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이미 2003년에 제주도의 입장으로 정리된 사안

화순항 해군기지 설치 문제가 제주사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에 해군의 전략기동함대 건설계획이 타당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성, 평화의 섬 등 각각의 시각의 무게중심에 따라 이 논의가 다르게 펼쳐질 수도 있다고 보이지만, 올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로서는 ‘평화의 섬’을 기준으로 이 문제를 검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평화의 섬' 구상은 제주의 경제적 발전전략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지난 시기 평화의 섬과 관련된 논의가 어떻게 진행돼 왔고, 그 배경과 논의의 합리적 핵심은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주의 소리는 그동안 진행돼 온 평화의 섬 논의를 짚어보며 화순해군기지 문제해결의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최근 김태환 지사는 화순항 해군기지와 관련 도(道)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기 위해서 제주발전연구원에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과 평화의 섬과의 관계 등에 대한 분석작업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군기지 문제가 단순히 화순지역을 넘어 전체 제주도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해할만 한 조치라고도 생각되나, 이미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검토돼 왔으며 이미 도 차원에서도 입장이 정리된 사안(이에 대해서는 후술)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지금 시기에 다시 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대양해군론'에 기초한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올해 들어 새롭게 제기된 문제도 아니며, 오히려 지난 2002년의 계획보다 더욱 노골화되고 강화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이미 제주도는 '제주, 세계평화의 섬’을 지정 준비하면서부터 “군사기지는 않된다”는 입장을 저변에 깔고 있었다(단지 도민여론에 의해 해군기지를 반대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근거는 아래와 같다.

# 2003년, 제주도가 후원한 제주대 평화연구소 워크샵

지난 2003년 10월 10일 제주대학교 교수회관에서는 제주대 평화연구소가 주최하고 제주도가 후원하는 [“세계평화의 섬” 지정과 발전방안에 관한 워크샵]이 열렸다.

이 위크샵에서 고성준․장원석․양길현․고성빈 제주대 교수는 공동으로 ‘세계평화의 섬 지정 및 향후 추진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주목할 것은 이 주제발표문이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어야 하는 논리적 근거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향후계획 및 실천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발표내용의 대부분은 현재 제주도가 운용하고 있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 홈페이지(www.peace.jeju.kr)에 요약돼 실려 있는 등, 사실상 제주도 차원의 평화의 섬 지정논리로 수용되고 있다. 즉, ‘평화의 섬, 제주’에 대한 제주도의 입장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 세계평화의섬, 제주 홈페이지.ⓒ제주의소리
# “화순항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평화지역을 열망하는 도민적 의지 사례”

그렇다면 이 발표문에는 어떠한 내용이 서술돼 있는가? 매우 방대한 분량이어서 전체 내용을 요약할 수는 없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화순항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된 내용만 함께 보고자 한다.

이 글의 도입 부분에서 글쓴이는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의 하나로 ‘평화공동체의 역사’를 들며,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삼별초-도민 연대의 항몽자주투쟁, 1901년 이재수 항쟁, 1931년 잠녀항쟁, 그리고 1948년 제주 4․3사건 등의 역사적 실례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2002년 화순항 해군기지 반대운동 역시 제주지역이 역사적으로 자신을 비군사화의 평화지역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도민적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 라고 볼 수 있다.”

3년 전인 2002년의 화순항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4.3항쟁과 비교하며, 비군사화의 평화지역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도민운동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 91년 최초의 논의, 평화의 섬 개념, ‘제주도의 비무장화’에서 출발

이어 글쓴이는 제주에서 평화의 섬 논의가 진행돼 온 연혁을 추적하면서,

“ ‘91년 6월 30일 제주국제협의회 창립기념 학술회의에서 ‘동북아 질서와 제주도: 평화의 섬 구상을 위한 제언’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이어 제주국제협의회는 ‘평화와 번영의 제주’라는 대주제 하에 91년 10월 15일부터 2일간 ‘평화의 섬 제주’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했는데"

“여기에서 평화의 섬 개념을, 첫째 제주도의 비무장화 , 둘째 평화와 질서를 위한 중심지화, 셋째 갈등과 논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지역센터화와 평화에 관한 연구와 훈련의 장 넷째 평화의 섬을 행동화하는 데 능동적이고 지역적인 노력을 전개하는 제주도민, 다섯째 평화의 개념과 일치하는 균형되고 분권화되며 자생적인 발전을 위한 장소로 개념화하였다”고 밝힘으로써, 제주 평화의 섬 개념이 제주도의 ‘비무장화’ 논리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이 글은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는 의의를 거론하며, “제주도는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두 세력간의 각축장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두 세력의 완충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중립의 화해지대’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한반도가 20세기 냉전체제로 편입되어 나가는 소용돌이에서 제주 사람들은 4ㆍ3의 비극을 겪었지만, 21세기 한반도가 탈냉전과 세계화로 이행해 나가는 길목에서 제주 사람들은 인권과 평화공영에 대한 갈망을 세계에 알리고 실천해 나가자는 데서 세계평화의 섬은 의의를 갖는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이 글은 “평화의 섬 제주는, DMZ 평화지대화와 평택 국제평화도시는 전쟁 억지와 안보를 축으로 하는 국제평화도시로 나가는 데 반해, 국제관광 및 국제교류협력 등 국제자유도시와 연결되면서 동북아 평화회의라든가 남북평화회담 나아가 인권-복지-환경 등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과 프로그램의 실천에 초점을 둔다”면서 전쟁억지와 안보력를 축으로 하는 타지역의 평화도시 구상과는 분명히 대립선을 긋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제주 평화의 섬은 비핵군사화를 위한 전진기지의 성격

이어 주목할 것은 ‘탈냉전에 대응한 비핵지대 및 평화회담 개최지 역할’을 거론하며, “한반도는 냉전과 탈냉전이 교차하는 지역으로서 여전히 평화와 비핵군사화를 위한 전진기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 여기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항상 전장화(戰場化) 위험성을 갖고 있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여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담보해 나가는 ‘시작의 반’이 요청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제주 평화의 섬이 비핵군사화를 위한 전진기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참고’ 글을 통하여 그 당위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참고] : 제주도의 전장화 가능성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제주상륙작전에 대비한 일본 대본영의 ‘결(決)7호작전계획’이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일본은 1945년 4월 미군이 오끼나와를 점령한 후 11월경 제주를 공략하리라 예상하고 7만 5천명의 병력을 집결하고 이에 대항한다는 결(決) 7호 작전 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늦어져 미군의 제주도 상륙작전이 예정대로 시행되었더라면 제주는 초토화되고 당시 27만 명의 제주인의 인명 피해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글쓴이는 아래와 같이 강조하고 있다. 매우 중요한 논거를 담고 있으므로 눈여겨 보자.

# “제주도는 동북아 군사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갈 수 있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은 무엇보다도 제주지역 주변에서의 군사 전장화 가능성을 배제하는 예방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제주도민이 일심 단결하여 세계평화의 섬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제주도는 동북아 군사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갈 수 있다."

"특히 21세기 북한 핵위기, 한-중-일 3국의 패권적 군비경쟁 가능성, 미-일신안보지침 및 MD체제의 구축가능성과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 대만해협의 유사사태 등이 제주도를 둘러싼 주변 지역에서의 군사경쟁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통한 평화지대 역할이 요청된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통해 제주도를 비핵지대화 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지역에 있어서 평화에 관한 국제회의, 연구, 교육훈련의 중심지로 만들어 나가는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야말로 전문가다운 분석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논리적 근거를 배경으로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고, 이에 따른 후속조치를 하나둘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시점에서 해군화순기지 문제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 양립할 수 없어

이 논거에 따르면 결코 해군기지는 제주에 건설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는 매우 위험한 계획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민이 일심 단결하여 세계평화의 섬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제주도는 동북아 군사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일시적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해군기지를 선택할 것인지, 경제성을 포함한 장기적 제주발전 비전으로 ‘평화의 섬, 제주’를 선택할 것인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여있는 셈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시점에서 특별히 분석의 기준이 달라질 수 없는 문제다. 이미 이 논문이 작성되기 전에 화순항 해군기지 문제가 제기됐었고, 최근 해군이 발표한 계획도 당시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시 MD와 관련한 의혹으로 해군이 부인했던 이지스함이나 미항모의 입항 등을 당당히 공개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런 점에서, 화순해군기지 문제는 누구에게 의뢰하기 전에, 제주의 미래를 좌우할 매우 중차대한 사안으로 정책결정자의 판단과 결단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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