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섬세한 손과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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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제주의소리
지구촌의 관심은 고용증대에 모아져 있다. 그러나 실업을 단기적 경기변동의 현상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면 문제해결을 위한 해법이 진부한 선에 머물게 된다. 실업 문제는 인류의 생활양식 및 생산방식의 일대전환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의 역사는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에도 이러한 진전은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총생산이 10억원 늘어날 때 몇명을 더 고용하는가를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가1995년 24.4에서 2007년 13.9로 줄어 들었다. OECD가 발표하는 단위노동비용의 변화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제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지불된 인건비를 지수화(2005년=100)한 것인데 해가 갈수록 제조업에서는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존 나이스비트(John Neisbitt)는 일찍이 ‘메가트렌드’라는 제목의 책에서 희망적인 하나의 대추세(大趨勢)를 지적했다. 기술사회의 발달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지만 이에 상응하여 사람의 손길에 대한 욕구도 나란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하이터치

그는 이것을 하이테크에 대한 하이터치 대응(High touch response)이라고 표현하였다. 국제택배 사업의 선두주자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x)가 자사의 서비스를 차별화할 수 있었던 비결은 최첨단 전자장치와 전용 제트기에 있지 않고 고객의 소중한 물건을 ‘사람의 손으로’ 수취인의 손에 확실히 쥐어준다는 인편배달(hand delivery)에 있었다면서 이것을 하이터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하이터치는 노동집약적이며 그 단어가 뜻 하듯이 한 단계 높은 소비자 만족을 가져오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와 LCD 모니터 생산량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핸드폰 보급률도 세계 1위인 나라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하이테크 사회를 “첨단기술이 시민들에게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고 있는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그 예로 든 일곱 나라 중에 우리나라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하이터치적 대응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은행에 전화를 걸어 보면 음성녹음이 나온다. 서비스의 종류를 나열하고는 원하는 번호를 누르라고 지시한다. 주요 관공서 전화도 마찬가지다. 기계음을 끝까지 듣고 있노라면 짜증이 난다.

그 많던 친절한 교환양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가까운 동네 슈퍼에서 간편한 장을 보려고 해도 뒷골목에 안전한 보행자 도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길거리로 걸어 나오기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형 유통체인에게 상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까지의 소품종 대량생산은 ‘매출의 80%는 판매순위 상위 20%의 상품에서 나온다’는 ‘80대20의 법칙’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롱테일 현상(Long tale phenomenon)으로 부정되고 있다. ‘롱테일’이란 판매순위는 20등 안에 못 들어가지만 그 이하 꼴등까지의 상품이 각각 조금씩 팔리는 분량을 합치면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이 된다는 통계학적 용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가능해진 현상이다. 한국전산원의 최근 자료 ‘롱테일과 나노경제’는 기존의 대량생산·판매의 매스경제로부터 아주 사소한 다수의 소비자들을 겨냥하는 나노경제(Nano economics)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나노경제는 다품종소량생산을 의미한다. 똑같은 물건을 기계로 찍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고객의 취향에 맞게 손으로 꼼꼼히 만들어 내는 다품종소량생산은 고용흡수능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

인간의 섬세한 손과 마음으로

OECD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만15세부터 24세까지 100명 중 25명이 취업을 한다. OECD평균인 46명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취업률이 현저히 낮은 것은 출세하지 못하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던 우리 사회의 유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청소년의 절대다수가 끝없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다 보면 하이터치 사회에 요구되는 다양성은 더더욱 상실될 것이다.

하이터치는 인간의 섬세한 손과 마음이 더해지는 것을 바라는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다. 하이터치 사회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기계에 의해 축출된 인간의 노동은 ‘잉여’로 방기될 수밖에 없다. 하이터치 사회에 적합한 사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항목들은 참으로 많고 또 시급하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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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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