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과수원에서 일하다 떠오른 어릴적 기억

어제(17일)는 초여름 같이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렸던 이곳 제주의 농촌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여느 해보다 조금 늦게 찾아 오긴 했습니다.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로 이곳 제주의 농촌도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감귤 과수원에서 '가지 전정'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품종 개량을 위한 '접붙이기', '삼나무 가지치기' 등 할 일이 많아 집니다.

어제는 '감귤나무 접붙이기'를 했습니다. 저희 과수원은 감귤이 조금 늦게 익는 품종으로 돼 있어서, 어머니는 항상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빨리 익는 감귤의 값이 좋기 때문에(작년에는 그 반대였죠), 주위의 분들이 일찍 감귤을 판매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는 더욱 안타까워 하시곤 했습니다.

▲ ⓒ김희철
그래서 이번에 전문가(?)이신 옆집 아저씨의 손을 빌려 '감귤나무 접붙이기'를 했습니다. 같이 일하시는 내내 두분의 대화가 정겹습니다. 옛날, 처음 감귤 과수원 농사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와 철없는 아들 얘기 등 그 대화를 듣고 일하는 나는 두분의 대화 내용에 따라 서글퍼지다가 웃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특히, 그 아저씨가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할때, 아저씨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는 힘들었던 아저씨의 생활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연은 아저씨의 아들이 결혼 전 사기를 당해 몇 억을 날리면서 그 아저씨의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이제 그 부채의 절반을 갚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숨을 돌리려고 하니까 손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서 일하기가 쉽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하십니다.

저의 어머니도 맞장구를 치십니다.

"이제 일하는 것도 싫지 않고, 일하는 게 재미있어 지는데,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일을 못하겠네."

저도 어릴 적, 어머니와 과수원에서 일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힘들게 일하셔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그래도 남자라고 제가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던 일 등….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일하기가 싫었는지 모릅니다. 조금 일하다가 어머니에게, 계속 졸라댑니다. "언제 집에 가요?"라고 거듭되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먼저 가라고 늘 얘기하셨습니다.

▲ 과수원 전경.ⓒ김희철
오늘은 어머니가 먼저 집에 가셨습니다. 이제 나이 드신 어머니는 하루 종일 일하시는 게 힘드신가 봅니다. 그 대신 제가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후 혼자 일하면서 어릴 적 홀로 일하셨을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는 헛되이 드는 게 아닌가 봅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항상 자식이고,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나 봅니다.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서 한마디 하십니다.

"이제 너도 철 들었구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나이도 어린데, 그래도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아들에게 일을 맡기고, 먼저 집에 가시는 거라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올해 감귤 수확철의 모습이 미리 떠오릅니다. 온 집안 식구가 수확철에는 과수원에 가게 되는데, 아들과 딸이 나에게 "언제 집에 가요?"라고 계속 조를 것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 김희철 님은 서귀포시 하원동에 살고 있습니다. 김희철님의 직업은 두가지. 하나는 회사원, 또 다른 하나는 농부입니다. 두가지 일을 하기가 벅차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사는게 좋고, 할 일이 많다는게 좋다고 느끼면서 산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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