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제주어 구술 자료 총서 2권 발간
생생한 제주어로 묘사된 제주 중산간 농경문화

권상수 할아버지는 군대생활을 제외한 전 생애를 용강(제주시)에서 보냈다. 1933년생인 그는 용강에서 어린시절을 났고 제주4·3을 겪었으며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권 할아버지는 농기구라면 누구보다 할 말이 많다. 밭을 가는 도구인 쟁기만 하더라도 양중머리(양지머리), 벳코(볏코), 벳칼(볏칼), 벳바드렝이(볏받침), 돌벵이뿔(당팽이뿔 모양의 막대) 등 부위별로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다.

그는 맨발로 장갑도 없이 김을 매기도 했다. 트렉터며 경운기 등 농기계가 발달한 요즘 세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리라.

권 할아버지의 생애가 구술사로 펼쳐진다.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원장 강영봉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제주어 구술자료 총서 두 번째 편으로 제주시 용강동 권상수 할아버지의 생애 구술 ‘각신 이끄곡 서방은 갈곡’(채록·전사 김미진)을 펴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제주인들의 살아있는 ‘제주어’를 기록하는 데 의의가 있지만 이를 넘어 사회적으로 구성된 기억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물이기도 하다.

권 할아버지의 구술에서도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기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제주4·3의 광풍 속에서 그는 누님과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숨어서 살다 살아나서 이제 어두워지니까 군인들 다 만세를 부르면서 가버리니까 나가보니 사람 죽은 게 널려 있었지. 그날 사람 우리 동네 잡혀가고 죽은 사람만 해서 아흔 몇 명이 죽었어.”라고 증언했다.

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 제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먹을 게 많지 않던 시절, 돼지를 3년간 정성들여 길러도 100근을 넘어가지 않았다거나 칡 덩굴로 꿩을 잡았던 ‘꿩코’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책은 9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뜻은 잇고 엇고라게, ‘상수’ 렌 지와주난’에는 4남3녀 중 4남으로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 학교에 다니던 일 4·3을 겪은 일이 들어있다. 2장 ‘그전에는 식이여 고넹이여 엇엇어게’에서는 군대 제대후 아내와 결혼해 자식들을 낳고 기른 이야기를 펼쳐놓다. 3장은 장례와 제례 4장은 밭 갈이와 씨뿌리기 5장은 김매기와 곡식장만 6장은 가축과 곤충 7창은 의생활과 식생활 8장은 집짓기 9장은 질병과 세시풍속으로 구성됐다.

책의 상단에는 구술내용이 제주어로 표기돼 있고 하단에는 표준어 대역이 실려 있어 소리내어 읽는 재미가 있다.

김미진 연구원은 “권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재치와 해학을 제주어로 만날 수 있다. 권상수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참 행운이었다”며 “그의 삶을 정리하면서 어느새 그의 삶이 내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은 2008년 ‘제주시 이호마을 고순여 할머니의 생애 구술-나, 육십육년 물질 허멍 이제도록 살안’ 제주어 구술자료 총서 1권을 펴낸 바 있다. 비매품. 문의=064-725-4410.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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