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소통이다 2] 추천한 홍성직 원장

홍성직 원장 외과 의원을 운영하면서 사회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에게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 장태욱

홍성직 원장은 제주시 삼도1동에서 외과 의원을 운영하면서도 사회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는 사회활동가다.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현), <제주환경운동연합> 대표(전), <초록생명마을> 대표(현), 인터넷 신문 <제주의소리> 이사(현) 등 그의 이력은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얼마 전까지는 제주의료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홍 원장이 바쁘게 생활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 얘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즉석에서 아주 흔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읽어보세요. 내용이 아주 기가 막혀요."

병원 복도 병원에 들어서자 책꽃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이 시선을 끌었다. ⓒ 장태욱

책을 구입해보니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 스님이 추천한 책'이라고 덧붙여졌다. 저자 '장 피에르 카르티에와 라셀 카르티에'가 '피에르 라비' 가족을 찾아가 그 가족의 철학과 삶의 양식을 기록한 내용이다.

옮긴이가 '길잡이 늑대'라고 되어있는 점도 독특했다. '길잡이 늑대'는 명상과 인간 의식의 진화를 추구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번역 모임이자 명상 모임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홍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복도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료시간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병원 복도 마치 미술관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 장태욱

진료실로 오가는 복도 벽에 붙어있는 미술 작품들과 천정에서 온화하게 내려 비치는 조명이 미술관을 연상하게 했다. 환자들을 문화적으로 배려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농민들도 문화적 삶 누릴 수 있다"

다음은 홍성직 원장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이 책이 가슴에 와 닿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피에르 라비비의 철학이 아주 좋아요. 농사를 3천 평 정도로 적정하게 하면서도 농민들이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자연농법을 통해 생태계도 보존할 수 있고, 이웃들과 연대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가 비어있는 농촌에 들어가 그 마을에서 가장 열악한 땅을 경작해서 풍요로운 땅으로 전환시킨 경험이 감동적입니다."

텃밭 바닷가 모퉁이에 누군가 일군 텃밭이다. 피에르 라비는 농촌에서 적정규모로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재배해야 생태계도 보호할 수 있고, 농촌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장태욱

-이 책에서 피에르는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만 하는 명상은 아닌데요.

"피에르의 영성은 눈감고 오래 생각에 잠기는 방식이 아니에요. 아마도 자연과의 합일, 자연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는 용어인 것 같아요. 파괴당하는 자연의 아픔을 이해하자는 의미죠."

- 이 책이 법정스님이 좋아하셨던 책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도 무소유를 말씀하셨는데, 이 책도 절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유는 필요한 건데요. 기준을 어느 정도로 보면 될까요?

"소유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나 피에르 라비가 말하는 '절제'나 공통적으로 필요이상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을 경계하는 거예요. 몸이 필요한 만큼만 먹고, 농사지을 만큼만 땅을 소유해야 자연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벌목 한라도서관을 향하는 길에 소나무들이 잘려나간 모습이다. 최근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피에르 라비는 벌목이 사막화를 가속화시킨다고 비판한다. ⓒ 장태욱

-책에서는 행복한 나라로 방글라데시를 말하고 있고, 최근 민간기구들이 조사한 바로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나 남미 코스타리카를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합니다. 이들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경제 발전이 매우 뒤쳐진 나라들인데요,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면서도 들판에서 과일 따먹고, 물속에서 큰 물고기 잡아서 세끼 배부르게 먹고 난 뒤에 오는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최근 부탄이라는 나라를 다녀왔어요. 그 나라는 1인당 소득이 300달러 정도인데, 그 나라의 국왕은 영국 옥스퍼드 출신인 엘리트에요. 그런데도 그 나라에 들어오는 여행객들의 등급을 매기고 여행객 유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해악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변 각종 향락산업의 결과에서 보듯이 문명에는 중독성이 있고, 해악이 있어요. 삶에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경제성장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장의 방법입니다. 성장을 빌미로 자연을 황폐화시키거나 공동체에 해가 되는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해요. 특히, 최근 돈벌이를 위해 제주도에 카지노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앞으로의 성장은 욕망을 억제하면서도 서로 공유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가야합니다."

-피에르 라비는 물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오아시스 출신이기 때문에 새삼 더 절실했을 수도 있는데요. 제주의 경우도 오래 전부터 물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물을 보존해야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물 산업을 육성해야한다는 주장이 공히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최근 '삼다수'가 전국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도정의 자랑거리로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질을 최적으로 보존하고 수량을 적정선에서 유지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생수산업에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아요. 작년에 삼다수가 퍼올린 물이 약 50만톤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주시에 있는 모 골프장에서 연간 퍼올린 물이 30만 톤이라고 해요. 그런데 현재 운영 중인 골프장이 30개이고 개발허가가 난 골프장이 43개입니다. 물을 이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고 남용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치 있는 일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기술과 창의력의 가치가 학벌 앞지를 날, 멀지 않았다"

-교육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홍원장께서는 몇 해 전 생각이 맞는 분들과 대안학교 설립을 추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경험도 있고 해서 더 마음에 닿는 게 있었을 것 같은데요.

"관이 모든 것을 쥐고 교사들을 통제하려 하고, 부모들도 대부분 제 자식 출세시킬 생각만 하는 환경에서는 창의력이나 자율성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 남한산초등학교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가 조금씩 변해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에도 납읍초등학교나 더럭분교 등 좋은 학교들이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시키기에는 도시의 경쟁적 환경보다는 농촌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해요."

-교육에 대한 문제가 결국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연관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학벌에 따라 사람의 서열을 정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교육만 제대로 서라고 하면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지금 사회는 많이 변해있어요.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기술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농사를 짓고 억대 수익을 올리는 농민들도 나오잖아요. 제가 의사지만 의사들 삶도 이전에 비해 형편없어요. 법관들도 마찬가지에요. 기술과 창의력의 가치가 학벌을 앞지를 날이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걸 사회는 알고 있는데 교사들과 학부모들만 잘 모르고 있어요."

-홍원장께서는 병원을 운영하시면서도 사회활동에 폭넓게 참여해오셨는데요, 최근 이모작 인생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병원을 계속 운영하실 건지 다른 걸 계획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의사니까 병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예정입니다. 다만 도심 속에 있는 병원 말고 숲과 가까운 곳에서 전인 치유를 목표로 하는 병원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주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농촌에 조그만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홍원장의 테이블 홍원장은 진료 중에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책이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이다. ⓒ 장태욱

책에 관한 얘기 말고도 개인적인 내용으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홍원장은 사회 다양한 분야에 관심도 많고 지식도 풍부하며, 하고 싶은 일도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대화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시간에 쫓겨 병원 통로에 붙어있는 그림들을 다 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의 내용

피에르 라비는 인간과 대지의 조화를 실현하며 살아온 농부이자 철학자이며 환경운동가다. 1938년 알제리 남부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서 태어난 피에르는 이후 프랑스인 교사 부부에게 입양되어 알제리 오랑에서 양어머니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가 프랑스와 알제리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정체성의 혼돈을 극복하지 못하고 양부모를 떠나 파리로 갔다.

피에르 라비는 프랑스에서 어렵사리 취직에 성공했지만, 회사에 대해서도 곧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학력과 권력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착취와 억압의 도구였습니다. 그 애매모호한 피라미드식 구조는 나로 하여금 평등과 인간애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도시 생활에서 늘 고향 오아시스의 공동체를 떠올리는 그는 아내와 함께 남프랑스의 농촌 아르데슈에 정착한다. 당시 그곳은 공업화로 인해 농촌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대지는 사막화가 진행 중이었다.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화학비료, 살충제, 우량종자, 기계농업을 받아들인 결과 역설적으로 농민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농촌은 붕괴되었으며 대지는 황폐화된 것이다.

그곳에서 피에르는 우선 자급자족의 과제를 해결해야했다. 그를 위해 우선 염소를 기르고 과수원과 채소밭을 일궜다. 그리고 황폐화된 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비료와 살충제 대신에 거름과 자연의 순환을 이용하는 생명농업의 길을 추구한다.

"수익성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처럼 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지 생산을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습니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의 기술을 가꾸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밭과 자연, 그리고 계절에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고, 그 장소를 지킬 수 있습니다."

피에르는 생명농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대지를 존중하고, 퇴비를 만들고, 장소에 맞는 품종을 고르고, 농사달력을 만드는 일들이 중요성하다고 역설한다.

지구 생태계에 대한 피에르의 관심은 지대하다. 특히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원인은 나무를 너무 많이 절단하는 것에 데 있다고 보고 수출용 산업작물을 지배해기 위해 숲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춰야한다고 호소한다. 아프리카에서 수출용 코코아나 땅콩을 재배하는 대신 주민들이 먹을 만큼만 채소를 재배했다면 숲의 파괴도 막을 수 있고 주민들의 생활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류가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낭비하지 않도록 생활양식을 변화시켜야한다고 촉구하고, 종교인들에게는 기도만 하는 것보다 세상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호소한다.

집을 지을 때도 곡식을 재배할 곳을 남겨두기 위해 최소로 작게 짓고 물은 가능한 절약하면서도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던 오아시스의 생활양식을 소개하면서, 절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삶을 값비싼 물건으로 가득 채워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으로 자신의 목표를 '모든 곳에 오아시스'로 정했다.

피에르는 교육에 대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교육이 더 이상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공동체에 대한 봉사 등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생산성과 경쟁력에 초점을 맞춰 광적으로 눈먼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피에르의 다섯 자녀는 비인간적 학교 교육 대신에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중요성을 배웠고, 자연 속에서 농사와 음악을 벗하며 풍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출판사 : 조화로운 삶
가격 : 9,800원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