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 여성유적100] (22) 어둠 속에 길을 열다 - 김녕리 도대불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제주가 있도록 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의 협조로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을 인터넷 연재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과 필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제주의소리

▲ 김녕리 도대불 ⓒ김순이

등대는 바닷가에 산다. 낮에는 실컷 낮잠을 자고 저녁이 되면 눈빛을 밝히며 일어나 밤새도록 야근한다. 그의 깜박이는 눈빛에 의지해서 선박들은 밤에도 무사히 제 갈 길을 찾아간다. 그는 어둠 속에 길을 여는 자이다.

김녕리 바닷가 성세기알 포구에도 옛 등대가 산다. 이제 나이 들어 야근은 하지 않지만 의연한 자세로 옛날을 증언하고 있다. 제주의 해안마을 포구에 등대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명칭은 도대, 도대불 또는 도다이였다. 이 명칭에 대해선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길을 밝히는 불이라서 도대(道臺)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등대(燈臺)의 일본어 발음인 도우다이라 말하는 분도 있다.

현재 제주에 옛 등대가 남아 있는 곳은 몇 안 된다. 제주시에는 북촌리, 고산리, 김녕리, 영일동(우도면)이고 서귀포시는 대포리와 보목동 정도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도대불이 있었으나 포구를 보수하면서 없애버렸고, 그나마 살아남은 것들도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파괴되고 말았다.

도대불의 특징은 마을마다 각기 형태가 다르다는 점이다. 김녕리와 귀덕리, 우도의 도대불은 방사탑형, 고산리와 대포리는 굴뚝형인데 비슷하긴 하나 그 어느 것도 규격과 형태가 같지 않다. 도대불은 공동관리를 했던 마을도 있으나 대부분은 고기잡이 나간 집에서 돌아가면서 관리했다. 자기 집 고깃배가 해질 무렵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호롱불이나 각지불을 가져가 켜놓았다. 기름은 석유기름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구하기가 어려워 상어의 간에서 짠 기름, 고등어기름 같은 생선기름(魚油)이나 갯노물지름(菜油)이 주로 사용되었다.

김녕리 도대불의 정상부에는 등잔을 넣었던 등롱 장치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나무기둥을 박아 만든 정사각형 모양의 나무틀 사면에 유리를 끼웠다. 한쪽은 문을 달아 열고 닫게 하여 저녁엔 불을 켜고 새벽에는 불을 껐다( 『제주시 옛등대조사보고서』, 2008). 그러나 이 등롱은 이 부근에서 풀을 뜯던 염소가 올라가 깨버렸다.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염소였던 모양이다.

남편과 아들이 타고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사납게 일어나는 비바람 속에서 도대불을 지키고 서있던 것은 바로 제주의 어머니, 할머니들이었다. 이 옛 등대는 해양유적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거니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제주여성의 눈물이 진하게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 김순이

찾아가는 길 : 김녕리 김녕초등학교→포구→김녕해녀의집→성세기알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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