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1] 설날, 추자도 가는 배에 몸을 싣다

배의 브릿지 우진이와 '한일카훼리3호'의 브릿지에 올라 뱃길을 둘러봤다. ⓒ 장태욱

설날 이른 아침 세배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추자도로 가는 '한일 카훼리3호'에 몸을 실었다. 그간 귤을 수확하면서 쉴 새 없이 일을 해 왔던 터라 가족에게 여행과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객실에는 고향으로 세배를 가는 귀향인파로 가득 찼다. 설빔을 입은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배가 섬에 도착할 시간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한일카훼리 3호'는 오후 1시 40분에 제주항을 출항하여 추자를 경유한 후, 완도에 도착한다. 제주에서 추자까지는 대략 두 시간, 추자에서 완도까지는 네 시간이 소요된다.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는 고향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한없이 설레기만 할 것이다.

귀성객들 설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귀성객들로 객실이 가득찼다. ⓒ 장태욱

이번 여행을 통해 오랜만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우리를 태우고 가는 배는 총톤수 606톤, 길이 51미터의 아담한 여객선이다. 배가 제주항을 빠져나가자 오래전 항해사로 대양을 누비던 시절 간직했던 추억이 떠오르더니, 가슴 속에는 브릿지(bridge, 선교)를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브릿지 입구에 '통제구역'이라고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우진이와 함께 조심스레 브릿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필자 본인을 '전직 항해사'라고 소개하자 항해당직을 서던 2등항해사님과 갑판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레이더, 조향장치, 텔레그라프, 컴퍼스, 망원경 등 오랜만에 보는 항해계기들이 반갑기만 한데, 처음 접하는 디지털 해도는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해도 예전에는 종이 해도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디지털 해도를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 배의 위치와 뱃길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 장태욱

예전에는 종이 해도에 연필로 항행선을 그리고 난 후 매시간 주기적으로 배의 위치를 해도에 표시하며 배가 항로를 이탈하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 배에서 사용하는 장치는 컴퓨터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만 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해도가 자동으로 나타나고 배의 위치와 항해방향이 매시간 자동으로 표시된다. 이 계기가 항해사들의 많은 업무를 덜어주고 있을 것이다.

우진이가 신기한 듯 망원경으로 멀리 보이는 섬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레이더에 나타난 영상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배는 거의 아무 장애물도 없는 바다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지금은 두어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50여km의 이 뱃길이 과거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내걸어야할 만큼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화도(큰 관탈섬) 멀리 '화도'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 사람들은 이 섬을 '큰 관탈섬'이라고 불렀다. 이 섬 인근에 해류가 복잡하기 흐르기 때문에 옛날 뱃사람들은 이 일대를 지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 장태욱

1577년 천재시인 백호 임제가 제주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부친 임진을 뵈러 제주에 왔다가 해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뱃길을 두고 남긴 기록이다.

'추자도 이북으로는 섬들이 많기 때문에 바람에 표류되더라도 배를 의지해 살 수 있다. 그러나 추자도 이남으로는 섬들이 전혀 없으니 서쪽으로 표류하면 혹 중국으로 갈 수도 있고 동쪽으로 표류하면 혹 일본으로 가는 수도 있다. …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추자도 이남을 조심하고 있다.'-<남명소승> 중 일부

배가 제주항을 출항한 지 1시간쯤 지나자 배는 좌현(서쪽)에 보이는 두 바위섬을 지난다. 해도에는 그중 북동쪽에 있는 큰 것이 '화도'라고, 남서쪽에 있는 작은 것이 '해암서'라고 표시되어 있다. 과거에 제주사람들은 이들을 각각 '큰 관탈섬'과 '작은 관탈섬'이라고 불렀다.

당직 항해사는 관탈섬이 제주와 추자의 가운데 정도에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를 실은 배는 제주에서 관탈섬까지 오는데 1시간, 관탈섬에서 추자까지 가는데 1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1704년 이형상 목사가 저술한 <남환박물>에는 '큰 관탈섬'을 '대화탈도'라 칭하면서 "제주목에서 추자도에 이르기까지 거리의 중간에 있다. 둘레가 수 리이고, 온통 돌을 깎아지른 듯이 가파르고 뾰족하다"고 기술하였다.

제주목사를 지낸 이원진이 1653년에 지은 <탐라지>에도, 이 두 섬 사이에 물의 흐름이 서로 교차해 파도가 흉흉하므로, 배들이 표류하고 익사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기록했다. 최근 학자들 중 일부는 화탈이라는 이름이 '화급히 벗어나야 하는 섬'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덕도 하추자도 입구에서 수문장처럼 섬을 지키고 있다. ⓒ 장태욱

과거 수많은 뱃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저승길을 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더니, 추자도가 어느새 눈앞 가까이 다가왔다.

보통 추자도라고 부르는 섬은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지칭하지만, 추자군도는 유인도 4개를 포함해서 총 4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배가 하추자도를 향해 가는 동안 주변의 수많은 섬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수문장처럼 하추자도를 지키고 있는 듬직한 섬 하나가 유독 시선을 끌었다. 마치 사자가 누운 상태에서 상체를 바로 세우고 전방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인데 섬의 이름이 '수덕도'라고 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섬에 아무 색이 보이지 않지만,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될 때쯤에 섬이 황색으로 물드는 광경이 여간 볼 만한 것이 아닙니다. 배가 수덕도 옆을 바짝 붙어서 통과하기 때문에 웅장한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선장님 배의 선장님이 접안을 지휘하는 모습이다. 창 너머로 풍물패들이 눈에 들어왔다. ⓒ 장태욱 추자도

배를 몰고 가는 항해사님의 자랑 때문에 가슴 속에서는 수덕도에 대한 기대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배는 사자형상을 한 수덕도의 상체 정면을 통과했는데, 그같은 웅장한 기개를 다른 섬에서는 일찍이 본 기억이 없다. 

배가 수덕도를 지나자 '카훼리3호'의 선장님이 입항을 지휘하기 위해 브리지에 들어오셨다. 선장님의 지휘로 배는 속력을 낮추더니 방파제를 지나 하주차도 신양항 안으로 들어섰다.

배가 부두 가까이에 이르자 풍물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설을 맞아 마을 풍물패가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마을 구석구석을 돌다가 배가 입항하는 시간에 맞춰 귀성객을 흥겹게 맞는 것이다.

신양항 하추자도 신양항이 귀성객들과 환영을 나온 주민들로 성황을 이뤘다. ⓒ 장태욱
 

배를 접안하는 것이 선장과 선원들에게는 무척이나 긴장되는 일이고, 가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일이 꼬이기 일쑤다. 풍물패들이 내는 악기소리가 선장님과 선원들 사이의 대화를 압도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부두는 설을 맞아 고향을 찾아 온 귀성객들과 환영을 나온 가족들과 풍물패들이 어우러져 잠시 성황을 이뤘다. 예상치 않았던 환영을 받은 터라 우리 가족이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우리를 태우고 온 배가 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 나갔다. 그리고 흥겨움도 잠시, 귀성객들과 환영객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떠나가는 배 우리를 태우고 온 배는 항구를 빠져나갔고, 부두에는 우리만 남았다. ⓒ 장태욱

부두에는 적막과 더불어 갈매기와 우리 가족만 남았다. 하늘에서는 예기치 않았던 눈발이 날렸고, 바람은 차갑기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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