 산산이 찢어 날려버렸지만
지금은 결코 네 품에 안길 순 없구나
돌아가야 할 길 망망하고 끝없어라
제주바다여, 지옥같구나.

3. 鎭魂歌

죽은 그대, 이 소리를 듣는가
아름다운 사람아,
그대 부르는 소리 천지에 가득 차서
제주의 새벽 산과 들, 그리고 바다를 넘나드는데
우렁우렁 뱃고동소리로 흥청 깨어지는데
그대는 차마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
무덤 속의 그대가 환생하여 달려올 것만 같은
제주의 새벽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
오, 왼통 죽은 그대 모습이 있구나
억울하게 죽은 그대 모습이 웃고 있구나
아름다운 사람아, 부디 잘 가라
주검으로 갈라선 참담한 이별 뒤에 아무것도 없지만
그대로 나는 살아서 돌아가고 싶구나
살아 남아 그대를 더 뜨겁게 부르고 싶구나.

 

김선태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시작 활동. 시집 『간이역』, 『동백숲에 길을 묻다』 등.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 및 계간 『시와사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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