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7) 까미노 산티아고

▲ 쥬비리에서 팜플로나로 향하는 길에서 ⓒ안병식

▲ 쥬비리에서 팜플로나로 향하는 길에서 ⓒ안병식

8/4  44.9km  쥬비리(Zubiri)-->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쥬비리를 출발해 약 20여 km를 달린 후 팜플로나(Pamplona)에 도착했다. 스페인 북쪽에 있는 도시 팜플로나는 로마의 식민지로 건설되었고 이슬람교도의 통치를 거쳐 10세기에 나바라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소몰이 행사인 산 페르민(San Fermins) 축제로 유명해져 있는 도시이고 산 페르민 축제가 열리는 7월에는 순례자들뿐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도시 전체는 열광의 분위기에 빠져든다.

구시가지가 펼쳐진 시청사 앞과 까스티요 광장을 구경하고 난 후 빵과 음료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사이 많은 시간을 소비해 버렸다. 시내를 벗어나는 길도 찾지 못해 다른 곳으로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더해 2시간이 넘는 시간을 팜플로나 시내에서 소비했다. 이미 수확이 끝난 누런 밀밭을 사이로 두고 페르돈 언덕길을 오를 때는 너무 배가 고파서 체력도 바닥이 나 버렸다.

날씨도 덥고 물도 떨어져서 정말 힘겹게 걸으며 페르돈 언덕길을 올랐다. 팜플로나 시내에서 2시간을 넘게 소비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달리면서 제 시간에 에너지(음식)를 보충해주지 못하면 ‘기름 떨어진 자동차‘처럼 사람들도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너무 배가 고파 페르돈 언덕에서 먹으려고 남겨뒀던 바게뜨 빵 한 조각을 꺼내 물도 없이 꾸역꾸역 삼키며 페르돈 언덕을 올랐다.

▲ 소몰이 행사인 산 페르민(San Fermins) 축제가 열리는 팜플로나 ⓒ안병식

▲ 페르돈 언덕을 향해 오르는 필자 ⓒ안병식

▲ 페르돈 언덕의 상징인 순례자를 형상화한 조각 ⓒ안병식

페르돈 언덕에 오르면 팜플로나 시내와 다음 도착지인 푸엔타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8월이라 해바라기와 밀밭이 수확이 끝났지만 누렇게 펼쳐진 평원은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는 멋 진 풍경 중 하나인 것 같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한 낮의 열기를 조금은 식혀준다.

페르돈 언덕 정상에는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쇠로 만든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가는 곳 중의 한 곳이다. 조금 쉬고 나니 다시 기운이 돌아와서 페르돈 언덕 내리막길을 내달려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지만 알베르게 숙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또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갔으나 거기에도 이미 만원이라 침대가 없다고 한다. 이미 배고픔과 목마름, 더위에 시달리다보니 몸은 녹초가 되어 있는 상태이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침대가 아니라도 좋으니 어느 곳이든 공간만 마련하면 잘 수 있다고 애원을 하고 난 후 겨우 알베르게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두 평 남짓만 인터넷 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다른 사람이 한 자리를 차지해 있었고 컴퓨터가 있는 사이로 겨우 침낭 하나 들어가는 공간에 자리를 깔고 보니 그래도 이정 도면 밖에서 자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시절 ‘인생의 꿈’을 찾아 방황하던 시절에는 신문지 하나로 길에서 자본 기억도 있는 데 그거에 비하면 따뜻한 침낭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잠자리임에는 틀림없다.

▲ 페르돈 언덕에서 바라본 팜플로나와 푸엔타레이나 시내 ⓒ안병식

▲ 페르돈 언덕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 ⓒ안병식

거기에다 오늘은 함께 할 수 있는 벗도 있는 데. 조금 있으니 젊게 보이는 친구가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 모습이 우수꽝 스러우면서도 깜짝 놀라 나도 같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탈리아에서 온 20대 중반의 죠르지오 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 6개월 정도 여행을 하며 생활했던 경험이 있어 아시안 인들만 보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네는 거였다. 정말 ‘착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선하게 보이는 친구였다.

지금은 학생이지만 잠시 쉬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며 모험이라는 까미노 산티아고 여행길에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지도 않은 데 우린 서로에게 너무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날은 조르지오와 저녁을 같이했다. 조르지오에게도 낯선(?) 동양인이 스페인 땅까지 와서 홀로 달리고 있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해가지기 전 마을을 걸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 는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정감이 가는 마을이라 며칠 머물다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곳 이었다.

▲ 이탈리아의 죠르지오 ⓒ안병식

8/5  43.8km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스 아르고스(Los Arcos)

이른 아침 동이 트기도 전 죠르지오는 짐을 챙기고 인사를 건네더니 먼저 길을 나섰다. 낮에는 덥고 아직은 성수기라 알베르게에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숙소를 구하기 힘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동이트기 전 길을 나선다. 그에 비하면 난 7시를 전후로 해서 떠나기 때문에 아침도 챙겨먹고 조금 여유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고 한 시간 쯤 달려 다시 조르지오를 만났다. 사진도 같이 찍고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은 후 잠시 동안 함께 걸었다. 이 친구하고는 오래도록 함께 걸으며 같이 하고픈 친구였지만 내가 일정을 짧게 잡는 바람에 계속 같이 할 수는 없었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디선가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해보며 다시 먼저 앞서 홀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죠르지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까미노에서 못다한 얘기를 밤새하며 까미노 산티아고에서의 서로 다른 기억들을 다시 떠올려보고 싶다.

▲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마주친 풍경들 ⓒ안병식

▲ ⓒ안병식

▲ 물과 포도주가 나오는 이라체 수도원 ⓒ안병식

고대 도시처럼 생긴 에스테야(Estella)를 지나면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산길로 들어서면서 이라체 수도원이 나타났다. 여기는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 데 한 쪽에는 시원한 물이 나오고 다른 수도꼭지를 돌리면 붉은 와인이 흘러내린다. 모두가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스페인에 오기 전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한 한 가지 약속이 있었는데 까미노 산티아고에 있는 동안은 맥주든 와인이든 절대로 알콜은 입에 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는데 이라체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가 생선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붉고 고운 와인의 유혹을 뿌리 칠 수는 없었다. 이후로 매일 와인이나 맥주 한 잔씩은 마셨던 것 같다. 혀끝에 스며드는 와인의 향을 음미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산길이 많아 잠시나마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산을 벗어나니 누런 밀밭과 푸른 포도밭이 나타났다. 밀은 모두 수확이 끝나있었지만 포도는 이제야 알맹이가 영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익지 않은 작은 포도알맹이였지만 먹으면 시큼한 게 입맛을 돌아오게 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하루는 이가 시리도록 포도 알맹이를 따 먹은 적도 있었다.

▲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마주친 풍경들 ⓒ안병식

▲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마주친 풍경들 ⓒ안병식

누렇게 펼쳐진 밀밭 길을 몇몇의 순례자들을 가로질러 달리다 보니 한 사람이 급하게 따라오며 나를 부른다. 프랑스에서 온 친구였는데 자신도 마라톤을 했었다며 나를 따라 올 수 있다고 하더니 무거운 배낭 땜에 100m도 못 따라오고 먼저 가라한다. 마침 나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라 그 친구들과 잠깐 걷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이 못 찍었던 기념사진들도 여러 장 찍었다. 어느새 이탈리아에서 온 알렉시아와 그의 친구들도 함께 합류해서 우리 일행은 7명으로 늘었다. 늘 홀로 달리다 이렇게 여럿이 함께 걷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순례길’이 되었다.

달릴 때와는 달리 걷다보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긴 시간의 동행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괜찮은 추억으로 기억된다. 2시가 다 되어 로스 아르고스에 도착해보니 오늘도 알베르게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이미 먼저 와 있던 한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침대 하나를 구할 수가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난 후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지 이제 겨우 삼일 째인데 피로가 많이 쌓여 몸도 지쳐 있었고 다쳤던 발목도 조금씩 통증이 찾아왔다.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표현이 나에게 딱 어울리는 하루였다. 그리고 걱정도 되었다. 하루에 50km 이상을 달려야 계획 했던 일정에 맞춰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할 수 있는 데 예상했던 거리보다 뒤처지고 있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난 후의 하늘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 푸엔타라 레이나에서 ⓒ안병식

▲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마주친 풍경들 ⓒ안병식

8/6  45km  로스 아르고스(Los Arcos)-->벤토사(Ventosa)

이른 아침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길을 나섰다. 작은 농촌 마을이 그림 속 풍경화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얼마를 달리지 않아 어제 만났던 이탈리아의 알렉시아와 그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일행 중 한 명이 발에 물집이 생기면서 고생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걷다보니 그 후로도 물집이 생기거나 발 또는 무릎에 문제가 생기는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작은 스페인 마을 비아나(Viana)를 지나 로그로뇨(Logrono)에 도착해서 과일가게로 가서 수박을 사서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꽤 긴 시간인 1시간 정도 로그로뇨에서 머문 후 나바레테(Navarrete)로 향했다. 로그로뇨 시내가 좀 길어서 길을 찾지 못해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조개껍질을 배낭에 매고 걷고 있는 사람을 발견 하고 난 후 그에게로 다가가 잠시 인사를 건넨 후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앤디라는 친구였는데 벌써 이 길을 세 번째 걷고 있다는 자랑이 늘어졌는데 경험자답게 걷는 게 남들과는 달라 보이는 친구였다. 하루 걷는 거리도 20-30km를 걷는 남들과는 다르게 40km를 넘게 걷는 날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늘 저녁 때 도착해서 숙소를 찾는 게 어렵다는 말과 함께.

▲ 이탈리아의 앤디 ⓒ안병식

▲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마주친 풍경들 ⓒ안병식

▲ 이탈리아의 알렉시와 그의 친구들 ⓒ안병식

앤디와 헤어지고 난 후 오후 1시 즈음 나바레테에 도착했다. 아직 알베르게에서 문을 열지 않아 많은 순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계획했던 일정보다 많이 뒤쳤진 것 같아 4km를 더 달려 벤토사(Vantosa)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체력은 조금 남아있었지만 다음 마을인 나헤라(Najera) 까지는 16km나 되는 먼 거리라 여기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머물기로 했다. 7유로를 주고 들어간 알베르게는 작지만 정말 깨끗하고 아늑한 곳이라 지금까지 머물렀던 알베르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샤워와 빨래를 끝낸 후 양파를 썰어 넣은 계란 후라이와 양파와 마늘을 넣어 볶은 쏘세지 야채 볶음을 만들어 먹고 나니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오후에 시간이 남아 마을 구경을 했는데 걸어서 10분이면 돌 수 있는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놀이터에서 마리안 아줌마를 만났는데 나바레테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헝가리 남편과 결혼 해 지금은 헝가리에서 살고 있는 데 잠시 고향 마을에 휴가를 와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일정에 쫓겨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들하고 많은 얘기도 나누고 같은 곳이라도 더 많이 여행하며 즐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잠시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스페인으로 떠나오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 벤토사 마을 풍경 ⓒ안병식

▲ 푸엔타나 레이나를 지나서 만난 풍경, 이른 아침 일출이 붉게 물들었다. ⓒ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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