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기업임원 40% 여성 의무화한 프랑스와 제주

                  I. 남과 여 

  남과 여. 어느 영화를 연상하는 제목이 아니다. 다만 자전거 바퀴처럼 앞과 뒤에서 함께 끌고 밀면서 같이 갈 것인가, 아니면 수레바퀴처럼 마주보고 같이 손잡고 함께 갈 것인가. 관계의 차이만 중요할 뿐이다. 짧은 모계사회에 이어 긴 부계사회에서 인류는 남이 앞에 서고 여가 뒤에서 밀면서 긴 세월을 살아왔다. 그 긴 세월 동안 역사는 주로 앞장 선 남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양성평등 가치는 남과 여가 마주보고 가는 세상을 촉구하고 있다. 누가 앞장 설 지를 불확정하게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현실도 아직은 언술상의 남녀평등과는 달리 남성 중신으로 뒤엉켜 있다. 왜냐고? 남과 여에도 기득권이 있고 집단이기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지키기는 인지상정이고 그만큼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점진적으로든 급진적으로든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널리 이해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공정과 형평을 높이 평가하는 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곧 정치의 이상이 된다.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정치학이 ‘정의가 무엇이냐’로부터 출발한 게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후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 가운데 필자가 다른 개념들보다 보다 더 쉽게 동감해 온 하나의 정의관이 있는데, 그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였다. 물론 이 경우도 어느 것을 같게 할지 혹은 다른 것은 무엇인지를 정하는 데 정치적-사회적 권력관계가 작용함은 물론이다. 그래도 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같고 다름을 기준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추구하는 게 보다 쉽고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도 세상에 다른 것 가운데 하나가 남과 여일 것이다. 혹 남과 여를 같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 내지는 ‘그 누구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사에서 남과 여의 같음 못지않게 다름을 많이 관찰하게 된다. 특히 출산이라는 여성의 고유한 역할로부터 파생되는 남과 여의 차이는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차이로부터 연원하는 여성의 불리함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보상해 줄 것인가는 정의 구현에서 항상 주된 목표가 된다. 2010년 우리 대한민국과 제주 사회는 여성의 생래적 불리함에 대해 얼마나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양성평등을 구호처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특권 누리기에 안주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II. 기업임원 40% 여성의무화

  2010년 1월 22일자 <조선일보>를 뒤적이면, 작지만 눈에 띠는 기사가 하나 보인다. “프랑스, 기업임원 40% 여성의무화”가 그것이다. 놀랍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기업에 대해 여성쿼터제를 도입하려고 한다니. 대한민국에서는 꿈에서도 생각하기가 어려운 시도이다. 교육대학에서 남과 여의 특정 비율이 7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공적 영역에서의 성 쿼터제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기업임원에 대해서도 여성쿼터제라니.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놀라움은 필자가 얼마나 기업운영의 신성불가침론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하원은 2010년 1월 20일 오는 2015년까지 기업 임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하는 ‘여성임원 쿼터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상의 보도 기사가 없어서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이 법안에 대해 위헌심사를 제청했는지, 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하는지. 그러나 프랑스 집권여당과 대중운동연합이 공동 발의했다니, 이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하원 모두에서 기업임원 여성 쿼터제 법안이 통과가 확실시 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법을 안 지키게 되면 공기업의 경우에는 남성 임원에 대한 임명이 취소되는가 하면, 상장기업인 경우에는 신규대출 제한 등의 제재를 받는다고 한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로서는 아마도 전혀 생각지 못할 획기적 법안이다. 그만큼 이정부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란 기존의 ‘남성왕국’의 기업계를 지켜주는 보수적인 기득권 강화책에 머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금하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프랑스의 여성 쿼터제가 진정으로 여성 존중일까의 의문은 있다. 왜냐하면 필자는 여성을 활용한 기업 혁신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자질을 갖춘 여성 임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여성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그 목표가 변혁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그동안 기업임원 세계에서 소외되어 온 주변부 여성의 중심부 진출을 통해 프랑스 기업계의 활력과 쇄신을 한껏 추동해 나가려는 하나의 경영 쇄신론이다. 이미 노르웨이에서는 500대 기업의 여성 이사가 41%에 이르는데, 이는 2001년부터 여성 쿼터제를 시행해 온 결과라고 한다. 프랑스가 노르웨이식 여성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을 보면, 여성 쿼터제 도입을 통한 기업계 변화가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음을 입증한다. 실제로 미국 리서치 회사인 캐털리스트의 포천 500대 기업 조사를 보면, 여성 임원 비중이 높은 기업의 수익성과 효율성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임원이 셋 이상인 기업들의 평균 주가 수익률은 83%, 영업이익률은 73%, 투자 자본 대비 수익률의 경우 112% 더 높았다는 것이다.

  여성 임원 늘리기가 기업경영의 쇄신과 성과 증대를 보이면서, 스웨덴의 기업임원 여성 비율은 27%, 독일 13% 그리고 영국 12%로 늘어나고 있다. 포천 5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 평균은 14.7%이다. 그러니 여성 임원이 8%에 불과한 프랑스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게 무어 그리 신기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예기치 않은 결과로 여성의 자아실현을 제고하게 된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기업경영의 효율성 제고에 덧붙여 양성평등이라는 선진사회의 면목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여성 쿼터제를 통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어느 부문보다도 막강한 위용과 장악을 보이고 있는 기업계에서 여성이 보다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할 것이기에, 기업임원에서의 여성 쿼터제 진척은 21세기 세계사를 변화시켜 나갈 나비효과의 시작이라 보아 무방할 것이다.

  한국 기업에서의 여성 임원은 3.3%에 불과하다. 그만큼 한국에서 여성의 위상은 아직도 멀었다. 한국은 인구의 50%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도 세계시장에서의 무한경쟁에서 거뜬히 이겨내리라 보는 것일까. 문득 2010년 1월 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 2010’ 행사장에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두 딸의 손을 잡고 의욕적으로 앞을 향하는 사진이 떠오른다. 그렇게 두 딸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기사 거리가 될 정도로 한국에서 여성의 대외적 출몰은 드문 일이다. 아니 이른바 사회적 계층구조의 사닥다리에서 여성의 차지가 주로 하부에 치우쳐 있어서인지 혹 여성이 앞에 나서면 신기해한다. 앞에서는 여성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릴 만큼 여성의 사회적 목소리는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저변에 깔린 여성의 힘을 ‘억척 아줌마’와 ‘강남 엄마’로 축소시키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III. 6.2 지방선거에서의 여성 

  언제부터인가 공적 선거에서의 여성 쿼터제는 많이 논의되고 있고 차근차근 법제화도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을 보면 여성 할당제를 위반할 경우의 규제가 없어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구두선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여성을 비례대표 의원 명부에서 1번부터 홀수 번에 위치시키도록 법제화한 결과, 제주 여성 도의원의 경우 한나라당 2명, 민주당 2명, 민노당 1명을 포함하여 도합 5명의 도의원이 지난 4년 동안 도의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만약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여성 할당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제주도의회에서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인구의 반인 여성이 도의회에서 적정 수준으로 대표되도록 지원하는 방안 모색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 지방선거에서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47조 ‘정당의 후보자 추천’ 규정은 반보 전진이다. 왜냐하면 지역구 시·도의원 선거에 국회의원 지역구를 기준으로 1명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명문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내 도의원 선출과 관련 성비불균형을 보완해야 한다는 기사와 함께 최근 제주도내 초등교사 임용과 관련 성비불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우려를 표하는 기사가 오버랩 된다. 2008년의 경우 121명 제주도 초등교사 가운데 82명(67.8%)이 여성이었는데, 2009년의 70명 초등교사 가운데 55명(78.6%)이 여성이고 2010년에는 38명 가운데 33명(86.8%)이 여성으로 점점 더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다. 초등교사임용 수가 줄어들면서 초등교 여교사 비율은 점점 더 커질 공산이다. 그러니 아마도 조만간 초등교사의 과잉여초 현상에 대한 보완책이 검토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직선 도의회 의원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되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으로 각 정당이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최소한 1인은 여성으로 후보를 공천하도록 하는 규정은 강제 규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 공천을 받아야 당선 가능성이 그나마 주어진다고 본다면, 도의원 선거에서 여성에 대한 적정한 기회부여는 필수이다. 도의원 여성공천을 의무화 하는 것도 성비불균형을 조정해 나가는 그 시작일 것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마침 지난 1월 26일 <2010 시민 매니페스토 만들기 제주본부>가 제시한 6.2 지방선거 제주도민 아젠다 가운데 하나가 여성부지사 직제 설치이다. 여성부지사 문제는 2006년 지방선거 때 김태환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여성부지사'와 '여성정책담당관' 신설을 약속하면서 '조례개정을 통한 단계적 임명'까지 언급한 바 있었던 사안이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전형적인 공약(空約)으로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러한 공약들을 잘 지켜나갈 지사후보를 찾는 것도 6.2 지방선거의 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부지사 직제 신설이 여의치 않다면, 환경부지사와 2행정시장 가운데 하나는 여성에게 할당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프랑스의 입법처럼 여성임원 40% 쿼터제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5급 여성공무원 10% 의무화 등 여성 관리직의 비중 강화를 통해 제주도정의 혁신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6.2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제주도민들로서는 단순히 6월 2일 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래저래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양길현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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