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8) 까미노 산티아고③

▲ 벤토사를 지나 나헤라로 향하며 만난 풍경들 ⓒ안병식

▲ 아조포라에 있는 바에서 아침을 먹음. ⓒ안병식

8/7  56km  벤토사(Ventosa)-->벨로라도(Belorado)

오늘은 좀 긴 거리인 벨로라도 까지 가기로 하고 동이트기 전인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길을 나섰다. 하지만 랜턴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로등도 없는 시골 마을이라 길을 표시해 놓은 화살표와 조개문양 등 흔적들도 찾지 못하겠고 길은 작은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얼마 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는 금세 비라도 내릴 만큼의 먹구름이 있었는데 7시가 되어서야 앞이 보일만큼 날이 밝아왔다.

8시가 조금 되기 전 나헤라(Najera)에 도착했지만 아직 문을 연 바(Bar)를 찾지 못해 아침은 다음 마을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아조프라(Azofra)까지 6km를 더 달려갔다. 이른 아침 출발해서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 배도 많이 고프고 가랑비도 조금씩 내리는 아침이었다.

아조프라에 도착해서 보니 아침식사를 위해 바(Bar)앞에는 순례자들의 배낭이 줄을 지어 놓아져 있었다.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리는 동안 음식은 대부분 바(Bar)에서 빵과 음료 등으로 해결하고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는 슈퍼에서 과일과 음식들을 사서 만들어 먹기도 했다. 마을마다 분수대가 있어 물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달리는데 그리 불편 한 것은 없었다.

▲ 나헤라를 지나서 만난 풍경들 ⓒ안병식

▲ 스페인의 넒은 평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 ⓒ안병식

▲ 이탈리아의 앤디를 다시 만남 ⓒ안병식

아조프라를 지나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를 향해 달리는 동안에는 한국 분들도 여러 명 만났다. 이국 땅에서 만난 한국 분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그리 긴 얘기는 나누지 못하고 다시 나의 길을 재촉했다.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에 도착할 때 쯤 앤디를 다시 만났다. 하루 만에 만나는 거였지만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움에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며 약간의 오버도 했다. 어제 앤디는 나헤라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사무실에서는 순례자 여권(Credencial)에 도장을 찍어주고 있었는데 다른 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넒은 평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다.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순례 객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의 성당 안에는 2마리의 살아있는 닭이 있고 그에 관한 전설이 있다는 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야 알게 됐다. 시장에 들려 음식을 먹으며 거니는 동안 어느새 한 시간이 넘어버려 벨로라도(Belorado) 까지는 아직 많은 거리가 남아있어 서둘러 다시 길을 나섰다.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하루 정도 머물고 싶었을 만큼 정감이 가는 도시였다.

▲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 마을 풍경 ⓒ안병식

▲ 산토 도밍고 메라 칼사다를 지나 만난 풍경들

▲ 산토 도밍고 메라 칼사다를 지나 만난 풍경들 ⓒ안병식

산토 도밍고 데라 칼사다를 지나 벨로라도로 향하는 길에는 누런 밀밭과 아직 지다만 해바라기 꽃들이 대조를 이루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활짝 핀 노란 해바라기 꽃들과 또 다른 모습의 밀밭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도 나름대로 순례자들에게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괜찮은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니 밀밭 옆으로 길게 뻗은 도로가 나타났는데 도로 표지판에는 ‘벨로라도’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를 따라 달리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순례자 코스를 이탈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 도로를 따라 달리겠다는 유혹은 지워냈지만 그만큼 내 몸은 지쳐 가고 있었다.

밀밭을 지나 벨로라도에 가까워지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스페인 커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론세스바예스에서 나보다 하루 늦게 출발했고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리는 동안 가장 많이 마주친 친구들이 되었다. 서로 인사하고 이름도 알려줬지만 메모를 하지 않아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 벨로라도가 가까워 지면서 만난 풍경들 ⓒ안병식

▲ 벨로라도에 있는 알베르게 ⓒ안병식

▲ 벨로라도를 지나 만난 풍경들 ⓒ안병식

몸이 많이 지쳐 있어서 벨로라도 시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벨로라도 시내 입구에 있는 사립 알베르게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사립 알베르게였지만 요금(5유로)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건물이 새 거라 깨끗하고 레스토랑도 함께 있어서 지친 ’나그네’가 쉬어 가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오늘은 조금 긴 거리를 달리기도 했고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힘든 하루였다. 그동안 괜찮던 무릎도 아프고 발목의 통증도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몸이 적응이 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빨래와 샤워를 끝낸 후 한 시간 쯤 잠을 자고 난 후 저녁에는 알베르게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치킨과 생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끝냈다.

8/8  51.6km  벨로라도(Belorado)-->부르고스(Burgos)

가랑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이다. 벨로로도 시내에는 가로등불이 꺼지지 않았고 바에는 아직까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오전 내내 가랑비를 맞으며 달렸다. 온몸은 젖어있지만 가끔 이렇게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도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다.

산길과 작은 마을 들을 지나 아타푸에르카(Atapuerca)에 도착하면서 비도 그치고 맑은 하늘이 떠올랐다. 아타푸에르카 마을을 벗어나 언덕에 오르면 커다란 십자가 주변으로 돌을 쌓아 놓은 곳과 평지에 돌을 이어서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곳을 볼 수 있다. 또한 선사시대 유적들이 있는 곳이라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며 돌 하나를 쌓고 소원을 빌었으리라 추측하며 나도 동그라미를 따라 돌을 하나 올려놓고 나만의 소원을 빌며 산 능선을 내려왔다.

▲ 벨로라도를 지나 만난 풍경들 ⓒ안병식

▲ 아타푸에르카를 지나 만난 풍경들, 멀리 부르고스 시내가 보인다. ⓒ안병식

▲ 아타푸에르카를 지나 만난 풍경들, 멀리 부르고스 시내가 보인다. ⓒ안병식

이 언덕길을 내려오다 보면 멀리 부르고스 시내가 훤히 보인다. 벨로라도를 출발해 이제야 절반을 조금 넘게 달린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좀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한 숨에 부르고스 까지 달려가 빨리 쉬고픈 마음 뿐이었다. 언덕길을 내려와 마을 하나를 지나니 길이 2개로 나뉘어져 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정도로 애매해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내가 선택한 방향이 맞다 고 한다.

부르고스 시내가 가까워질 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들이 나타나 사진을 같이 찍자며 자전거를 세웠다. 스페인 친구들이었는데 조개를 매달고 달리고 있는 내가 신기했는지 어디서 왔느냐? 어디까지 갈 거냐? 왜 달리느냐?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 왔고 다른 사람들처럼 산티아고 까지 갈 거라고 얘기하며 전체 내 일정을 얘기했더니 정말이냐고 물으면서 놀라워하는 표정들을 짓 길래 난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마라토너라고 했더니 정말로 믿어 버린다. 나중에 농담이라고 말을 하고 그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난 후 운이 좋으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들의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받고 난 후 헤어졌는데 메소타 평원을 달리는 동안 한 번 만났고 그 후 산티아고를 떠나기 마지막 날 피니스테레에서 우린 정말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인연이었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어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고 울적함이 많이 남아있던 나에게 웃음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철조망이 있는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부르고스 시내가 나왔다. ‘Muni Casa del Cubo’ 라는 알베르게를 물으니 시내로 한 참을 내려가라고 한다. 한 참을 걸어도 알베르게는 나타나지 않아 다시 물으니 4km는 더 가야 한다고 한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태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느낌이었다. 보통 알베르게는 마을 입구나 중심가에 있는 데 맨 끝에 있을 거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사실 부르고스가 이렇게 큰 도시인지도 몰랐었고 입구에서 이렇게 먼 거리인 줄 알았다면 택시라도 타고 알베르게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 길에서 만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스페인 친구들. 이렇게 우연히 만난 인연이었지만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 나에게 외로움을 잊게 해줬고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줬다. ⓒ안병식

▲ 부르고스 시내 ⓒ안병식

▲ 부르고스 성당 ⓒ안병식

이제 더 이상은 달릴 힘도 걸음 힘도 없을 만큼 내 몸은 많이 지쳐갔다. 걷다 지쳐 시내에 있는 바(Bar)에 들려 계란으로 만든 또르띠야와 환타를 마시고 나니 조금은 기운이 돌아왔다. 부르고스 시내를 한 참 걷고 있을 때 낯익은 동양인들이 보여 말을 건넸는데 아쉽게도 중국인들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시내에 한국이나 중국 식당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조그만 더 가면 중국식당이 있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대충 위치를 기억하고난 후 다시 알베르게로 향해 걸었다.

부르고스 입구에서 한 시간을 넘게 걸어 부르고스 대성당 앞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정말 큰 공립 알베르게였고 알베르게 앞에는 커다란 부르고스 성당이 있었다. 많이 지쳐있었지만 몸을 씻고 난 후 부르고스 시내 구경을 나섰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는 하루 정도 머물며 여행을 하며 쉬고도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조금 전에 가르쳐 준 중국식당을 어렵게 찾아갔으나 저녁 8시가 돼야 문을 연다고 했다. 아직도 3시간이 넘게 남아 있어 시내를 구경하며 간단하게 배를 채운 후 8시가 돼서 다시 중국식당으로 갔다. 단지 밥이 너무 먹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쌀이 주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집을 떠나 먼 이국땅에 있을 때는 그 음식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운명인 걸. 그래도 오래간만에 밥으로 배를 채우고 보니 힘들게 다시 찾은 보람은 있었다.

내일 아침 먹을 밥까지 포장해 달라고 한 후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되어 갔다. 내일이면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린 지 일주일이 된다. 하루쯤은 쉬고도 싶고 쉰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2주 동안 일정을 끝내겠다는 내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정말 쉬고 싶었다.

▲ 부르고스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안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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