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이 만난사람] 명예훼손 손배 승소 이끈 문성윤 변호사
12년째 4.3 변론, ‘불법계엄령-희생자선정’ 기념비적 판결 이끌어

 

▲ 문성윤 변호사ⓒ제주의소리
그는 지난주 내내 잠을 못 잤다고 했다. 4.3 62주년 합동위령제 하루 전날 잡혔던 선고 기일이 갑자기 일주일 뒤로 밀려지면서 그의 입술은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가족들이 걱정할 정도로 잠을 못 잤다. 변호사 일을 한지 올해로 20년이 됐지만 이번 사건처럼 그에게 중압감을 준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지난 8일 오후1시50분 제주지법 301호 법정. 제2민사부 재판장이 제주4.3유족회 김두연 전 회장 등 100명이 이선교 목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지난 1년9개월 동안 그를 짓눌러 왔던 ‘가위’에서 비로소 풀려난 느낌이었다. 

제주4.3 재판하면 문성윤 변호사가 떠오른다. 아니 그 밖에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 이인수씨가 1948~1949년 초토화작전의 근거가 된 군사재판-계염령이 불법이었다고 보도한 제민일보를 상대로 3억원의 배상을 청구한 재판을 시작으로 12년째 4.3관련 재판을 맞아왔다.
 
제주4.3 역사학자들과 4.3유족들은 문 변호사가 승소를 이끈 1998년 제민일보 사건과 아직 확정판결이 나진 않았지만 1심에서 승소한 이번 사건은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평한다.   
 
1998년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가 제민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1948년 4.3 발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3.1사건에서부터 1954년 한라산이 금족령이 해제된 7년7개월 사이에서 가장 큰 희생이 일어났던 1949년 11월~12월, 1949년 1~2월 사이에 계엄령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학살이 불법이었음을 밝혀내 역사적 재판이었다. 이 재판 결과가 있었기에 4.3특별법 제정이 가능했고,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국가를 대신해 제주도민에게 사과까지 했다.
 
1998년 재판이 무고한 양민학살을 법적으로 입증한 것이었다면, 이반 재판은 4.3특별법에 의해 결정된 4.3희생자 심사와 선정이 정당했음을 법적으로 인정한 완결편을 이끌어 낸 이가 문 변호사다.
 

▲ 문성윤 변호사ⓒ제주의소리
그는 이른바 제주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로 불린다. 돈은 안되고 역사적 부담만 잔뜩 가질 수 밖에 없는 4.3재판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지만 문 변호사는 묵묵히 맡아 ‘변론’으로만 이야기 한다. 지난 3월 5일 마지막 변론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 역시 4.3과 관련이 있음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혹 자신의 가족사가 4.3에 관련이 있다는 그 자체가 또 다른 선입견을 주지 않을까 하는 심정인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최종 변론에선 가족사를 꺼냈다. 자신의 부모조차 사법시험에 합격한 아들이 혹 4.3연좌제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몸 져 누웠었는데, 그 이전에 유족들이 느꼈을 ‘폭도-연좌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재판부에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제주의소리>가 문성윤 변호사를 만난 건 1심 선고가 나온 다음날인 9일이었다. 문 변호사는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문 변호사는 “제주4.3사건 관련 재판 변호사 선임이 이번이 마지막 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을 끝으로 4,.3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음은 문성윤 변호사와 인터뷰 내용이다.   

- 이선교 목사에 대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심에서 원고인 4.3유족들이 승소했다. 1년9개월 동안 끌어온 재판이다. 항소와 상고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4.3 62주년을 맞아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담당 변호사로서 먼저 소감을 말해달라.
“개인적으로 부담이 많은 소송이었다. 제주도민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확정 판결이 아니라 1심 판결이여서 조심스럽지만 원고 승소판결로 심리적 부담을 덜은 것 같다. 원고와 4.3유족들에게도 나름대로 조그마한 도움을 준 것 같아서 기쁜 마음이다.

- 격려전화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주위에서 격려와 축하도 많이 해 주셨다. 하지만 법조인으로서 부담스럽다.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언론사 인터뷰도 부담스럽다.”

- 원래 1심 선고가 2일이었는데 하루 전에 선고기일이 일주일 연기가 됐다. 취재하는 기자도 불안했는데, 변호사는 더욱 초조했을 것 같은데.
“재판부가 기록검토를 더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선고 전날 밤에는 잠을 한 숨도 못 잘 정도로 부담이 컸다.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이었다면 쟁점이 간단하지만, 이 사건은 피고가 주장하는 항변으로 여러 가지 쟁점 많았다. 결론을 속단할 수 없었다. 하루가 정말 길구나라고 느겼다.”

- 심적 부담감을 토로하는 데 일반 사건과 많이 달랐나?
“공식적으로 선임료를 받고 한 사건보다 오히려 부담가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른 4.3 관련 소송에 미치는 파장 등 여러 가지 관계를 고려하면 개인적 입장으로는 상당히 중압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4.3 재판 자체가 60년 전의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복잡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사건은 유독 쟁점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나왔던 쟁점들을 정리해 보자.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피고(이선교 목사)측은 ‘공연성’이 없다는 걸 강조했다. (이선교 목사 등이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에 제주4.3희생자 1만3548명을 '폭도'로 매도하고, 4.3평화공원을 '폭도공원'으로 왜곡시킨) 진정서가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원고 주장을 기각했다. 두 번째는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제주도에 사는 사람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경우 제주도민 어느 개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을)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했을 때 특정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대법 판례도 상당수 있다. 반면 대전지역 검사와 방송국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선 ‘대전지역 검사’가 몇 명이 안되기 때문에 특정성이 있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이 논리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가 큰 쟁점이었다. (이선교 목사가 폭도라고 주장한) 원고들은 제주4.3특별법에 의해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들이다. 또 피고(이선교 목사는) 4.3 희생자 1만3564명 이 폭도라고 명확하게 발언했기 때문에 희생자들을 특정한 것이다. 재판부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공적인 관심사항에 대해 대법원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면서까지 발언하는 것은 위법성 조각이 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 이번 건도 재판부가 이 부분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 문성윤 변호사ⓒ제주의소리
- 지난 3월5일 마지막 변론에서 문 변호사께서 이선교 목사의 잘못된 역사의식에 대해 따끔하게 질책했다. 어떤 감정이었나. 

-  “피고(이선교 목사)는 단순하고 즉흥적이며, 우발적으로 발언한 게 아니다. 오랫동안 4.3 문제에 시각을 갖고 있고 표출해왔다. 피고는 명예훼손 발언을 전국 일간지에 광고했을 뿐만 아니라 진정서를 각급기관 보냈다. 4.3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임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4.3 희생자를 ‘폭도’, 평화공원을 ‘폭도공원’ 이라고 발언 해서 소송이 시작됐다. 피고가 왜 제주4.3에 부정적이며,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됐는지는 개인사여서 잘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4.3에 대한 학문적, 역사적, 객관적 시각이 떨어져 있다. 대법원에서 4.3에 대한 양민학살이 사실이라는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진압과정에서 불가피한 사정’이라는 식으로 학살 외면하고 비켜가려 애썼다. 피고는 고의성을 갖고 2만~3만명의 양민학살로 죽어간 사정을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사실을 잘못 해석하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질책하고자 했다.”

- 재판 과정에서 양측의 변론도 아주 첨예했지만, 재판을 어디에서 할 것인지 부터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재판도 그랬고, 1999년 이승만 대통령 양자가 1948년~1949년 계엄령은 불법이었다고 보도한 제민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때도 어디에서 재판을 할 것인지 부터 치열한 다움이 있었다. 1999년에는 서울에서 제기한 소송을 이송신청을 해서 제주로 갖고 왔고, 또 이번 사건은 피고가 이송신청을 해서 서울로 재판을 끌고 가려했던 것을 막았다. 초반부터 치열하게 타툰 셈이다. 다행히 제주에서 재판하게 돼서 여러 가지로 자료 확보나 변론기일에 편했던 사정이 있었다.”

- 4.3사건을 변호하게 벌써 12년이 됐다. 4.3이란 게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특히 한 변호사가 맡기에는 쉽지 않은 사건인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
“사실 변호사를 개업한 후 4.3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재판을 하다보면 재일교포 문제나 토지사건의 경우 4.3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집이 불타버렸는데 계약서가 없는 경우나 부모.형제를 잃었던 경우에는 꼭 4.3 얘기가 들어간다. 왜 재판에서 4.3이 회자되고 문제가 많은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1998년 제민일보 고문 변호사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4.3 관련 재판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됐다.”

- 이번 재판을 하면서 최후 변론에서 문 변호사 외조부가 4.3 희생자였고, 그 때문에 문 변호사 집안도 ‘연좌제’ 불안에 시달렸었다는 개인사도 나왔다.
“법정에서 개인적 가족사를 애기하는 게 적절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재판부가 제주에서 생활하는 분이 아니기 4.3에 대해 제주도민들이 느끼는 정서를 알려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개인사를 꺼냈다. 제가 198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 했는데 마지막 면접을 앞두고 4.3문제로 혹 제가 (연좌제)피해를 받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어머니나 몸져 누워야 할 정도였다. (30여전이 흐른 그 당시에도)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할 정도로 했었는데, 그 전에는 4.3유족들이 (연좌제나 폭도라는 누명 때문에) 얼마만큼 고통을 겪었을지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를 알려주고 싶었다.”

- 변론을 하자면 그 사건에 대해 공부를 하는 건 당연한데, 문 변호사는 이제 4.3에 대해선 거의 전문가가 됐다. 4.3유족들이나 관련 학자들도 문 변호사의 변론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자료도 참고를 많이 하고 있다. 제가 바라는 건 4.3이 잊혀진 역사가 되지 않도록 사실을 정리해서 우리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우리 의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직접 겪은 분들은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문서나 자료로서 후대들이 가슴에 남게 해야 한다. 연구소나 유족회, 4.3단체에서 그동안 자료를 정리했지만, 더욱 잘 정리해서 후대들에게 넘겨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역사교육 통해 제주4.3의 비극과 아픔을 알리고 교육시키는 게 개인적 바램이다.”

- 문성윤 변호사 하면 이른바 제주에서는 ‘잘나가는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 문 변호사가 4.3사건을 12년째 맡아오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모든 4.3재판 변호를 무료로 하고 잇다. 또 무료변론 뿐만 아니라 자료를 준비할 때는 사비를 털어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3 재판 때문에 4.3피해자 유족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그 분들을 많이 만난다. 정말로 고통 받은 삶을 살아왔고, 현재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4.3유족회 고문변호사, 4.3연구소 상임이사 등을 하면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희생자나 유족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선임료 무료뿐이었다.”

▲ 문성윤 변호사ⓒ제주의소리
- 10여년 동안 4.3과 관련된 재판을 맡아 왔는데 기억 남는 게 있나?
“전혀 모르시는 분인데 4.3 재판을 방청했었다면서 오일장에서 반갑게 인사를 할 때는 솔직히 기분도 좋고 고맙다. 반대로 일부 보수.극우단체나 사람들이 썩 유쾌하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좀 씁쓸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건을 다시 선임하는 일이 없도록 4.3을 폄하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이젠 그만했으면 하는 게 소망이다.”

- 1심에선 승소했지만 2심이 남아 있고, 또한 보수우익 집단에서 제기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도 남아 있다. 어떻게 정리될 때 것 같나.
“항소심 판결 여부에 따라 대법원까지 상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대법에서 종결되면 서울에서 제기한 헌법소원, 행정소송, 민사소송도 상당 부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제기된 소송들은 쟁점이 복잡하지 않다. 이번 사건이 정리되면 나머지 사건도 거의 정리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헌법소원은 도민들에게 미치는 파장이 크다. 특히 4.3특별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희생자 결정도 위헌이라는 그들의 제기가 받아들여질 경우 파장은 클 수 밖에 없다. 제주도민들은 헌법소원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주셨으면 한다.”

- 이선교 목사쪽에선 항소하겠다고 한다. 항소는 어디에서 열리게 되나.
“아마 광주고법 제주부에서 2심 재판을 할 것이다.”

- 이번 재판을 끝으로 다시는 4.3에 대한 재판이 없었으면 하는 게 바램이라고 했는데 이선교 목사를 비롯해 아직도 4.3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해달라.
“사실을 갖고 얘기해야 한다는 게 저의 오랜 지론이다. 객관적 사실도 알지 못하면서 주관적 평가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엉뚱한 결론일 가능성이 높다.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정확히 안 다음에 평가해야 한다. 일부 단체나 인사들이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해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4,3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부분을 외면한 채 진압과정에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는 왜곡된 부분부터 정리해야 한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일본.러시아.미국 등에서 조사했고, 수많은 증언을 청취해서 발간된 것이다. 어쨌든 진실을 알고 평가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