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13) 한라산 먹 고사리

햇고사리보말지짐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재료가 만나 독특한 맛을 낸다 ⓒ양용진

  고사리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부지방에서만 식용으로 이용하는 식물인데 중국에서도 일상식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약재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아 결국 일반적인 음식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에서는 독성이 있어서 먹지 못하는 독초로 분류된다. 그것은 고사리의 특수성분인 아네우리나아제라는 물질 때문인데 이것이 비타민 B1을 집중적으로 분해하여 체내에서 비타민 B1을 흡수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소이기 때문에 고사리를 장기 복용하거나 많이 복용하면 비타민 B1 결핍으로 인해 관절이 약해져 못 걷게 되거나 눈이 침침해지고 결국 실명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또한 그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가축들에게도 해당되는지라 마소를 방목할 때는 되도록 고사리가 많지 않은 초지를 골라 다니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특히 한라산 자락의 계곡이나 습지, 곳자왈 등지에서 자라는 일명 먹고사리는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번 맛을 들이면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된다. 그런 탓에 봄이 되면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한라산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 조난사고를 당하는 여사님들(?)이 속출하기도 한다. 요즘은 트래킹인구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고사리 채취하는 사람이 더 늘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면 이렇게 위험한 고사리를 계속 먹어도 되는 것일까? 거기다가 아네우리나아제라는 물질과 함께 고사리 속에는 자체적으로 병충해 침투를 방지하는 독성물질까지 생성된다고 하는데 이런 풀을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것일까?  결론은 지금까지 제주사람들이 먹어온 조리방법은 매우 안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먹어도 상관없다. 지금도 제주 할머니들은 “먹고사리는 세어지민 톧지말라!”라고 말한다. 세어진다는 것은 고사리가 다 핀 것을 말한다. 고사리 끝부분이 둥글게 말려있는 어린 고사리만 채취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안전하기 때문에!

햇고사리괴기지짐 돼지고기에 고사리향이 베어 더 맛있는 별미 ⓒ양용진

  아네우리나아제와 자체방어용 독성 물질들은 직사광선을 받으며 광합성을 일으키면서 독성물질이 배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식용으로 채취하는 4~5월의 고사리에는 아주 약하게 생성된 상태이고 특히 짙은 밤색을 띄고 있는 먹 고사리는 광합성을 일으키지 못한 상황이므로 채취해서 삶아내고 건조시키고, 불리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고사리에 들어 있는 유해한 물질은 거의 제거 되므로 걱정 없이 식용으로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먹는 것은 다 자란 잎이 아니고 땅에서 뾰족히 삐져나오는, 잎이 피기 전 어린 줄기를 먹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안전하며 또한 가열 조리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미량의 독소는 사라지며 특히 백이숙제가 아닌 이상에야 고사리만 집중적으로 먹지는 않고 다른 음식과 밸런스를 맞추며 먹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옛 어른들은 세어지거나 양지의 고사리는 먹지 말라고 지적해왔고 소나 말을 방목할 때도 고사리 없는 초지를 골라서 방목했다고 하니 그 옛날 어른들이 도대체 어떻게 다자란 고사리의 유해성을 알고 대처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한라산 먹 고사리가 좋은 이유는 굵으면서도 중심이 비어 있어 보기와 달리 굉장히 부드럽고 씹히는 질감이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고사리는 제주의 먹 고사리 만큼 굵은 두께가 되려면 이미 광합성을 일으키며 푸르게 변하게 되어 결국 제주선인들의 표현처럼 세어지게 되는데 반해 제주의 먹 고사리의 생육환경은 직사광선이 많이 들지 않고 늘 축축한 상태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곳자왈에 집중되어 있어 굵으면서도 부드러운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최상의 식용 고사리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사리는 제주의 봄나물, 제주의 산나물로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최상의 자연식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좋은 고사리가 있었기 때문에 고사리로 만드는 음식 또한 제주사람들 만큼 다양하게 만들어 먹은 지역이 없다. 다른 지방에서 만드는 고사리 음식을 보면 고작 건고사리를 불려 나물 무치는 방법과 육개장에 부재료로 이용하는 것 말고는 독특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이 고사리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은 고사리 나물과 느르미전과 고사리전, 육개장과 국, 돼지고기나 보말과 함께 지져먹는 등 다양하게 조리되었고 요즘에는 잡채에 이용하거나 김치전, 파전 등에도 곁들여 이용하기도 한다. 

느르미전 고사리와 쪽파를 늘어놓고 계란물로 부쳐내는 제주만의 전통 전 ⓒ양용진

  고사리 나물은 건고사리를 하루정도 찬물에 불린 후 2~30분 정도 삶은 후 양념하는 방법과 불린 고사리를 파, 마늘, 간장, 깨소금, 참기름 양념하고 팬에 볶는 방법(은근한 불에 육수나 물을 첨가하며 양념이 충분히 베도록...)이 있는데 과거 제주사람들은 전자의 방법으로 많이 조리했으나 요즘은 후자가 더 많이 이용된다. 두 방법 모두 들깨 가루를 이용하면 더 별미로 느낄 수 있다.

  느르미전은 실파와 고사리를 반 줌씩 늘어놓고 계란물로 지져낸 제주의 전통‘전’의 하나인데 주로 서쪽일부에서 차례상에 올렸으며 고사리전은 메밀이나 계란을 전병처럼 부쳐 그 위에 고사리 몇 가닥 올려 만드는 매우 간단한 차례 음식이다. 이 두 가지 전은 모두 차례상에 찾아온 조상님이 차려진 음식을 싸서 가져 가시라는 보자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사리 육개장은 몸 국과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탕 국인데 몸 국과 마찬가지로 잔치 등의 큰일을 치를 때 모자반 대신 고사리를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한 국물에 고사리향이 일품인 행사음식이다. 반면 고사리 국은 된장국에 고사리를 풀어 놓은 형태의 일반적인 국으로 고사리와 된장이 어우러진 향이 매우 좋다.

고사리나물 지금은 기름에 볶는 방법이 많이 애용되지만 과거에는 불려서 삶은후 무쳐내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리했다 ⓒ양용진

  고사리 지짐은 돼지고기나 보말을 고사리와 함께 지져내는데 간장으로 간을 하며 때로 된장으로 간을 하여 지지기도 하는데 마지막에 메밀가루를 풀어 넣는 것이 마치 고사리가 범벅처럼 버무려진 매우 독특한 서민들의 전통음식이다. 

  간혹 고사리와 고비의 차이를 묻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한라산 먹 고사리는 고사리 보다는 고비인 경우가 더 많다. 고사리는 조금 자라면 약간 푸른색을 띄며 고비는 순 자체가 짙은 갈색을 좀 더 오래 띄고 있으며 솜털이 많은 특징이 있다 그러나 둘 다 새순을 채취해 보면 일반인들이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며 곳자왈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고비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더 정확히 따지려면 뿌리를 캐어 보아야 하는데 고사리는 한 뿌리에서 한 줄기만 올라오는데 고비는 여러 줄기가 올라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제주사람들은 고사리로 부르며 똑같은 방법으로 조리해 먹어왔기 때문에 굳이 분류하면서 따로 조리할 필요는 없을 것인데 삶아서 말린 후 보관한다면 더더욱 구분이 힘들어진다 하겠다. 

고사리전 주로 동쪽지역의 차례상에 올린 음식인데 계란이나 메밀로 전병을 부쳐낸다 ⓒ양용진

  고사리는 식용으로의 가치도 높지만 한의학에서는 어린잎을 말려서 한약재로 널리 사용해 왔다. 한문명은 궐채(蕨菜)라고 표기하며 궐아채, 용두채, 거두채라고도 한다. 주로 야뇨증과 불면증을 치료하는데 활용된다고 한다.

  고사리 축제와 함께 본격적으로 고사리 시즌이 시작됐다. 해마다 고사리 채취 중에 일어나는 조난 사고가 보도되곤 한다. 특히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이 산중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젊은 주부들도 아무 생각 없이 고사리만 쫓다가 길을 잃어 헤매는 경우가 발생한다. 고사리 꺽으러 갈 때는 반드시 2명이상이 짝을 지어 행동하고 호루라기 등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신호기를 지참하고 마실 물도 넉넉하게 준비하고 특히 핸드폰 충전상태를 확인하고 통화가능지역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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