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 (10)] 구엄·중엄·신엄해안

▲ 구엄소금빌레와 소금빌레 동쪽의 철무짓개 도대불.ⓒ홍영철

구엄소금빌레에서 다시 길을 잇는다. 소금을 만들었던 구엄소금빌레 옆의 작은 포구가 한자로는 ‘엄장포(嚴莊浦)’라 하고, 우리말로는 ‘철무짓개’라 한다. ‘엄장포’라 함은 구엄과 중엄, 신엄을 통틀어서 ‘엄쟁이’라고 불렀던 이름의 음을 빌어서 한자로 적은 이름이다. 구엄과 신엄, 신엄사이의 단 하나의 포구이다. 비교적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처럼 포구가 드문 이유는 이 곳 해안이 대부분 바다와 바로 만나는 절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철무짓개’는 양쪽으로 돌출된 갯바위 즉, ‘코지’를 방파제 삼아 만들어진 포구다. 동쪽의 큰 코지의 이름이 ‘상코지’인데 이 코지에 예전의 등대인 ‘도대불’이 있다.

▲ 바다직박구리 수컷의 모습. 수컷은 암갈색의 암컷과 달리 화려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홍영철

도대불은 바닷고기의 기름이나, 송진 등을 태워서 바다에 나간 어선들이 포구를 찾게 했던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제주의 거의 모든 포구마다 도대불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대부분의 도대불은 새로 만들어진 전기식 등대에 밀려 그 기능을 잃어버리거나, 포구를 넓히고, 시멘트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철무짓개 동쪽에 있는 이 도대불도 예전에 명성은 사라지고 자기의 이름을 잊은 채 망연히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 중엄새물의 전경. 세칸으로 알뜰하게 나누어져 있다. 이 물에는 어린 바다고기들이 놀이터가 되어 칸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떼지어 논다.ⓒ홍영철

구엄소금빌레를 지나 중엄리로 접어든다. 바다와 바로 인접하여 용천수가 해안절벽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새물’이라고 불리는 용천수다. 예전에는 소중히 쓰여진 듯 바다와 만나기 전까지 살뜰하게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바위절벽 틈으로 맨 처음 나온 물은 식수로 쓰이고 그 다음은 음식을 씻는 물, 맨 마지막은 빨래나 목욕을 하는 물이다. 제주의 마을은 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수백년의 시간을 흘러 제주의 가장 깊은 곳을 흘러온 물은 보석처럼 이 곳에서 빛난다. 이미 오래 전이 되어버린 이 곳의 옛모습을 그려본다. 날이 아직 밝지 않은 새벽녘에 위태롭게 절벽 밑을 더듬어 내려와서 조금씩 뿜어 나오는 샘물을 한라산신이 내린 선물마냥 조심스럽게 옮겨 담아 온다. 그렇게 그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물의 소중함을 혈액 속에 담은 것이다. 지하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빗물이 땅에 떨어져 겹겹이 쌓인 암반을 통과하여 지하수가 모이는 ‘대수층(지하수가 모이는 곳)’까지 내려 가는데 1년에 30cm정도를 이동한다고 한다. 그 물이 ‘삼다수’를 뽑아 올리는 지하 300m까지 내려가려면 100년이 걸린다. 해안에 용천수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무수한 지하수 관정을 뚫어 뽑아 쓰는 것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 몽돌해안의 모습, 주상절리의 커다란 바위들이 떨어져 형성된 듯하다.ⓒ홍영철

중엄새물을 지나면 작은 해녀식당이 있고, 그 옆으로 둥그런 바위들로 이루어진 해안이 펼쳐진다. 내도알작지는 비교적 작은 자갈 정도이고 여기는 마을어귀에 있던 듬돌 정도로 크다. 바다는 저렇게 커다란 돌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왜 여기에 이런 큰 몽돌들이 쌓여 있는 것일까? 주변을 암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대포동에 있는 주상절리처럼 선연한 모양은 아니지만, 여기에도 주상절리가 있다. 차별침식을 받은 주상절리 암벽은 커다랗게 바다로 떨어져서 깎이고 깎여 둥그런 모양이 되었다. 자세히 보니 애월해안 절벽의 아래에는 무수한 몽돌들이 깔려있다.

▲ 조부연대와 애월연대를 연결하던 남두연대.ⓒ홍영철

이제 오르막길이다. 해안초소를 지난지 얼마가지 않아 남두연대가 나타난다. 높다란 절벽의 정점에 자리한 남두연대는 이곳의 한글 지명인 남또리를 음차한 한자명이다. 이 곳 연대는 동쪽 외도 연대마을의 조부연대와 서쪽 애월리의 애월연대와 교신했던 연대다. 연대와 해안초소, 서로 가까이에서 과거와 현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안초소에는 총을 든 경비병이 지키고, 연대주위에는 노란 유채꽃 병사가 지키고 있을 뿐이다.

▲ 남또리개의 모습과 무속행위를 금지하는 표지판.ⓒ홍영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발걸음을 가볍게 끌며 남또리개가 반긴다. 신엄리와 고내리의 경계에 있는 포구다. 이 쪽에 개당(해신당)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신당을 찾았보았으나 살벌하고 이해되지 않는 표지판과 만났다. “경고문-이곳은 해녀잠수지역이고 관광보호지역이므로 어떠한 무속행위도 일체 금함. 위반 시는 엄중조치 하겠음. 신엄리장.” 무속행위가 해녀들의 작업과 관광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해신당은 해녀들이 바다작업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비념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고유한 문화이고, 관광자원이다. 이 표지판 덕분에 관광자원은 사라지고, 문화와 관광을 바라보는 우매한 시각을 반성하는 교육자원이 생긴 셈이다. 남또리개 안쪽으로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라 다가가 보니, 온통 해안쓰레기를 태우고 있다. 검은 연기가 뒤덮고 이렇게 태운 자리에는 더욱 흉물스러운 상처가 남는다. 멀리 해안절벽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가까이 다가서 본 사람들은 안다. 누구와 무엇을 위한 해안 정화인가?

▲ 해안쓰레기를 태우는 모습과 그 뒤에 남은 흔적.ⓒ홍영철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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