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한-중 공군·해군기지 협정’ 회담…본토 중공군 공격위해 기지 제공 요구

▲ 무쵸 대사가 한중 공군 해군기지 협정과 관련해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해군의 화순항 해군기지 추진계획이 도민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가운데 1949년 중국내전 말기 국민당을 이끌던 장개석 총통이 중공군을 공격하기 위해 한국 측에 제주도의 공군·해군기지를 제공해 주도록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차 대전 말기 일본이 본토사수를 위한 대미(對美) 결전 최후의 보루로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고 6만여명의 대군을 주둔시켜 2차 대전이 몇 달만 더 끌었더라도 제주도가 미·일의 격전 속에 불바다가 될 뻔했던 상황에 직면했던데 이어, 중국 내전에까지 휘말릴 뻔 했다는 것으로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제주도를 군사적 전략기지로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장을 역임한 김한욱 제주도 행정부지사는 21일 열린 제주언론인클럽 학술세미나에서 최근 미 정부에 의해 해제된 ‘1급 비밀문서(국무성 외교관계문서, Foreign Relation of the United States, 1949 Ⅶ)’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1949년 8월 진해에서 열린 이승만-장개석 회담에 근거를 둔 ‘한-중 공군, 해군기지 협정’과 관련한 것으로 그해 9월 19일 주한 미대사 무쵸가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이다.

무쵸 대사는 “중국 외무부 차관이자 상해 시장이었던 중국관리 우(K.C.WU) 박사는 진해 회담 진행 도중 이범석 국무총리, 임병직 외무부 장관, 손원일 해군대장과 회담을 갖고 중국의 산둥반도와 룽하이 철도 종점을 공격할 3개의 전투 폭격기 비행단을 주둔시키도록 한국이 한국 남해안에서 약 50마일 떨어져 있는 제주도의 공군기지 설비를 중국에 제공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고했다.

무쵸 대사는 이어 “중국측은 한국측에 제주도에 해군의 방위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한국 해군의 능력에 관해 문의했다”고 보고해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중공군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기지로 제주도를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김한욱 제주도 행정부지사
이 보고서는 “한국 외무부장관은 ‘중국 공산주의자의 보복에 맞서 한국 육군을 엄호할 수 있는 적당한 공군력이 없이 한국이 중국 내전 속으로 휘말릴 수 없다’고 우 박사에게 말했다”면서 “회담 이후에 외무부장관은 ‘제시된 목적을 위해 제주도에 공군기지를 할당하는 것은 한국을 직접적으로 중국 내전에 연루시키는 것과 같다’고 즉각적인 견해를 밝힌 대통령에게 회담의 요지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중국측의 제안을 거절하면서도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경우 중국이 공군을 지원할 수 있을 지 문의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외무부장관은 아마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만일 한국 육군이 북한을 침공한다면 중국이 어떤 공군 지원을 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으며, 우 박사는 ’중국측이 1개 전투 폭격기 비행단을 지원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고 국무장관에게 보고했다.

무쵸 대사는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는 아마도 중국측의 제안이 중국에는 이익이 되지만 한국에는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이러한 견해에 동의했고 지금 이러한 신념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는 견해를 달았다.

또 “우 박사와 한국인들 사이의 회담은 어떠한 협정이나 양해도 없이 결렬되었으며, 이승만-장개석 회담 동안 한국 공군기지의 중국인에 의한 사용에 대한 주제가 취급되지 않았다는 점이 확실하다”는 점도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또 중국이 정보기관을 한국 본토와 제주도로 추정되는 도서(島嶼)에 설립할 것을 한국 국방부에 제안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한국 국방장관은 9월 16일 한 (미국) 대사관 관리와의 비공식 회담 도중 ‘최근 중국 군사 외교관이 공산주의 문제에 관하여 정보의 교환이 있을 것이며, 중국인들이 어떠한 정보기구를 한국의 육지와 어느 도서에 설립하는 것을 허락받아야 된다는 제안을 내 놓으며 한국 육군 G-2(정보국)에 접근했다’고 진술했다. 한국 국방부장관은 이러한 제안들은 그와 대통령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들은 이러한 문제에 관해 중국 군사 외교관과의 회담을 중지하라는 훈령을 하달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장관은 ‘어떠한 사건이 있더라도 중국인들이 한국땅에 그들의 정보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무쵸 대사의 보고서는 당시 한국 정부의 모든 것을 낱낱이 꿰뚫고 있던 미 대사관도 이승만-장개석의 ‘진해 회담’과 ‘한-중 공군,해군기지 협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파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거꾸로 한-중간 회담이 미국도 모르게 상당히 비밀리에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초 대사는 이 보고서 첫 문장에서 “8월 진해에서 열린 이승만-장개석 회담에 근거를 둔 '한-중 공군,해군기지협정’에 대한 끈덕지고도 계속적인 보고와 소문을 고려하여 이 주제에 관해 현재까지 대사관에서 가용한 정보를 국무부에 보고한다”면서 “대사관의 정보가 일목요연하지 못하고 근거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아래의 정보와 평가는 상당히 정확하다”고 말해 미국이 한중회담의 내용과 한국측의 입장을 파악하기 위해 모든 정보채널을 가동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 중국이 이용하려 했던 공군기지. 송악산 전경이 바라 보이는 가운데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가 보이고 있다. 이 비행장은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때 중국 본토를 폭격하기 위해 만들었다.
특히 무쵸 대사가 국무장관에서 보고서를 제출하던 9월19일 당일 아침 미국 대사관 관리(누구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음)가 이승만 대통령을 직접 만나 한-중 공군,해군지지 사용협상에 관해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한 사실도 이 보고서에는 담겨져 있다.

미 대사관 관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중국이 한국기지 사용을 위해 한국정부와 협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다”며 소문들의 정확성을 밝힐 것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이 “기다리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이오”라고 답변하자, 미 대사관 관리는 “그렇다면 저는 군사기지 사용 문제에 대해 중국측과 실제적으로 진전된 협상이 있었다고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중국 대사가 중국 요원(*무쵸 대사는 정보요원으로 생각된다고 밝혔음)에게 기지와 숙소 모두를 제공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국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부적절 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중국인의 한국)기지 사용에 대한 문제이든지, 한국에 중국 (정보)요원이 주둔 문제이든지 간에 어떠한 제안에도 응할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무쵸 대사는 보고서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미 대사관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제 공산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동조하고 장개석 총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갈망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인의 행동과 동기에 매우 의심을 가지고 있고, 중국 공산주의자들과 서로 살육하는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의향이 없으며, 아무리 한국과 가까운 우방일지라도 그런 세력에게 한국 기지를 양도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거부에 의해 제주도에 공군과 해군기지, 그리고 정보기관을 설립하려던 장개석 총통의 생각은 결국 좌절됐으나 당시 이 대통령이 ‘오판’을 했더라면 제주도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내전에 휘말리는 참상을 면치 못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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