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와 일자리 창출

73842_80658_2853.jpg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은행의 본분은 실물경제에 돈을 공급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폐막된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은행은 신용위험을 잘 평가해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국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거들었다. 다보스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은행이 자기의 계정으로 헤지 펀드에 투자하거나, 주식 등의 유가증권을 매매하는 행위(prop trading)를 금지시키겠다고 했다.

은행에는 은행계정과 신탁계정이 있다. 은행의 자본금과 고객의 예금을 자원으로 운영되는 계정을 은행계정이라고 한다. 이 계정으로는 증권투자 같은 위험한 업무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회사채 등의 유가증권을 발행할 때 은행이 이를 인수(underwriting)하는 업무는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수업무란 발행하려는 금액이 시장에서 전액 소화되지 못했을 때 잔액을 은행이 매입해주는 행위다. 즉 유통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사는 것은 안 되고 발행시장에서 이를 사주는 것은 된다는 말이 된다. 은행의 유가증권 인수행위는 결국 그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되므로 이를 실물경제 지원으로 보는 것이다.

실물경제와 일자리 창출

이번 다보스 포럼의 다양한 주제들은 모두 실물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모아지는 양상이었다.

일부에서는 오바마의 금융개혁안이 일반 대중들의 분노를 등에 업은 포퓰리스트적 발상이며 지나치게 혁신적이라는 비난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위험자산 매입 제한 움직임은 대세이며, 나아가 현재 ‘은행감독을 위한 바젤위원회’가 추진중인 은행 적정 자기자본 요건 강화조치가 시행되고 나면 전 세계의 금융산업은 상당한 구조조정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전체의 시가총액 중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8%선에 불과했으나 2004년에는 20%를 넘어섰다.

금융산업의 비대한 성장을 단순히 금융인들의 잘못으로 보는 해석은 부적절하다. 제조업 등 2차 산업이 비교우위를 잃어갈 즈음 이를 대신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신성장산업으로 금융산업을 키웠던 것은 서구사회 전체의 시대적 선택이었다.

이제 이들은 또다시 금융산업을 대체할 산업을 찾아야 한다.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청정 에너지와 녹색기술이 유별나게 주목을 끌었던 이유는 지구환경도 환경이지만 이 분야의 성장 전망과 이 시장에서의 주도권 선점의 중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크리스틴 라갸드 재무장관은 청정에너지산업 한 분야에서만 자국 내에 24만개의 일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위기 중에 잃어 버린 일자리 40만명을 크게 만회할 수 있는 숫자다. 중국 정부는 작년 한해 동안 청정에너지 개발에 무려 44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곧 이 분야에서 세계 3위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고 한다.

작년 말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기후변화 회의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중국은 급할 게 없었다. 구속력 있는 합의가 늦어질수록 기술혁신은 늦어질 것이고, 탄소배출이 비용으로 인식되어야 시장의 가격기능이 가동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시장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다.

“6개월 전만 해도 탄소 배출 규제가 중국보다는 오히려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해칠 것으로 우려했다. 그런데 지금은 규제가 늦어지는 만큼 중국에게 녹색경제의 주도권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유럽이 중국의 상의하달(Top Down)식 산업정책을 수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 린지 그래엄 상원의원의 고민이다.

시장자본주의 vs. 국가자본주의

우리나라는 올해 G-20 의장국이자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다. 개도국과 선진국을 한 세대에 경험한 흔치 않은 국가로서 비회원국과 민간 부문을 확대 포용하고 비즈니스 서밋을 병행 개최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개막연설은 시의 적절했고 상당히 비중있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시장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위기극복 비용, 특히 재정지출이 과다했던 것도 아니다. 진정 실물경제와 일자리 살리기를 절실히 원한다면 국가의 능력과 시장의 능력이 동시에 발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종시와 같은 문제, 중요하지만 매우 어려운 문제들은 우회하며 가는 정치적 양보, 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