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100] (21) 넋들여 줍서 - 함덕리 존나니 모르일 당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고씨 할망의 묘 ⓒ제주의소리

지금까지 여러 당을 다녀봤지만 무덤이 당인 곳은 처음이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존했던 고씨할망이 죽어서 당신이 되었다. 고씨할망은 살아 생전에 병을 잘 낫게 해주어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죽어서도 고씨할망의 묘를 찾아가 넋을 들이니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당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북촌리가 고향인 친구에게 존나니 모르할망당을 아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 넋 들이러 갔다 온 곳이라 할 정도로 이 지역 사람이면 한번쯤은 다녔던 당이다. 함덕리에서 존나니 모르할망당을 찾는다고 마을사람들에게 묻자, 넋들이 할 거냐며 당을 관리하고 있는 정씨 할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정씨 할머니는“준비는 알아서 할 테니 돈을 내면 된다.”고 하였다. “넋들이 할 것이 아니고 이 당을 알리고 싶어 그럽니다.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했더니, “그 할망은 알려지는 거 싫어헷저. 가르쳐 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동네사람들도 길이 복잡하다는 말만 하고 가르쳐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을 찾아 헤매기를 1시간쯤, 이제 포기할까 하는데, 눈 앞에 백일홍들이 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들어갔더니 이럴 수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할머니의 산소, 즉 할망당이다.

백일홍 네 그루가 묘지를 감싸 안고 있으며, 소박한 산담과 함께 묘는 친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따스하고 편안했다. 비석에는 ‘孺人高氏之墓(유인고씨지묘)’라고 씌어져 있다. 비석 앞에 제단이 있어서 가지고 간 음료수를 올리고, ‘혹시 넋나갔거들랑 넋들여 줍서.’라고 기도를 했다. 묘 주변으로 소주병들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찾아오는 당골이 많아 보인다.

제일은 따로 없고, 택일하여 다닌다. 제물은 메 3기, 채소, 지전 등을 올린다. 존나니 모르일 당은 불공할망당, 넋산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당의 영험함이 알려져 부산, 서울, 일본에서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제주신당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당신의 근본은 조상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어머니, 내 아버지를 후
손들이 모시면서 신격화되어 성소가 된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넋들이’란 제주도에만 행해지는 것으로 놀라거나 다쳤을 때 ‘넋이 나갔다’고 하여 ‘넋을 불러 들여 주는 것’을 말한다.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직접 해주기도 한다. 나의 할머니도 내가 어렸을 때, 내가 높은 곳에 떨어졌거나, 심하게 아프면 새벽에 나를 데리고 나가서 내가 입던 내의를 들고“넋들게 헤 줍서, 넋들게 헤 줍서.” 읊으면서 내 몸을 어루만져 주면 마음이 편안해지던 기억이 있다. / 김은희

*찾아가는 길 : 조천읍 우회도로→함덕 SK LPG 옆길→남쪽으로 600m→두 갈래 길에서 서쪽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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