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소통이다 1] 권정생의 를 추천한 송영섭 목사

송엽섭 목사 권정생 선생에 대해 "예수 근본의 길을 가신 은사"라고 했다. ⓒ 장태욱

송영섭 목사는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에 있는 '서림교회'의 담임목사다. 필자가 송 목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는 2007년 제주도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로 발표하면서다. 당시에 군사기지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 모임'을 만들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뜻으로 단식을 결의했는데, 송 목사는 22일 동안 단식을 이으며 평화를 향한 염원을 보여줬다.

단식을 철회한 이후에도 송 목사는 군사기지에 반대하는 모임에 늘 함께 했다. 그 연장선에서 2009년 제주지사 주민소환운동이 진행될 때 송 목사는 연단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올해 초에는 해군기지 기공 예정지에서 집회 도중에 경찰에 연행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전북에서 문규현 신부가 모든 투쟁에 앞장서는 것처럼 군사기지, 케이블카, 골프장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에서는 송 목사가 '거리의 성직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송영섭 목사(서림교회) 2007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단식을 이어갈 당시의 모습이다. ⓒ 장태욱

'거리의 성직자'가 추천한 책은 권정생의 <죽을 먹어도>

송 목사에게 좋은 책 한권을 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늘 책을 가까이 하는 하는 줄을 잘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그는 권정생 선생의 <죽을 먹어도>를 권했다. 책을 시중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며 구입할 수 있는 곳의 연락처도 알려주기도 했다.  

책을 보내온 곳은 '이오덕 학교'인데, 학교를 운영하는 이는 이오덕 선생의 장남인 이정우 선생이다. 필자가 전화로 책을 주문할 때 이정우 선생은 "송 목사와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착한 소포를 뜯어보고서야 주문하지도 않은 책 3권을 덤으로 보내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돌려보라"는 메모와 함께.

이오덕 학교에서 보내 준 책들 '죽을 먹어도' 한 권을 주문했는데 책은 4권이 왔다. 나머지 세 권은 주변 사람들과 돌려가며 읽으라는 메모와 함께. ⓒ 장태욱

책을 읽고 난 뒤 서림교회로 송 목사를 찾아갔다. 주변이 온통 마늘밭으로 둘러싸인 교회에 들어섰는데, 마당 한 모퉁이에 오래된 종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과시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송 목사가 필자를 매우 반갑게 맞았다.

"책을 소개해주라는 전화를 받고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이 책을 선물을 해보기는 여러 차례 였지만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전하기는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도 없고... 북한에서 만든 책인가?

책에 대한 송 목사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을 보면서 송 목사가 말을 이었다.

"전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북한에서 만든 책인가 했습니다. 출판사 이름이 '아리랑 나라'인데다, 디자인까지 아주 옛날식이잖아요. 이 책의 표지와 유통방식에도 권정생 선생의 정신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의 흔적이 깃들어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은 아동문학 분양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자신의 인생관을 담은 책을 출간하겠다고 하면 출판사들이 서로 책을 내겠다고 하겠지만 권정생 선생은 꼭 읽을 사람만 보면 된다는 마음에서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고, 꼭 필요한 사람만 읽도록 시장유통은 자제했다는 거다.

서림교회 송영섭 목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서림교회를 찾았다. ⓒ 장태욱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송 목사는 평소에 차분했던 모습과는 달리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기도 했다. 송 목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간추려봤다.

- <죽을 먹어도>를 읽다 보니 '송 목사님을 배후조종하는 것이 권정생이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활자를 읽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저자와 소통하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권정생 선생은 제게 제대로 꽂혔다고 봅니다. 그의 삶과 이야기가 하나님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그분의 인생을 잠시 설명해 주실까요?

"권 선생님은 젊은 시절 혼자 떠돌다가 경북 안동의 시골교회 방 한 칸을 얻어 종지기로 홀로 사셨습니다. 40년을 홀로 폐결핵을 앓았고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7년은 호스를 꽂은 상태에서 중환자의 몸으로 홀로 생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글에는 본인의 고통을 담은 내용이 아니라 북한이나 제3세계의 가난한 아이들, 가난한 이웃들은 물론이고 나뭇가지, 풀 한 포기에 대한 관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권 선생이 나무가 톱으로 잘리는 것을 보고 눈물로 통곡하며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과 관련한 책들 송영섭 목사는 권정생 선생과 관련된 책들을 보여주면서 그분의 삶에 경도된 이유를 설명했다. ⓒ 장태욱

시골 종지기가 40년 고난 가운데 꽃피운 근본적 사랑

송 목사는 본문 16쪽을 펼쳤다. "순정아, 영아야, 꽃 꺾으면 불쌍하다. 꽃나무도 숨 쉬고 사는데, 왜 불쌍하지 않니?"라고 적힌 대목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게 결핵으로 40년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자의 말이 될 수 있을까요? 고통의 한복판에 놓여 있으면서도 가지가 꺾이는 꽃의 아픔을 헤아리는 대목에서 전 예수와 기독교의 근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당시 누가 예수를 이해했습니까? 그의 최측근이었던 베드로조차도 예수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는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예수에 의해 전복을 당한 겁니다. 권정생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권 선생이 생전에는 그저 동화작가 정도로 이해했지만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자 많은 이들이 그의 삶에서 남이 가지 않는 근본의 길을 발견하는 겁니다."

- 좋은 작품을 많이 쓰셨기 때문에 인세 수입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수입은 대부분 북한과 제3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쓰셨고, 돌아가시면서도 계속 그렇게 해달라는 뜻을 남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는 글의 첫 대목이에요. 거기에 권 선생님의 뜻이 다 들어 있다고 봅니다."

송 목사가 지목하는 대목이다.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가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한다. 가까운 데는 걸어 다니고 먼 곳에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백만 원 들던 생활비는 50만 원으로 줄어든다. 텃밭을 가꾸고 묵혀 둔 논에 쌀농사 지어 자기 먹을 것은 자기 손으로 농사짓고, 그리고 남는 시간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뜨개질, 바느질 예쁘게 하면서 살면 된다. 그러면 실업자도 없어지고 거지도 없어진다. 한국사람 절반만이라도 그렇게 살면 자연 환경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고 쓰레기도 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선일 같은 착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죽지 않아도 된다. 구태여 이라크에 파병을 해 가면서 석유를 더 많이 얻어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본문 20쪽)

- 내용을 보면 권 선생이 산업화나 자본주의의 결과로 나타나는 탐욕을 경계하고, 그분만의 방법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권 선생이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저항'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항'이라고 하면 자본주의가 기본이 되고 권 선생이 이 기본명제에 반대한다는 의미인데요, 저는 권정생 선생이 원래 인간 혹은 예수가 가야 할 근본의 길을 걷는 거고 자본주의가 그 근본의 길을 가로막았다고 봅니다. 높은 장벽이 권 선생을 가로막아도 홀로 무소의 뿔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신 거죠."

권정생은 "위험하고 불온한 혁명가"

- 권 선생님은 평생 교회 종지기로 지내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비추어 보면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서는 것을 예수의 근본적인 삶으로 규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도 많겠는데요.

"성경을 두고 보면 교회는 자본주의와 대척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자본주의의 심장에 서 있잖아요. 게다가 복음의 유통구조도 철저하게 시장주의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쉬움이 많아요."

아들에게 선물한 책 송영섭 목사가 아들에게 권정생 선생의 소설 '몽실언니'를 선물하면서 남긴 편지다. ⓒ 장태욱

송 목사는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후 <경향신문>에 실린 사설 한 편을 보여줬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리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경향신문> 5월 23일자 이대근 칼럼' 중 일부

"제가 읽은 사설 중 권정생 선생을 가장 잘 이해하고 쓴 글로 보입니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습니다. 세상은 권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그걸 깨닫고 있는 겁니다."

- 권정생 선생을 직접 뵙기도 했나요.

"예,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뵈었는데요. 몸이 너무 아프셔서 30분밖에 말씀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당시 권 선생을 뵈러 안동을 다녀오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권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장례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그날이 마침 주일이었습니다. 교회 사역을 감당해야하는 몸이라 가보지 못했죠. "

서림교회 주보집 2007년 5월 20일자에 실린 설교의 제목은 '산상수훈을 따라 살다간 사람'이다. 권정생 선생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송 목사가 교인들에게 권 선생의 인생을 소개하는 것으로 설교 말씀을 채웠다고 한다.

'거리의 성직자'가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마음의 은사가 권정생이었다니, 정말로 권정생 선생은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다.  

덧붙이는 글 | 책을 구입한 곳: 이오덕 학교(043-857-0090)

(*이 기사는 오마뉴스 제휴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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