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10) 까미노 산티아고 원고⑤

▲ 레온 시내를 벗어나 만난 풍경들 ⓒ안병식

▲ 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 ⓒ안병식

8/12  48.9km  레온(Leon)-->아스토르가(Astorga)            

스페인의 북부도시 레온은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고 뭔가 모를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머물면서 여행도 하고 싶었고 휴식을 취하며 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풀고 싶었지만 그저 바램 일 뿐 나는 달려야 했다.

해가 뜨면서 다시 길을 나섰다. 레온 시내를 한참 걸어서 산 마르코스(San Marcos)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이미 길을 나서는 많은 순례객들 사이로 순례자를 형상화한 동상이 신발을 벗고 머리를 뒤로 재친 채 처량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것은 지쳐있는 나의 모습일수도 있고 까미노 산티아고 길을 걷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지쳐 쉬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레온 시내를 벗어나 아스토르가(Astorga)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오늘은 몸이 많이 무겁다. 오전부터 태양도 뜨겁고 레온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날씨가 더 덥게 느껴지는 지형이다. 땀띠 때문에 등도 다시 따갑고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아스토르가로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 산 마르코스 광장에 있는 순례자를 형상화한 조형물 ⓒ안병식

▲ 아스트로가 시내 ⓒ안병식

철로 만든 미로처럼 되어 있는 다리를 지나면 아스토르 시내로 접어든다. 레온 주에 속해 있는 이곳은 고대 로마의 성채가 세워졌고 기원전 14년에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이름을 붙인 아스투리카(Asturica)라는 도시가 설립되었다. 고대 로마가 에스파냐를 지배하던 시기에 에스파냐 북서부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오래전부터 이 도시를 포함한 주변지역은 사회 관습과 구별되는 마라가토스(Maragatos)라는 문화 공동체를 형성해왔으며 따라서 이곳의 건축물은 전통적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인다.

현재 도시 곳곳에 이와 같은 역사적 건축물을 비롯해 많은 관광 명소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중세시대에 건축한 주교궁(El Palacio Episcopal)과 산타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고대 로마시대에 조성한 시 벽(Wall of the Town) 등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아스토르가의 광장과 골목길들을 구경하고 난 후 알베르게에서 만난 친구들인 스페인에서 유학중인 인태, 짐이 무겁다고 다음 알베르게로 배낭을 보내고 가볍게(?) 걷고 있는 혜진(다음 알베르게로 짐을 보내고 빈 몸으로 걸을 수 있다는 걸 여기에 와서야 알았다. 일찍 알았다면 나도 다음 알베르게로 미리 보냈었을 수도 있었는데), 대학생인 민지와 일본의 유미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슈퍼에서 쌀과 계란 쏘세지 양파 등을 구입했고 혜진이 가져온 건조 미역국 등으로 알베르게 내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만들었지만 오래간만에 먹는 밥과 계란, 미역국, 양파 쏘세지 볶음 등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던 것 같다. 특히 오랜 시간 까미노 산티아고 길에 있었던 인태와 민지 일본의 유미꼬는 밥을 먹고 있는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한국음식들이 그리워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쏘세지 양파 볶음과 계란 양파 후라이는 까미노 산티아고 길 위에 있는 동안 내가 제일 많이 만들어 먹었든 음식이기도 하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었고 어느 슈퍼에서나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어서 딱히 다른 음식을 만들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었다. 오래간만에 여러 친구들과의 만남과 함께한 식사시간이 행복한 하루였다. 이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까미노 산티아고에 있는 동안에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 한국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하며. ⓒ안병식

▲ 아스트로가 시내를 벗어나 만난 풍경들 ⓒ안병식

8/13  53.8km  아스토르가(Astorga)-->폰페라다(Ponferrada)

어제 먹다 남은 음식들로 아침을 해결한 후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가로등 빛이 있는 아스토르가 시내를 걸어 나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직 나도 모르겠다. 매일 저녁 다음날의 일정에 대해 계획은 세우면서도 몸이 허락하는 곳 까지. 그리고 괜찮은 숙소가 있는 곳 까지 가는 게 하루의 목표로 해서 달렸다. 또한 오늘은 어떤 지형을 지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정도가 하루를 시작하며 생각하는 것들이다.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린 지 10일이 지났다. 몸도 적응했고 무릎이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견딜만 했다. 땀띠만 아니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데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는 날까지 땀띠와의 싸움은 계속됐다.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를 지나면서 다시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그리 높지도 않았고 도로 옆으로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 길이라 폰세바돈(Foncebadon) 마을까지 달려서 올랐다.

폰세바돈은 사람이 살지 않은 버려진 마을처럼 정말 오래된 마을이었다. 폰세바돈 마을을 지나 1450m인 이라고(Irago) 산 정상에 오르면 돌무더기에 쌓여있는 십자가가 있는 쿠루스 데 히에로(Cruz de Ferro)에 도착할 수 있다. 십자가 주변으로는 순례객들이 쌓아놓고 간 돌들이 많이 있는데 각각 어떤 사연과 어떤 소원을 빌며 쌓아올렸는지는 모르지만 쌓인 양만큼 사람들의 사연도 엄청나겠지.

▲ 라바날 델 까미노 ⓒ안병식

▲ 폰세바돈(Foncebadon) ⓒ안병식

만자린(Manjarin)를 지나 엘 아세보(El Acebo)에 도착하니 멀리 폰페라다(Ponferrada)가 눈에 들어왔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따라 리고 데 암브르스(Riego de Ambros)를 지난 후 몰리나세카(Molinaseca)에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머무르며 강가에서 목욕도 하고 싶었다. 산 밑에 있는 작고 고요한 마을이라 맘에 들어 이곳에서 머무를까 잠시 고민하다 아직 몸도 문제없었고 조금 더 가면 다음 일정이 여유가 생길 것 같아 8km를 더 달려 폰페라다(Ponferrada)에 도착했다.

시내에 들어서면서 금새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하지만 알베르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숙소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 알베르게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기부방식으로 요금을 내야 하는 데 5유로를 내면서도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기부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속 좁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5유로라고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을 텐데. 5유로에 하루 머무르면서 잠을 잘 수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지만 까미노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1유로라도 아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씻고 난 후 슈퍼로 가서 과일과 빵 등 저녁과 내일 아침 먹을 음식까지 구입하고 와서 과일과 계란 그리고 소세지 볶음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이후 또 다른 한국인 친구들 그리고 그와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과 같이 모여 와인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지하에 있는 침대에 숙소 배정을 받는 바람에 답답해서 잠을 자기 불편해 1층 로비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청했지만 사람들 땜에 여러 번 잠에서 깼다.

▲ 쿠루스 데 히에로(Cruz de Ferro) ⓒ안병식

▲ 만자린(Manjarin) ⓒ안병식

▲ 엘 아세보(El Acebo) ⓒ안병식

8/14  52.9km  폰페라다(Ponferrada)-->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많이 피곤하고 무거웠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시작되는 오르막과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뜨거워져가는 태양은 몸을 많이 지치게 만들었다. 어제에 이어 다시 산을 넘어야 하는데 어제보다 산이 급경사이고 지형도 힘든 곳이었다. 간식으로 챙겨온 마른 바게뜨 빵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산의 지형이 험해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 중턱에서 스페인의 키르케와 그의 친구들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달리는 경우가 많은 데 이 친구들은 지형이 험하고 힘들어도 순례길을 선택해서  순례자들과 같은 길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산의 지형이 험하다 보니 가다 지쳐 산 중간에서 쉬고 있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산을 오르는 나를 보고 놀라워했던 그들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하지만 험한 산을 오를 때는 자전거보다 오히려 사람이 더 빠르다. 오후 3시가 되어서 힘들게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도착했지만 알베르게에는 여유분의 침대가 남아있지 않았었다. 다른 숙소를 찾아봤지만 산 정상에 있는 작은 마을이고 다른 곳 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 몰리나세카(Molinaseca) ⓒ안병식

▲ 폰페라다(Ponferrada)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순례객들 ⓒ안병식

▲ 산 위에 있는 마을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안병식

오 세브레이로는 아침 일출과 석양을 보기 위해 다른 곳 보다 인기가 있는 곳이라 일찍 도착하지 못하면 알베르게 숙소를 구하기 힘든 곳이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서 3유로를 내고 샤워만 하고 난 후 오늘은 알베르게 밖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잠 잘 곳을 정한 후 육체적으로 좀 피곤하긴 했지만 마을 구경을 나섰다. 오 세브레이로는 산 위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아기자기하게  돌담으로 지어진 집들이 귀엽고 예쁜 마을이다. 집들이 돌담으로 외형을 만들고 지붕은 밀짚으로 덮여있어 제주의 초가집을 연상케 했다. 마을은 순례객 외에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어 바(Bar)에 들려 생맥주 한잔을 들고 나와 야외에 있는 의자에 앉아 여기까지 큰 문제없이 온 기쁨과 며칠 후면 산티아고 성당까지 잘 도착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건배를 청했다. 거품과 함께 입속에서 톡 쏘는 듯 한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오늘의 피로를 잊는 기분이었다. 생맥주 2잔을 마시고 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또 다른 레스토랑으로 이동 후 계란 후라이와 포테이토를 시킨 후 다시 와인도 곁들였다. 오늘은 술을 좀 많이 마신 것 같다.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갈 때 쯤 산 너머로 태양도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여름이지만 밤이 되면서 밖은 쌀쌀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도 힘든 하루였고 거기에 술기운까지 더해 금세 잠이 들었다. 오늘은 스페인의 밤하늘에 있는 별들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제주의소리>

<안병식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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