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10) 콩국

▲ 콩국 제주의 콩국은 어찌보면 타지역의 콩비지로 끓인 국과 흡사해 보이지만 육고기를 전혀 쓰지않고 담백하다. ⓒ양용진

  이 계절에 전국 어느 지역에 가서든 콩국을 먹고 싶다고 얘기하면 모두들 계절적으로 여름을 떠올린다. 그네들이 생각하는 콩국은 흰콩을 삶아 갈아서 비지를 걸러 짜낸 국물로서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끓여내는 콩물과 함께 여름철에 콩국수를 만들어 먹거나 우무를 담가 먹는 그 콩국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의 콩국은 바야흐로 지금, 한겨울이 제철인 음식이다. 특히 메주를 만들 때면 콩국은 어김없이 낭푼 밥상에 올라 특유의 몽글몽글한 질감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같은 이름의 ‘콩국’이 왜 서로 상반되는 계절이 연상 될까?  그것은 같은 이름과 같은 재료를 이용한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만드는 방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 지역의 콩국은 앞서도 설명했듯이 진한 국물을 걸러낸 이른바 두유라고 부를 수 있는 콩국이고 제주의 콩국은 날콩가루를 물에 끓여 물(배추)을 뜯어 넣거나 놈삐(무)를 두툼하게 채 썰어 넣어 끓여 먹는 제주만의 콩국인 것이다. 물론 두부를 만드는 사람들은 겨울에 따뜻한 두유를 맛보는 특혜(?)를 보기 때문에 사시사철 상관없겠으나 타 지역의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콩국수나 우무를 말아먹는 여름 별미로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그렇다면 제주의 콩국이 유독 겨울 별미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기적으로 늦가을부터 수확하는 콩을 가을볕에 말려서 도리깨질해서 탈곡하고 선별까지 마치면 이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다. 그러면 겨울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해 일 년을 먹을 된장을 만드는 일이고 그 된장을 만들 메주가 잘 띄워지도록 차지게 반죽해서 천정에 메달아 놓아야 비로소 일 년 농사를 다 지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때 메주를 만드는 콩을 미리 조금 덜어내어 생콩가루를 내어 음식을 만들어 햇콩의 맛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콩국만을 먹기 보다는 살짝 세어지기 시작하는 배추를 넣거나 제 맛이 든 겨울 무를 같이 끓여서 콩가루의 퍽퍽한 느낌을 채소의 단맛으로 보완하고 씹히는 맛을 더한 현명한 겨울 음식으로 상에 올리는 것이다.

▲ 콩국 날콩가루가 풀어지지않고 뭉쳐져 있어 국물이 맑고 담백해 보이는 것이 제주 전통 콩국의 특징이라 하겠다. ⓒ양용진

  거기다가 콩국은 다른 제주의 국과 조금 다른 특징이 담겨있다. 지난 연재에서 제주의 국은 대부분 장시간 끓이지 않는다고 기술했는데 탕의 개념이 없는 일반적인 국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끓여낸 국이 바로 제주의 콩국이어서 이 콩국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담겨진 국이라는 특징을 부여할 수 있다. 이는 찬바람이 불면서 외부에서의 고난한 노동을 잠시 접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나 음식을 조리하는데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는데  콩으로 만든 음식들의 특징을 보면 세지 않은 은근한 불에서 장시간 가열하면 깊은 맛을 낸다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인지 옛 어른들은 콩국은 뭉근하게 끓여야 제 맛이라고 지적하곤 한다. 또한 같이 첨가하여 끓이는 배추도 우녕밭에서 다 피어버린 질겨진 배추이기 때문에 장시간 은근히 끓여 질긴 섬유질 조직을 연하게 만드는 일석이조의 조리법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제주 전통 콩국의 조리법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색다르고 재미있는 부분적인 특징들이 많이 발견 된다. 우선 날콩가루를 사용하는 것도 특이한데 이것을 되직한 상태로 물에 개어 놓는다. 그리고 솥에 물을 넣고 끓이다가 미지근하게 물이 데워지면 날콩가루 갠 것을 솥의 벽을 타고 흘려 내리듯 넣는데 갠 콩가루가 풀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흘려 넣는 정성이 돋보이는 과정으로 재료의 특성상 풀어지면 건더기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되는 점을 간파한 조리방법으로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리고는 휘젓지 않고 계속 가열하다보면 뭉쳐진 상태의 콩가루가 몽글몽글 떠오르고 계속해서 끓이다 보면 콩가루 건더기 사이로 거품이 터지듯 울컥울컥 끓어오르게 된다. 이때 끓어 터지는 공간으로 배추를 손으로 뜯어 조심조심 집어넣는데 이 또한 콩가루 건더기가 풀어지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들의 정성어린 조리법이라 하겠다.  여기에 때로는 무를 채 썰어 같이 넣기도 하고 무 채만을 넣기도 하는데 씹히는 느낌을 고려하면 역시 좋은 것은 배추이다. 배추를 익히면서 소금으로 간을 하면 배추의 단물이 국물에 베어 나오고 콩가루 건더기도 그 응집력이 더 좋아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용유를 살짝 첨가하여 불을 끄는데 이 또한 입에서 조금씩 겉도는 콩가루 건더기의 느낌을 개선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조리방법이다.

  이렇게 콩국을 만드는 과정 과정을 보면 사소하고 단순한 듯 하지만 나름의 특징들이 돋보이는 건강식임에 틀림없다.

  배추와 날콩가루로 국을 끓이는 이 독특한 콩국은 제주이외에도 호남 남부지방 일부에서도 보인다. 그런데 그 지역의 콩국은 배추에 날콩가루를 묻혀서 끓는 물에 넣어 익혀 먹는 국으로서 콩가루가 많이 풀어져서 진한 햇콩의 맛을 느끼기에는 어딘가 부족하고 사실 콩국이라기 보다는 배춧국에 콩가루가 첨가된 느낌이라 하는 것이 옳겠는데 이 또한 그 나름의 풍미가 있다. 아마도 수분이 많은 제주 배추와 달라서 배추 자체의 맛이 진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결국 어느 지역이든 나름대로 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려내는 조리법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토속 전통음식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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