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민속·생활 접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인내 필요
자연·민속·생활 접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인내 필요
  • 양영태 시민기자 (ytyang@hc.ac.kr)
  • 승인 2005.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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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미의 제주여행(14)] 걷는 즐거움을 안고…우도 도보여행(2)

▲ 안개가 밀려드는 쇠머리오름.ⓒ양영태

▲ 영일동 포구(모살개).ⓒ양영태

검멀래를 지나면 영일동이고, 영일동에 있는 포구의 이름은 모살개이다. 포구 칸살에 모살(모래)이 깔려 있어 '모살개'라 부른다.
그 규모가 미약하고 배들이 커지면서 포구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여 가다가 지금은 방파제를 축조하고 물양장을 설치하여 새로운 포구로 개발되어 있다.

▲ 영일동 포구탑.ⓒ양영태

영일동 포구 '답다운디'라는 곳에 1기와 동남쪽의 경작지에 1기가 있다.
포구에 있는 것은 평면 사각형, 정면 사다리꼴 형태이고, 경작지의 것은 원뿔통형이다.

▲ 비양도.ⓒ양영태

섬중의 섬 '비양도'.
제주도에는 양쪽에 날개가 있다는 말이 있다.이를 동비양(東飛陽), 서비양(西飛揚)이라 한다.
옛날 선인들은 제주섬을 하나의 큰 학으로 생각하여 서쪽 날개는 한림읍 비양도, 동쪽 날개는 우도의 비양도로 여겼다.
동비양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 하여 '볕양(陽)', 서비양은 해가 지는 것을 건져 올린다는 뜻으로 '나타날 양(揚)'을 사용함으로써 동서의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안비양이라고도 하는 비양도는 총0.06km2 로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평평한 작은 섬이다. 무인등대가 있고 망대가 있다.

▲ 도리선창.ⓒ양영태

비양동과 안비양을 연결하는 다리를 말한다.
다리가 놓여지기 전에는 테우를 이용해 비양도에 드나들며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해방전에 마을사람들이 돈을 모아 다리를 놓았는데 사라호 태풍으로 무너져 다시 복구를 하였다고 한다.

▲ ⓒ양영태

이 선창을 의지하여 포구가 만들어져 있다. 터우를 위주로 하여 사용되어 '터웃개'라 한다.

▲ 비양도 돈짓당.ⓒ양영태

도리성창을 지나 똔비양에 접어들면 바로 오른쪽 높은 동산에 있다. 이 당은 비양도 사람만 다니는 해신당이다.
우도의 무속부락제로서 당제는 [본향당제]와 [돈짓당제]가 있다.
당제는 마을과 개인의 안녕을 축수하고 농사와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한다.
특히 우도는 정월대보름을 중심으로 바다의 풍어를 기원하는 당제와 2월의 영등제가 성행하고 있다.
우도에 있는 당은 '동천지동 돈짓당', '하우목동 본당(목지당)', '영일동 돈짓당', '서천진동 본향당(종달잇당)'
'똥내미구석 돈짓당', '하고수동 돈짓당', '전흘동 목지당', '주흥동 돈짓당'이 있다.

▲ 주흥동 돈짓당.ⓒ양영태

주흥동 '중개'포구 왼쪽에 방사탑이 있고, 그 부근 동남쪽에 '당알'이라는 곳에 돈짓당이 있다.

▲ 망대(望臺).ⓒ양영태

우도의 망대(望臺)는 본섬에 있는 연대(煙臺)들과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용도상으로 보면 관찰(觀察)하기 위한 것으로 연대처럼 관찰하고 신호로써 적을 알리던 것과는 약간 다르다.
우도의 망대는 두 곳에 있는데 모두 우도의 북쪽에 있어서 남해안 쪽을 관찰하게 되어 있다.
이 망대가 쌓아진 시기는 4.3사건(1948) 당시로 우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연대와는 분명히 다르나 근대의 4.3관련 유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비양도의 동북쪽에 하나가 있고, 전흘동 북쪽 바닷가에 속칭 '답다니탑'이라는 망대가 있다.

▲ 하고수동 해수욕장.ⓒ양영태

고수동의 옛이름은 '예물농네'이다. '예물'이란 하고수동에 있는 용천수를 말하며 '이물'이라고도 한다.
'이물'은 왜놈들이 발견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왜'가 '예'로 해석되어 한자로 '옛물'이 '고수(古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 그대로 '옛물(古水)'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고수동과 비양동 사이의 백사장은 우도봉을 배경으로 한 넓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이 곳의 옛이름은 '게와당'이다. '호주머니'의 제주어가 '게와'이다.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어 게와와 같은 마당이라 해서 '게와당'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개맛(포구)'에 멸치가 많이 잡히는 곳이므로 '개(원,垣)'를 의미하여 '게와당'이라 한다고도 한다.

여름밤이 되면 고기잡이 어선들이 무리를 지어 우도의 바다를 불빛으로 밝힌다.
이때가 되면 칠흙같이 어두운 날이라도 마을 안길은 그리 어둡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밤 하늘까지도 밝은 빛으로 가득 물들고, 잔잔할 때면 마치 온 바다가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현란하다.

▲ 하고수동 액탑.ⓒ양영태

하고수동의 옛 포구를 '독진개'라 했다.
옛날 육지에서 작은 배 한척이 게와당 입구 '비중도리'라는 코지(串)에 상륙했는데 한 사람만이 타고 있었다 해서 '독진코지(獨津串)'라 했다.
독진개 포구 양쪽(남,북)에 각 1기씩 모두 2기의 방사탑이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액탑(厄塔)'이라고 부른다.
탑의 정상에 새 형상의 돌을 올려 놓아 '까마귀동산(까막동산)'이라고도 한다.
북쪽의 것을 하르방, 남쪽의 것을 할망이라 하여 남과 여를 구분하고 있다. 이는 곧 음과 양을 뜻하기도 한다.

▲ 지금의 하고수동 포구.ⓒ양영태

▲ 답다니탑.ⓒ양영태

세비코지를 지나면 전흘동 북쪽 바닷가에 속칭 '답다니탑'이라는 망대가 있다.
'세비코지'란 블턱이 세 군데 있어 '세덕바지'라는 곳에서 바다로 쭉 뻗은 코지를 말한다.
쇠머리오름을 머리로 보면 이 곳은 소의 꼬리(牛尾=쇠미)이다.
'쇠미'가 변음되어 '쇠비'가 되었고 '쇠비'가 변음되어 '세비'가 되었다.

▲ ⓒ양영태

답다니탑을 지나 새로 개설된 해안도로를 따라 전흘동을 향해 가다보니 요즘 제철인 톳채취가 한창이다.
우도 뿐만이 아니라 제주도 전 해안가 마을에는 다들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을 것이다.

▲ ⓒ양영태

재취한 톳은 포장이 된 길 옆의 빈 공간에는 어디에든 널어 말리고 있었다.
해녀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될것이다.

▲ ⓒ양영태

답다니탑을 지나면 전흘동이다. 전흘동은 속칭 '돈올레'라고 부른다.
옛날 상선이 전흘동 앞바다에서 난파되어 엽전이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엽전을 주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돈이 들어 오는 올레'라는 말이다. 다른 설도 돈과 관련이 있어 '돈을동', '돈오른동네'하고 하여 부자동네란 뜻도 있다.

▲ 전흘동 포구.ⓒ양영태

전흘동 갯가에 있는 포구를 '도놀레성창'이라 한다.

▲ 주흥동 방사탑.ⓒ양영태

주흥동 마을 서쪽 해안에 위치한 포구는 남쪽으로 '당알코지'와 북쪽으로 '할망알코지'로 인해 후미진 곳에 있다.
주흥동의 옛 명칭은 중개(中垣)이다.
남쪽 천진리 '하늘이개'와 북쪽 전흘동 포구 사이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죽은 것들이 많아 '죽은개'로 불리던 것이 명칭이 나쁘다고 해서 '중개'로 변경했다는 설이 있다.
주흥동 포구 남,북쪽에 각 1기씩 2기가 있다.
남쪽 당알코지에 있는 것을 하르방, 북쪽 할망알코지에 있는 것을 할망이라고 한다.
남쪽의 경우 상단에 넓적한 돌이 세워져 있고, 돌의 정면에는 辛卯石(신묘석)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 동안경굴(東岸鯨窟).ⓒ양영태
주흥동을 지나 하우목동 포구에 다달으면 우도여행은 끝이 난다.
포구에서 도항선을 기다리며 잠깐 시간이 있으면 '평화통일의 소' 구경도 좋을 것이다.
우도의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서 한바퀴 돌며, 자연과 민속과 생활을 접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깊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차를 타고 지나가며 풍경에만 매료된다면 진정한 여행을 했다고 하기에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다.
시간이 없고 체력이 미치지 못한다면 하다 못해 네바퀴 오토바이를 빌어서라도 천천히 둘러봄은 어떨지!!!

"우도지(牛島誌)"를 참고하였다.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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