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마지막회) 까미노 산티아고 ⑥

▲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을 내려 오면서 만난 풍경들 ⓒ안병식

▲ 사리아를 향해 가면서 만난 풍경들 ⓒ안병식

8/15  63.5km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포르토마린(Portomarin)

오늘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잠에서 깨었다. 렌턴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고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지만 사람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내리막과 약간의 오르막이 반복 됐지만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알토 데 포이오(Alto de poio)에 있는 바(Bar)에서 아침을 먹고 난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은 산악지역과 작은 시골 마을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그동안 지나왔던 지역과는 풍경들이 조금은 다른 모습들이었다.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서 약간의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사리아(Sarria)로 향했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사리아에 도착했지만 적당한 알베르게도 찾지 못하겠고 여기에서 머무르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오늘 일정을 끝내기에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오늘은 사리아에서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계획을 수정하고 갈 수 있는 데 까지 조금 더 가는 게 나을 듯 했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음식을 먹기 위해 슈퍼를 찾고 있던 중 스페인 커플을 다시 만났다. 사실 그동안 많은 얘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들은 나와 하루 이동거리가 비슷해서 가끔씩 만나면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지만 며칠보지 못해서인지(하루 이동하는 거리가 같더라도 숙소가 다르고 아침에 출발하는 시간이 다르면 며칠 동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오늘따라 서로가 너무 반가워서 같이 사진도 찍으며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 될 것 같아 다시 서둘러 홀로 길을 나섰다.

▲ 크렌덴샬(순례자여권)과 완주증명서 ⓒ안병식

1km쯤 갔을까 뭔가 허전한 이 느낌은. 손에 들고 있던 물병 그리고 순례자 여권이라 할 수 있는 크레덴시알(Credencial)과 거리와 도시, 숙소 등의 정보가 적힌 지도가 들어 있는 비닐 지퍼 팩을 레스토랑에 놔두고 길을 나선 것이었다. 급하게 달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자기 남자친구가 내게 줄려고 달려갔다는 데 마을에서 길을 엇갈리면서 서로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조금 기다리다 다시 길을 나선 후에야 만날 수가 있었다, 혼자 뛰어서 가버리니까 따라갈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어쨌든 너무 기쁘고 고마웠다.

매일 손에 쥐고 다니던 물병과 크레덴시알 그리고 지도는 까미노 산티아고로 가는 동안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였는데 잠깐의 실수로 잃어버렸다면 산티아고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지도야 없어도 조개문양과 화살표만 따라가다 보면 되고 물병도 새로 구입해서 갈 수 있지만 그동안의 흔적이 담긴 크레덴시알은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사리아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체력소모도 많았고 등에 땀띠 때문에 많이 불편했다. 이후 계속 걸었는데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았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날씨도 덥고 모두들 일찍 알베르게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가끔씩 한 두 사람씩 만나기는 했지만 혼자 사람도 거의 없는 시골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날씨는 매우 더웠지만 그나마 나무 숲길이 많아 다행이었다. 까미노 산티아고 까지 100, 99, 98, 97...km 거리표시가 되어 있는 비석을 바라보며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을 오후 내내 걸어 5시가 넘은 시간 포르토마린(Portomarin)에 도착했다.

▲ 사리아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들 ⓒ안병식

▲ 포르토마린(Portomarin)를 향해 걸어 가면서 만난 풍경들 ⓒ안병식

포르토마린은 강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강물이 흐르고 있고 다리가 길게 놓여져 있었다. 다리 위로 놓여진 계단을 오르고 오른쪽으로 얼마간을 걸으니 알베르게가 있었다. 오후 5시간 넘은 시간이라 사실 숙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저 샤워만 시켜준다면 침낭하나 깔고 거리에서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알베르게에 들어섰는데 운이 좋게도 알베르게에는 여분의 침대가 남아있었다.

인연이랄까 더 놀란 것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스페인의 키르케와 그의 친구들이 있는 바로 옆자리에 침대를 배정 받은 것이었다. 그들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금방 샤워를 마친 걸로 봐서는 이 친구들도 도착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샤워 도구를 챙기고 샤워실로 갔지만 온도 조절이 되지 않아 뜨거운 물만 나온다. 오늘은 정말 찬물로 샤워하고 싶은 날인데. 저녁을 먹고 난 후 키르케가 밖에 나가서 같이 맥주를 마시자고 했지만 몸이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정말 많이 걸은 하루였다.

▲ 포르토마린(Portomarin) ⓒ안병식

▲ 포르토마린(Portomarin) 시내를 벗어나 만난 풍경들 ⓒ안병식

8/16  39.6km  포르토마린(Portomarin)-->멜리데(Melide)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아마도 내일이면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날이 밝고 길을 나섰다. 오늘 따라 유난히 붉게 보이는 태양이 등 뒤로 떠오르고 있었다. 얼마를 달린 후 어느 바(Bar)에 들려 아침을 먹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지나온 시간들을 잠시 생각해봤다.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리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고 나는 달리다 보니 잠시 인사를 건네고 스쳐 지나간 경우가 대부분이라 각자의 사연들과 걷는 동기 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다. 포르토 마린을 지나 산티아고 성당이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레온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고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한 사람들도 있는 듯했다. 그동안 달리면서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사람들 눈에는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리는 동안 난 어느새 길 위에서 유명한 런러가 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먼저 간 사람들에 의해서 입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처음이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나를 반기며 사진도 같이 찍자고하고 왜 달리냐며 질문도 던졌다. 쑥스러우면서도 참 신기했다. 난 그냥 달렸을 뿐인데 까미노 산티아고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유명해져 있었다.

▲ 멜리데(Melide) 시내 풍경 ⓒ안병식

▲ 해물요리로 유명한 빠에야(Paella)요리 ⓒ안병식

▲ 멜리데(Melide)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안병식

오후 1시가 되어서 멜리데(Melide)에 도착했다. 오늘 조금 늦어지더라도 산티아고 까지 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동안 여유를 가지고 쉬지도 못해서 오늘은 그냥 멜리데에 머무르기로 했다. 멜리데 시내에는 우리나라의 오일장처럼 시장(?)이 열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마지막 몇 개 남은 침대를 겨우 배정 받을 수 있었다. 빨래를 하고 샤워를 끝내고 나도 아직 3시도 안 되어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찾아온 여유였다.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빠에야(Paella)요리를 시켰다. 밥에다 새우와 해물, 야채 등을 넣어 볶은 밥은 한국 입맛에도 맞는 맛있는 음식이다. 거기에 맥주 한 잔을 비우고 나니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음식하나에 이렇게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시내를 돌고 돌아 알베르게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해는 높게 떠있다. 이제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도 들고 어느새 까미노 산티아고에 많이 익숙해져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달리고 오후에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날이 밝으면 길을 나서는 게 여기 생활에서의 전부였는데 너무 빨리 시간들이 지나간 느낌이다.

▲ 멜리데에서 몬테 델 고조(Monte del Gozo)를 향해 ⓒ안병식

▲ 몬테 델 고조(Monte del Gozo) ⓒ안병식

8/17  52.7km  멜리데(Melide)-->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8/18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피니스테레(Finisterre)

산티아고로 향하는 마지막 날. 지난 2주 동안 내가 여기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까미노 산티아고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 거리들과 재미있는 추억들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에 비해 난 참 너무 재미없게 앞만 보며 까미노 산티아고를 달린 것만 같다. 사람들은 이제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해 길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제 그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멜리데를 떠나 작은 숲길을 지나고 아르수아(Arzua)를 거쳐 아르카 오 피노(Arca O Pino)에 도착했다. 시내에서는 표지판 보다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걷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데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려고 알베르게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따라가다 2km정도 길을 잃고 헤맸다. 그래도 15, 14, 13...km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발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아르카 오 피노를 지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독일 친구 얀을 다시 만났다. 몬텔 델 고조에서 여자친구와 같이 만나서 하루를 머무르고 산티아고 성당까지 같이 갈 거란다. 길의 마지막에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부러웠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만났지만 생각해보면 그저 순간 스쳐지나간 인연일 뿐 여전히 난 늘 혼자였고 그래서 가끔은 외롭기도 했다.  혼자라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외로움이 좋았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라도 해야겠다.

▲ 산티아고 시내 ⓒ안병식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주변 풍경 ⓒ안병식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안병식

몬테 델 고조(Monte del Gozo)에 도착해서 보니 멀리 산티아고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산티아고로 가는 마지막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웃음이 가득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찾아 길을 나섰을까? 길을 걸으며 무엇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는 오늘 만큼은 스스로에게 큰 기쁨이고 성취일 것이다. 몬테 델 고조에서 언덕을 내려오면 산티아고 시내로 접어든다. 해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오후 곱게 포장된 길을 따라 3km 정도를 더 걸으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에 도착할 수 있었다. 커다란 기쁨과 희열, 눈물은 없었지만 다치지 않고 큰 문제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까미노 산티아고는 스페인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길’이면서도 나를 찾아 나선 ‘순례의 길’이었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레(Finisterre)로 향했다. 이미 미리 예약된 일정 때문에 달리지 못하고 버스를 타는 게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푸른빛으로 물든 북대서양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이 곳 피니스테레에서 여행자들은 불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신발을 태우는 의식으로 여행을 마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상의 끝’에서 또 다른 새로움 꿈을 가지고 각자의 길로 향할 것이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산티아고로 향하고 있다.

▲ 피니스테레(Finisterre) ⓒ안병식

▲ 피니스테레(Finisterre)에서 다시 만난 스페인 친구들 ⓒ안병식

▲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Finisterre)에서 바라본 북대서양의 바다 ⓒ안병식

사람들은 왜 까미노 산티아고로 향하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까미노 산티아고는 어떤 의미의 길일까?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동기로 와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지만 산티아고 성당까지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걸으며 ’나를 찾아 떠나는 길‘, ’순례자의 길‘, '고행의 길‘ 이 된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느낀 ‘깨달음’의 감정들은 서로 다르겠지만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자그마한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까미노 산티아고에서의 추억들은 오래 전에 꿨던 꿈처럼 아련해져간다.

-그 동안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신 <제주의소리>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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