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9) 너무나 우연히 그를 만났습니다

나는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늘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늘 내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늦게야 배운 수영을 가르쳐줬고
어떤 게임에서나 같은 편이 되어서 뛰어줬으며
뒷동산에 함께 올라 맑은 날에나 볼 수 있는 바다 위의 섬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 인도 룸비니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스님

한번은 서로 몹시 서운한 적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단체로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오르면 상품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경쟁을 시켜
옆길로 새거나 뒤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나는 그 상품을 꼭 타고 싶었습니다.
상품보다 내가 가장 산을 잘 탄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몸이 약했던 그 친구는 자꾸만 뒤로 처졌고
나는 어느 순간 혼자서 내닫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 없었고
우린 결국 한 참을 뒤처졌고
나도 그 친구도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 벗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스님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가 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지내다
세월이, 세상의 현실이, 인연이
우리를 한참이나 떨어져 있게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때론 그 친구를 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힘이 들고 삶의 걸음을 멈추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그 친구생각이 났습니다.

▲ 오성스님 ⓒ제주의소리 / 캐리커쳐=김경수 화백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걸었습니다.
그러다 너무나도 우연히
그러다 너무나도 생각 없이
그러다 너무나도 준비 없이
그를 만났습니다.
이마에 주름도 생기고
눈도 나빠져 안경도 섰지만
여전히 그 친구는 따뜻한 미소를 내게 건네고 있었습니다.

우진제비오름 작은 옹달샘에 비친 그 친구는
참 나를 닮았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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