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대양해군의 전진기지' vs ‘동북아평화의 허브'

# 동북아균형자론은 ‘균형적 실용외교’

최근 노무현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이 보수진영으로부터 “한·미동맹을 깨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제주출신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지난 20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를 적극 해명해 관심을 끌고 있다.

문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은 변함없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국력의 강약’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구조적인 힘’이 중요하며 이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새질서 창출은 강대국이나 패권국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규범과 가치, 원칙, 규칙 등을 제안하고 주변국가들의 동의를 얻어내 새 질서 창출에 앞서갈 수 있으면 그것도 엄청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 위원장에 따르면 노대통령의 균형자론은 과거 패권을 지향했던 영국과 같은 전통적 균형자론과는 다르며, 현재 동북아지역에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지역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동북아의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균형적 실용외교’를 하겠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어 문위원장은 “그 궁극적 목표는 동북아의 공동체를 만들어 동북아의 영구적 평화와 번영을 담보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것은 “균형자 역할을 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종합 국력이 충분하다고 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 군사력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적 힘’

“영국식 균형자라면 우리의 국력은 거기에 못 미치지만, 주변국가로부터 존경받으면서 우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나왔을 때 주변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중견국가는 충분히 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경제력 10위국이고 군사력 4,5위정도 된다. 우스운 군사력이 아니다. 힘에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합친 행태적인 힘으로서의 국력 외에 ‘구조적인 힘’도 중요하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새로운 규범가치, 원칙, 규칙 등을 제안하고 주변국가들로부터 그에 대한 동의를 얻어 새 질서를 창출하는데 앞서갈 수 있으면 그것도 엄청난 힘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제일 초기에 시작한 것은 유럽서 제일 작은 베네룩스 3국이었다”

문 위원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의 국력이 만만치 않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 제일 작은 베네룩스 3국이 유럽연합의 시발이 됐다는 점은, 제주도야 말로 노무현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의 전진기지이자 적지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3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소개된 바 있는 연세대 국제대학원의 박명림 교수의 “평화·민주주의·인권·화해의 발신지로서 허브도시를 만들자”는 제안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평화·민주주의·인권·화해의 허브도시로서 제주

박교수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동아시아 내 다자안보기구의 출범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한국만이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평화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주도로 동아시아 국제기구를 만들자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물론 박교수는 여기서 서울을 그 대상지로 거론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적지로 바로 제주도를 지목한다.

올해 정부에 의해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으며, 지정되기 수년 전부터 이미 제주도가 바로 동북아시아에서의 핵확산, 영토문제를 둘러싼 분쟁, 한반도의 분쟁가능성, 그리고 일본과 중국간의 패권경쟁 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어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협의할 ‘동북아다자간안보협의체’ 건설 개최의 적지로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는 삼무정신의 전통과 제주4·3에 대한 해결노력, 91년 이후 개최된 네 차례 정상회담과 다수의 외국정상들이 방문했던 것으로 그 당위성은 더욱 높아진다.

즉 제주도를 평화논의의 중심지로 육성하여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현에 기여한다는 목표는, 바로 노대통령이 천명한 동북아균형자론의 ‘제일의 실천지역’이자 ‘전진기지’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사족이지만 참여정부의 제주발전 방향에 대한 정책기조는 ‘국제자유도시’가 아니며 ‘평화의 섬’ 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상을 뿌리째 뒤흔드는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 바로 화순항 해군전략기지 건설 계획이 그것이다.

해군기지 찬성론자들은 “평화를 위해서도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의 양립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해군기지 건설하며 '군축회의' 유치한다고?

이 주장은 동북아균형자론을 비판하는 보수세력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앞서 문정인위원장의 얘기처럼 동북아의 균형이나 평화를 위해서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가치에 근거한 구조적인 힘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탈냉전시대의 안보는 더 이상 군사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되며, 이제 안보는 ‘포괄안보’, ‘협력안보’, ‘공동안보’라는 차원에서 재정립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일 발족한 ‘제주세계평화의 섬 범도민실천협의회’ 창립회의 자료에 따르면,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의 하나로 ‘UN군축회의의 개최 정례화’를 통한 평화교류의 확대를 들고 있다.

동북아균형자임을 자임하고 나서는 한국이 ‘군축’ 등의 조치는 커녕 기지건설 등 군력증강에 나선다고 할 때 어떻게 주변국을 설득하고 균형자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전략기지를 설치하면서 어떻게 군축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나설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묻는다.

제주는 ‘동북아균형자의 허브’가 될 것인가, 이른바 ‘대양해군의 전진기지’가 될 것인가?

이는 단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아니 한반도 전체 민족의 명운과도 관련된 중차대한 일이다.

인구가 18만에 불과한 '제네바'가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상징도시이자 세계 주요 국제기구 본부 및 평화조약 체결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제주 또한 동북아의 제네바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법도 없다.

이런 점에서 화순 해군기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소탐대실’의 우를 저지르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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