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패 한라산 '사월굿 헛묘' 동광마을 현장공연…잃어버린마을 표석제막식도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이들이 다시 불(소개령)로 인해 흩어진다. 흩어진 사람들과 영혼들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돈다.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 이제는 그 옛날 마을 형체만 가능해 볼 수 있는 폭낭(팽나무)과 올래터, 그리고 대나무만이 무성한 잃어버린 마을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삼밭구석'.

▲ 평화로운 마을.ⓒ제주의소리
8일 잃어버린 마을 삼밭구석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여태껏 가슴에 묻어뒀던 상처와 응어리, 사무친 한을 신명으로 풀어나가는 한마당이 벌어졌다.

놀이패 한라산의 '사월굿 헛묘' 동광마을 현장공연이 그것.

이날 공연은 잃어버린 마을 동광리 '삼밭구석' 표석제막식에 앞서 동광 주민들과 학생들을 4.3이 일어났던 그 시대로 이끌었다.

▲ 소개령.ⓒ제주의소리
화전을 일구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수눌음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들이 있었다. 제주 온섬을 휘몰아친 4.3의 광풍은 삼밭구석이라고 비켜가지는 않았다.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해안가 마을로 내려가지 않으면 모두가 '빨갱이'가 됐던 시절. 이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순박하게만 살아가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마을 부근의 큰넓궤라는 굴에서 숨어살다 다시 영실 부근의 볼레오름에 까지 쫓겨갔다.

▲ 피란.ⓒ제주의소리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불에 타서 죽고 어떤 이는 총에 맞아 죽고 피란생활에 지쳐서 죽고…. 이 와중에도 새로운 생명은 다시 태어난다.

▲ 죽음.ⓒ제주의소리
난리가 끝나고 요행으로 목숨은 부지했지만 이들에게 돌아갈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4.3영혼을 불러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머물 집, 헛묘를 만든다.ⓒ제주의소리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희생당한 영혼들도 마찬가지. 살아남은 자들은 마을 재건과 함께 바람처럼 구름처럼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도 돌아갈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 '헛묘'를 만들어 준다. 시신도 온데 간데 없기에 …. 그들의 넋을 달랜다.

'사월굿 헛묘'의 연출을 담당한 윤미란씨는 "공연을 보면서 어르신들이 '맞아, 그땐 정했주. 경허멍 살아서(맞아, 그때는 저랬어. 그렇게 하면서 살았지).'하며 공감해 주시는 것을 보고 감사하고 또 기쁘다"며 공연소감을 밝혔다.

▲ '사월굿 헛묘'의 연출을 담당한 윤미란씨.ⓒ제주의소리
윤씨는 "마을 자체가 완전히 없어져 버린 데다 유족들마저 다 뿔뿔이 흩어져 더이상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잃어버린 마을 삼밭구석"이라며 "현재 4.3은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픔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어 "이제는 그 고통과 한을 가슴속에 담아두지만 말고 풀어헤쳐 한바탕 신명으로 풀어내야 할 때"라며 "어르신들의 뒤이은 세대에서 4.3의 올바른 의미를 되새기고 잘 살려내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으니 슬픔과 아픔을 갖고 있지만 굳건히 살아가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놀이패 한라산의 '사월굿 헛묘'는 "우리가 과거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더듬어보는 것은 다시는 이런 아픈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취지를 갖고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인 생명, 평화,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실천하는 장이 됐다.

▲ 동광리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이 놀이패 한라산의 '사월굿 헛묘' 공연을 진지하게 보고 있다.ⓒ제주의소리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서광교 학생 45명이 삼밭구석 터를 찾았는데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강은희 교사(6학년 담임)는 "제주에 온지 3년 됐는데 4.3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번 공연을 보니 가슴이 찡하다"며 "아이들이 세세하게 많을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관람태도도 진지하다. 이번 공연관람을 통해 막연하겠지만 4.3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고 관심을 가질 듯 하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4.3이 '제주사람들이 무수하게 죽어간 사건'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 이새봄양(서광교 5)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슬프고 무섭다"고 말했다.

송길호군(서광교 4)은 "군인들이 자기네 땅으로 만들기 위해 동광마을 사람들을 다 쫓아낸 것 같다"며 "죄도 없는 마을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 같다"고 말해 막연하게 나마 4.3이 잘못된 국가공권력에 의한 희생이었음을 짐작하는 듯 했다.

▲ ⓒ제주의소리
"모르는 사람들은 보멍 웃기도 허곡 햄주만은 그 때 당헌 사람들은 아직도 가슴 속이 아파"

4.3 당시 본인은 목수인 남편을 따라 강정마을로 가서 다행히 화를 면했지만 고향 동광마을에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었다는 신영춘 할머니(83·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더 이상 울어봐도 소용없고 하지만 여전히 가슴속에는 아픔이 있다"고 말한 후 "어린 아이들은 얘기해도 믿지도 않고 지금 이런 공연을 보면서도 장난으로 알 거"라며 "우리 손자 손녀들도 말해도 몰라. 당헌 사람만 가슴 아픈거주"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신다.

이날 공연은 관객과 배우가 하나가 되어 4.3의 아픔을 풀어내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찾아갔다.

▲ 8일 남제주군 안덕면 잃어버린 마을 동광리 삼밭구석 표석이 제막됐다.ⓒ제주의소리
공연에 이어 잃어버린마을 동광리 삼밭구석 표석 제막식이 진행됐는데 공연 관람중인 노인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제막식 행사장으로 빼가는 등 유족들을 좀 더 배려하지 못한 관계자들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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