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미안함 넘어 한민족공동체 주춧돌 놓기를...

                                          
           I. 사랑의 감귤에서 평화의 감귤로

  <평화의 감귤: 한라에서 백두 1999-2009>가 발간되었다. (사)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가 제주 남북교류협력 10년을 모아 엮은 기록이자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사랑의 감귤’이 ‘평화의 감귤’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감귤도 인도적 지원이 아닌 국제정치적 사안이 되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순수한 인도적 지원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적 지원이라는 이름 뒤에는 정치적 고려와 경제적 이해득실 계산도 숨어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일까. 어떻든 이명박 정부에서는 쌀이든 감귤이든 혹은 타미플루든 이 모두가 다 이웃사랑의 인도적 지원 품목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될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 <평화의 감귤> 기록이 다른 어느 보고서보다도 더 필자에게 크게 다가온 이유는, 1999년에 필자도 평화의 섬 제주에 내려와서 감귤 사업에 직-간접으로 관여하였기 때문이었다. 남북한 연구로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었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16년 근무하다가 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로 자리를 옮긴 게 바로 1999년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필자의 우선적인 관심을 접고 평화의 섬 제주에 더 매진하게 된 데에는 2000년 남북한 정상회담도 크게 한 몫 했다. 제주의 역사적 비극이자 현재적 아픔이기도 했던 제주 4·3이 인권-상생으로 승화되면서 이에 덧붙여 제주의 특산물인 감귤과 함께 화해-평화로 승화되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 더욱 <사랑의 감귤, 북한 보내기>에 정이 많이 갔다. 한반도의 최남단 제주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사랑의 온정이 개화하여 남북한 화해 및 교류협력이 보다 증진해 나가길 바라는 풀뿌리 제주도민들의 운동에 한껏 기대를 많이 걸었다. 꿈에도 소원인 통일이야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랑의 감귤처럼 전국 방방곳곳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계망이 다양하게 구축되어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새천년에 이르러 분단된 한반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추동력으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난 2010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한반도는 다시 198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교류협력은 막혀 있고, 남북한 모두 서로 누가 이기느냐의 기 싸움만 지루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중시의 원칙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을 포함하여 남북한 경제적 교류협력은 계속 추진하리라 보았던 기대는, 지난 2년간 물거품이 되었다. 쌀과 감귤 지원 같은 인도적 지원마저 봉쇄하는 정부의 비인간적 대북정책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은 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마이동풍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정부가 타미플루 등 신종플루 치료제 50만 명분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남아도는 쌀과 감귤은 기업의 비즈니스가 아니라서 인도적 대북지원에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평화의 감귤> 책을 들춰 보면서 도민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고, 당시 북한 안내원들과 함께 불렀던 <고향의 봄> 노래가 다시 코에 찡하게 들려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렇게 남북한은 꽃으로 하나 될 수 있었다. 경제적 이익을 계산하고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지 않는 순수함으로 우리는 봉숭아꽃으로 노랗게 물들은 손을 서로 따듯하게 마주 잡으면서 하나가 된 적이 있었다. 상상된 공동체로 개념화되는 민족이라는 것이 한겨레에게는 그렇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였다. 그 누가 남북한 민족이 함께 어울려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보고, 이를 상상된 것이며 허구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사랑의 감귤을 매개로 하여 제주도민들이 4차례에 걸쳐 맛본 평양은 측은지심을 갖도록 하면서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II.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변화 가능성
 
  지난 2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을 때마다 필자가 하는 대답이 있다. 정부의 대외정책은 ‘옳으냐 그르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국내외 정세 속에서 ‘적합성이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먼저 서두를 꺼낸다. 대외정책은 감정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 국익의 차원에서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방에 대해서도 무조건 박수만 치는 게 아니라 국익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쓴 소리를 해야 하고, 적대국에 대해서도 언제든 동침할 수 있고 손을 잡을 수 있는 여지를 갖고 대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적국도 없다는 얘기가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에는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민족을 염두에 둔다면,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더욱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남과 북은 언젠가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당위적 전제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를 무시하지 않는 한, 대북정책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대외정책과는 구별된다. 남한 국민들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민족공동체에 대한 접근에서도 ‘개개인의 이익이 무엇인가’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을 점점 더 많이 보이고 있다. 통일비용 운위가 그 대표적이다. 그래서 만약 개개인에게 당장 손실이 온다면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는지의 진정성이 점점 더 엷어져가고 있다. 남북한 격차가 커져갈수록 단기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이 남한 국민들 개개인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날 남한 국민들의 전반적 의사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나아가게 되는 역동적 상황이 주어질 경우, 이러한 상황은 남한 국민들 개개인의 의사와는 전혀 다르게 남한에게 구조적 압박으로 작용하게 될 터이다. 왜 대북정책은 다른 대외정책과 구별되어야 하는 가의 이유는, 바로 이렇게 민족이라는 것이 그 시작에 있어서는 상상으로 만들어졌을지 모르지만 일단 만들어진 이후에는 우리의 의식 속에 실체로서 자리하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데서 온다.

  정책 수단으로서 당근과 채찍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유용한 지는 누구도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핵 폐기라는 대북정책 목표의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강경책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에 걸친 대북유화책이 핵폐기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경험에 비추어서, 김대중 정부에 이어 10년만에 두 번째로 정당간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과는 다르게 강경책으로 핵폐기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문제는 강경책 역시도 유화책 못지않게 핵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적인지는 누구도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정책수단에 있어서도 인간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를 제기하게 된다. 인간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채찍보다는 당근이 더 선호할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핵 폐기라는 목표가 남한 정부의 정책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적 사안이라고 보는 필자의 눈에는, 대북강경정책의 비인간적 측면만 크게 돋보인다. 여기서 비인간적 측면이란 대북강경책으로 인해 남한과 북한의 많은 사람들, 특히 북한 주민이 고통을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평이다. 

  물론 유화책보다 강경책이 모종의 성과를 낸다면, 그 간의 고통은 하나의 불가피한 비용인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만약 지난 2년에 이어 2010년 올에도 별 성과가 없이 강경책만이 지속될 경우, 점점 더 효용성도 없고 비인간적이기도 한 대북강경책에 대해 비판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져 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올 초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간 상시대화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데서 보듯이. 대북정책에서의 성과를 찾아내려는 물밑 작업이 보다 더 활발히 전개되리라 볼 것이다. 최근 부쩍 논의가 많아진 제3차 남북정상회담도 이런 맥락에서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경험에서 보듯이 임기 말의 정상회담은 그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다음 정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이 6월 지방선거 이전이든 아니면 그 이후든 2010년이 적기인 듯싶다.

  결국 평양이나 판문점, 또는 개성이나 금강산 정도에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이를 전후하여 대북 강경정책이 유화정책으로 전환된다면, 이는 이명박 정부에게는 하나의 찬스가 된다. 왜냐하면 처음에 유화책을 쓰다가 나중에 강경책을 쓰면서 임기가 끝나게 되면, 사람들은 효용성도 없고 비인간적인 대북정책의 전형으로 이명박 정부를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2010년 시점에서 대북정책이 강경에서 유화로 전환하면, 그동안 강경정책을 우려해 왔던 사람들은 당연히 반가워 할 것이지만, 또 지난 2년간의 강경책을 통해 어느 정도 대북 적개심을 만족시켜 왔기 때문에 대북강경책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2010년에는 어느 정도 누그러진 마음으로 유화책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2010년은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해도 될 충분한 기회 요인과 여론 기반에 갖추고 있다.

             III. 현인택 통일부장관에게 거는 기대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필자의 초중고 1년 선배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특히 양영식, 김동성, 고성준, 문정인 등 제주 출신 정치학도들과 함께 1990년 (사)제주국제협의회를 만들어 20년 가까이 사무국 활동을 같이 해 왔는지라,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필자와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빙법론에서 조금 인식의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번영에 대한 가치 추구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2009년 1년 동안 대북강경정책에서 일익을 담당하면서도 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 대한 초조함 내지는 조바심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도 크다. 다만 다행히도 2010년이 시작되면서 전반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구상도 변화해 나갈 소지가 큰 만큼이나 현인택 장관의 입지도 커져 나가리라 기대하고 싶고, 그리하여 어느 날 장관직을 끝내고 제주에 왔을 때 그 수고를 같이 나누고 싶다.

  아마도 현인택 장관이 제주 출신으로서 난감한 것 중의 하나가 제주도가 자랑해 온 ‘사랑의 감귤 북한 보내기’에 지금까지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일 게다. 장관의 역할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겠지만, 그러나 <평화의 감귤> 책 격려사에서 현인택 장관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본인이 ‘남북간 교류협력의 활성화와 동북아 평화 논의의 중심지’인 제주 출신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남북한 교류협력 활성화를 책임지는 통일부장관으로서 정말 폼 나게 일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현인택 교수가 장관이 되기 전에 이런저런 기회로 제주에 와서 평화의 섬 제주를 주창하고 그 방안을 논의해 온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더욱 (사)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의 힘겨운 활동을 접하면서 내심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그래서 현인택 장관의 내심을 감싸 안는 제주도민의 기다림과 함께 하면서, 필자 역시 진정으로 가까운 지인의 한 사람으로서 2010년의 기회를 맞아 현인택 장관의 활약이 나타날 것임을 기대하고자 한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결국 통일부장관의 역할은 남북한 화해협력의 증진을 토대로 하여 미래의 한민족공동체의 주춧돌을 놓는 데 있다고 볼 것이다. 강경이 아니라 유화로 북한에 접근해 나간다고 하는 점에서 통일부장관은 국방부장관과 다르다. 그리고 국가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조정해 나가는 외교부장관과 달리 통일부장관은 민족의 이익이라는 차원에 더 강조점을 두는 데서 그 고유한 역할과 사명이 있는 것으로 볼 것이다. 그래서 지난 1년 현인택 장관이 핵폐기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목표 달성에 일조하기 위해서 자의반 타의반 대북강경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대북관계 주부서인 통일부 책임자로서 본인 스스로 강조해 마지않은 ‘통·통라인’(남 한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의 연결)을 통해 현인택 장관의 2010년은 그것이 정상회담이든, 북핵이든 혹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이든 성과가 큰 한 해로 기억되길 기원한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